감독
박신우

주연
손예진....유미호
고수....요한
한석규....한동수
이민정....시영

요한과 미호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좋은 소설보다는 좋은 각색물의 원작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미는 있었어요. 하지만 캐릭터 묘사나 심리묘사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고, 건조한 추리물의 형식은 나름 매력적이긴 했지만 내용과 아주 잘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좋은 소재를 찾는 영화 제작자나 드라마 작가의 관심을 끄는 거라고 생각했죠. 각색자의 해석이 원작의 이야기를 오히려 더 살릴 수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럼 그 결과로 나온 작품들이 과연 좋은 각색물인가? 전 일본 드라마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못하겠습니다. 안 봤으니까요. 하지만 박신우의 영화 각색물 [백야행]에 대해서는 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이 영화는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실패한 각색물입니다.

아니, '어느 기준'이라는 말은 취소합니다. 이 영화의 각색에서 성공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영화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원작의 이야기를 2시간 조금 넘는 러닝타임 안에 압축해 넣었다는 거죠. 도입부와 결말 부분을 하나로 엮어 격자처럼 짜넣은 구조는 나쁘지 않습니다. 여전히 중간이 빠져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지만 괜찮아요.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선 드러나는 단점부터 지적하겠습니다. 원작은 추리소설이고 영화 역시 그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원작소설의 주인공들은 아주 치밀한 지능범들이지요. 그들의 뒤를 쫓는 형사도 역시 유능한 인물이고요. 그들의 유능함과 지능은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십여 년에 걸친 긴 범죄 드라마에 당위성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로 옮겨지면서 이들의 지능은 뚝뚝 떨어져버렸습니다.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이들은 전혀 머리를 안 써요. 사방에 온갖 종류의 단서와 지문과 유전자를 남겨놓고 다니면서 완전범죄자의 표정만 짓고 있습니다. 무능한 건 그들의 뒤를 쫓는 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물을 형편없이 다루는 것도 감점이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에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어린아이를 투입시키는 건 어이가 없죠. 그는 그냥 못난 인간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진짜로 지능이 낮은 건 이들이 아니라 각본이니까요. 대사에서부터 증거에 이르기까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형사가 발견한 카세트테이프부터 그렇습니다. 그게 그 자리에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그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는 증거는 그냥 억지입니다. 아시겠지만 라디오나 다른 테이프의 음악을 녹음할 때는 주변 소리가 섞여 들어가지가 않지요. 그런데도 관객들이 대충 받아들이려니 하고 넣은 겁니다. 다 이런 식이에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서적인 것입니다. 역시 전 일본 드라마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나오는 러브스토리의 매력은 그것이 철저하게 건조하고 차갑고 이기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십여 년 동안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한 여자만 바라보고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이니 순애보지만 그 순애보가 온전하게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인 로맨스에서 기대하는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제거해야 하죠. 그 차가움 속에서 로맨스는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 모두 그 상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요.

근데 영화는 신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질구질 신파예요. 영화는 안 해도 되는 부분에도 죽어라고 추가적인 감정들을 넣습니다. 의미없는 희망고문과 죄의식이 등장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다 징징 짭니다. 특히 결말은 완벽하게 망가져 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가야할 길이 훤히 보이는데도 정반대로 간단 말입니까? 주인공들이 그냥 싫은 건가요? 결말의 정갈함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특히 형사의 그 구질구질 대사는 왜 넣은 건가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군요.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손예진, 고수, 한석규의 명연기를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손예진은 이 배우의 평균에서 한참 떨어집니다. 은근히 이 사람은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배우를 잘 다룰 줄 모르는 감독을 만나면 테크닉부터 덜컹거리기 시작합니다. 고수의 경우는 미스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어둠 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 평범한 외모의 남자여야 할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지나치게 예쁘지요. 한석규는 언제나와 같은데 캐릭터가 워낙 나빠서... 곧장 말해 이 영화의 연기 지도는 아주 나쁜 편입니다. 감독이 연기와 대사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사실 액션과 편집의 감각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예고편을 보고 눈치채신 분들도 많겠지만.

또 언급해야 할 것은? 음악. 나쁩니다. 영화만큼이나 신파입니다. 왈츠는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요. 도대체 한국 영화 음악가들은 왜 이렇게 왈츠를 좋아한답니까. 결코 건강하지 않아요. 세트에는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전 이들이 세트보다 캐릭터에 더 신경을 쓰길 바랐습니다. (09/11/10)

DJUNA

기타등등

일본 드라마를 찾아볼까 생각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당장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도 꽤 신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