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도널드 케멜 Donald Cammell

주연
앤 헤이시....알렉스 리
Anne Heche....Alex Lee
크리스토퍼 워큰....브루노 버킹햄
Christopher Walken....Bruno Buckingham
조안 첸....버지니아 초우
Joan Chen....Virginia Chow
스티븐 바우어....토니
Steven Bauer....Tony

1.

브루노는 전세계 경찰들이 쫓고 있는 국제적인 돈세탁 전문가이고 알렉스는 융자금을 갚기 위해 밤에 콜걸로 뛰는 은행원입니다. 브루노는 알렉스에게 반해 그의 돈세탁 일에 그녀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알렉스는 엉뚱하게도 브루노의 전처인 버지니아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들 틈 사이로 위장 경찰인 토니가 끼어들고 어쩌고 저쩌고...

2.

[와일드 사이드(출시명은 [와일드 게임])은 영화 자체보다도 영화와 관련된 두 스캔들로 유명합니다. 하나, 이 영화의 감독인 프랭클린 브라우너는 도널드 캐멜의 가명이고, 케멜은 이 영화가 제작사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자 열받아서 권총 자살을 해 버렸다는 것. 둘, 최근 엘렌 드제너러스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앤 헤이시가 레즈비언으로 나와 조안 첸과 러브 신을 벌인다는 것.

3.

일단 도널드 케멜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이 사람은 니콜라스 뢰그와 [퍼포먼스]를 공동 감독하고, 컴퓨터가 줄리 크리스티를 강간하는 [데몬 시드]란 SF를 만든 사람입니다. 처음에 그 사람 소식을 들었을 때 왜 영화 하나 잡쳤다고 자살까지 했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해할 만도 합니다. 그 사람 죽을 때까지 겨우 4편 밖에 영화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나마 대표작이라고 할 [퍼포먼스]는 모두 뢰그의 작품으로 알고 있고요. 끊임없이 거절당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영화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영화사라는 괴물이 그 영화를 '에로틱 드릴러'로 만들어 버렸다면 저라도 열받을 거예요,

하지만 도대체 원래 의도가 어땠을까요? 감도 안 오는 것이, 이 영화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뭔가 복잡한 플롯의 두뇌싸움 이야기 속에 파워 게임, 돈, 섹스, 권력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결과를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네, 캐멜은 저승에서도 자기 탓은 아니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가끔가다 나오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나쁜 대사들과, 전형적인 '비디오 용 에로틱 드릴러'식 설정, 설득력 부족한 캐릭터들은 편집으로도 고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4.

이 영화는 [바운드]와 여러 면에서 닮았습니다. 둘 다 사랑에 빠져 음모를 꾸미는 두 여자와 돈세탁을 기다리는 거금이 나오고 나중에 남자는 끝장나지만 여자들은 돈을 챙겨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살았습니다"로 끝나니까요. 하지만 [바운드]에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과 감독들을 빵빵하게 밀어주는 제작자들이 있었다면 [와일드사이드]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각본과 편집권을 빼앗기고 권총 자살한 감독이 있습니다.

레즈비언 묘사를 따진다고 해도 [와일드 사이드]는 꽤 불만스럽습니다. 물론 베드 신에 대해서까지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출시된 비디오에서는 알렉스와 버지니아가 여자 화장실에서 벌이는 섹스 신이 잘려 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주변 묘사는 전형적인 '비디오용 에로틱 드릴러' 스타일입니다. 알렉스가 여자를 사귀건 남자를 사귀건 상관않는 남자 친구만 보더라도 다른 종류의 영화에 나왔다면 "참 기특한 애군"했겠지만 여기서는 '에로 영화에 덤으로 레즈비언 묘사 추가하기'의 사전 준비처럼 보입니다. 크리스토퍼 월큰이 "버지니아는 여자를 더 좋아해." 하면서 알렉스를 버지니아에게 데려가려는 장면도 그렇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레즈비언 설정을 섹스 신 첨가용으로만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알렉스와 버지니아의 관계는 러브 스토리로 발전하고 해피엔딩으로까지 이어지죠. 이 점은 좋게 봐줄 만 합니다.

5.

배우들은 좋습니다. 앤 헤이시는 네 번째에나 간신히 이름이 등장하지만 사실상의 주역이고 그 사람이 연기한 머리 잘 돌아가는 은행원/콜걸은 헤이시 특유의 방법으로 매력적입니다. 각본이 더 잘 따라주었다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월큰이 보여준 연기를 그의 최고 명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도 언제나 기본기는 하는 사람입니다. 조안 첸은 분노를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다소 무뎌 보이지만 유혹적인 동양여성의 클리셰로 넘어갈 때는 아주 적절합니다.

6.

솔직히 말해 도널드 캐멜이 이 영화의 편집권을 완전히 손에 넣었어도 이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서진 모습으로 사람 목숨 하나를 날려버린 영화를 보는 기분은 참 이상하더군요. (97/05/28)

DJUNA

기타등등

헤이시가 '커밍 아웃' 한 뒤에 영화사는 영화의 재편집판을 개봉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답니다. 그게 국내 출시판과 얼마나 다른지, 원래 영화와는 또 어떻게 다른 건지 전 모르겠어요.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