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병우

주연
이진석....등장인물 A
김보영....작가
이상혁....배우 A
박진수....감독
김영환....조연출
김무신....그 남자
함정이....그 여자

A

술마시다 필름이 끊긴 한 남자가 차가운 물이 반쯤 담긴 욕조 안에서 깨어납니다. 벽에는 GO TO THE HOSPITAL!이라고 써있고 그의 몸에는 커다란 상처가 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마취시켜놓고 신장을 떼어간 것이죠.

“아이디어는 약 바꿔 먹었냐!”라고 외치시고 싶으시겠죠. 신장도둑 이야기는 유명한 도시 전설이고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리튼]이 하려는 이야기는 이게 아닙니다. 꼭 신장 도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아무런 무리 없이 전개됩니다. 오히려 가장 진부한 아이디어를 일부러 골랐을 수도 있어요.

[리튼]의 진짜 이야기는 피란델로식입니다. 사실 이 신장을 잃은 남자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 속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아직 각본은 완성되지 않았고 그는 어떻게든 필연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결말에서 탈출하려고 하지요. 여기서 캐릭터, 작가, 감독, 배우가 영화 세트가 만들어낸 추상적 공간 안을 오가며 파워 게임을 벌입니다.

이러니까 엄청 멋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장도둑 스릴러처럼 익숙한 게임인 건 마찬가지죠. 설마 이런 이야기를 쓴 사람이 피란델로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게임은 예상외로 풀기가 쉽지 않아요.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해야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허구의 존재가 창조자에게 일대일로 도전하겠어요. 수많은 작가들이 이 아이디어에 도전했지만 만족스러운 결말을 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리튼] 역시 이걸 완벽하게 해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정면돌파보다 쉬운 길을 택하고 있어요. 주제를 관념화시키고 흐릿한 초현실주의를 도입해 논리 문제를 넘어간 것이죠. 이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특별히 비겁하다고 할 것도 없죠. 오히려 논리를 무시함으로써 드라마와 상상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지요. 문제는 그 결과물이 조금 고루해보인다는 것입니다. 추상적 관념을 과장하고 이것을 어색한 번역체와 문어체의 대사로 풀어가는 각본은 지나치게 연극적이고 뻣뻣합니다.

내용이나 주제보다는 시각적 스타일과 기술적 성과가 더 눈에 들어오는 영화입니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남발과 잦은 점프컷은 쉽게 질려요. 하지만 HD 카메라의 예민하고 선병질적인 질감은 최대한으로 활용되었고 종종 무척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세트를 떠나지 않는 인공적인 환경 역시 도움을 주었겠죠. 아까 내용면에서 고루하다고 했지만, 현실세계의 영화 세트와 진짜 이야기가 벌어지는 추상적 공간, 배우와 캐릭터, 작가와 작가의 창조물들이 엉키며 만들어내는 카오스 역시 재미있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87분의 러닝타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니 문제지만요. (08/12/09)

DJUNA

기타등등

[초감각 커플]의 다소 빈곤한 화면을 보다 이 영화를 보니 느낌이 다르더군요. 역시 도구가 무엇이냐보다 도구를 누가 다루느냐가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