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더글러스 서크 Douglas Sirk

주연
록 허드슨....미치 웨인
Rock Hudson....Mitch Wayne
로렌 바콜....루시 무어 해들리
Lauren Bacall....Lucy Moore Hadley
로버트 스탁....카일 해들리
Robert Stack....Kyle Hadley
도로시 말론....메릴리 해들리
Dorothy Malone....Marylee Hadley
로버트 키스....재스퍼 해들리
Robert Keith....Jasper Hadley
에드워드 플랫....폴 코크레인 박사
Edward Platt....Doctor Paul Cochrane
해리 섀넌....호크 웨인
Harry Shannon....Hoak Wayne

루시와 미치

지금 와서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들을 감상하는 건 굉장히 스노비시한 경험입니다. 서크의 영화들은 50년대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작된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운 멜로드라마들이지만, 6,70년대의 비평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재발견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뒤로는 그런 식으로 그의 영화들을 감상하는 건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관객들은 야한 불량 식품처럼 겉에 전시된 싸구려 쾌락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읽어야 합니다. 심심풀이 땅콩 연속극이 어느 순간부터 머리 싸매고 밤을 새워야 할 숙제가 된 것입니다. :-/

[바람에 쓰다]가 그의 작품들 중 비평가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 과도한 멜로드라마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캐릭터들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이나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와 같은 그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그런 이죽거림을 공공연하게 깃발처럼 흔들어대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와일더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해들리라는 텍사스 석유 재벌 집안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안의 주정뱅이 아들인 카일은 단짝 친구 미치가 눈독을 들이고 있던 뉴욕의 커리어 우먼 루시를 가로채 결혼합니다. 1년 정도 술도 끊고 괜찮게 살고 있던 그는, 그들 사이에 아기가 없는 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다시 술독에 빠집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루시와 미치 사이에는 다시 불꽃이 튀기 시작하고요.

영화는 50년대 사람들이 싸구려 펄프 잡지들을 뒤지며 몰래 수집했던 야한 자극들로 가득합니다. 스포츠 카를 몰고다니는 방탕한 부자집 아이들, 알콜 중독, 님포마니아, 금지된 사랑, 살인사건, 너무 노골적이라 지금 보면 실실 웃음이 나오는 프로이트 상징들...

서크는 이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할리우드적이어서 거의 기가 차기까지 한 호사스러운 세트와 연기 속에 던져넣습니다. 마치 환자들이 직접 인테리어를 장식한 정신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조울증 환자들을 구경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50년대 관객들은 이 너무나도 가짜같고 과장된 총천연색 멜로드라마를 요새 관객들이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들을 보듯 몰입해서 봤겠지만, 우리들은 그럴 수가 없죠. 아무리 봐도 서크의 스타일은 정도가 지나치거든요.

결국 두 가지 선택밖에 없습니다. 세련되게 만든 50년대 쓰레기 영화라고 몰아붙이며 잊어버리거나 이 어처구니없는 스타일이 실제로는 뭔가 다른 걸 의도하고 있다고 믿으며 분석해보는 것입니다.

후자 쪽이 대충 맞긴 할 겁니다. 일단 서크의 스타일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는 세련된 유럽 출신 교양인으로, 이런 이야기를 맨 정신으로 심각하게 다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이 화려한 스타일을 일종의 소격효과로 여기는 편이 비평을 짜맞추기가 더 쉽죠. 그가 정치적으로 좌파였다는 것도 사실이니, 텍사스 재벌 집안의 타락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일종의 자본주의 비판을 담았다고 우겨도 거짓말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접근해도 영화 자체는 그렇게까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사실 서크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세련된 비평가들이 느끼는 재미와 스크린 위에 투영된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을 팝콘과 함께 삼켜댔던 50년대 일반 관객들이 느꼈던 재미 사이엔 그렇게까지 큰 갭이 없습니다. 이유는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영화는 야하고 통속적으로 재미있습니다. 단지 비평가들은 그 재미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도구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우린 서크가 천성적인 멜로드라마티스트였고 그 장르를 온 몸으로 즐겼던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 기억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그가 이죽거리며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장르를 놀려대고 사회 비판을 숨겼다고 해도요. [바람을 쓰다]를 보면서 그런 야한 재미에 뭔가 진지한 걸 덧입히는 건 정말 재미없는 일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처음 보신다면 일단 비평가들의 말들은 잊고 영화의 멜로드라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냥 심각하게 푹 빠져도 좋고, 저처럼 킬킬 웃으면서 봐도 상관 없어요. 진지한 분석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03/02/04)

DJUNA

기타등등

카일의 여자동생 메릴리를 연기한 도로시 말론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과장이 심하고 거친 연기였는데, 당시 아카데미 위원들은 이 연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군요. 진지한 드라마 연기? 노골적인 과장을 포장지로 삼은 의도적인 이죽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