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재연

주연
유진....효정
차수연....나니
조은지....인순
박한별....연주
김혜나....유경
이영진....선화
황승언....보라
이혜상....간미희
최다니엘....동훈
정인기....강희중

마스터 나니

[요가학원]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그 제목을 단 영화가 학원 건물 안에서 일주일 동안 고립된 채 받는 특별 심화수련에 대한 것이라면요?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하루에 한 명씩 수련생들이 정체모를 살인자에게 살해당해 프레즐처럼 배배 꼬인 시체가 되어 버려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유치하지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 프레즐 시체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오긴 나오는데 제가 기대했던 맥락과는 다르더군요. 게다가 그 장면은 시작하기 전부터 [여우령]의 인용인 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심하게 별로였어요.

영화가 꽈배기 시체 대신 호러 효과를 위해 동원하는 것은 명현반응을 통해 발생하는 환각현상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여자들은 수련이 점점 심해지면서 다양한 환각에 시달리는데, 그 환각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관객들도 알 수 없습니다. 이 환각들은 영화 전에 제시되는 다섯 가지 금기 상황과 엮여서 어느 정도 동화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본격적인 줄거리 설명에 들어가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썩 잘 나가는 홈쇼핑 채널의 쇼 호스트인 효정입니다. 더 젊고 늘씬한 어린 후배에게 밀리고, 자신의 매력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고, 고등학교 시절에 절교했던 선화가 몰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자, 효정은 선화가 참여했다는 비밀 심화수련에 대해 듣게 되고 간미희라는 인물이 운영한다는 요가학원을 찾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효정의 남자친구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동훈은 강희중이라는 영화감독에 대해 조사하다가 간미희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됩니다. 물론 이 두 사람 모두 간미희와 연결되는 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영화에서 요가학원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미에 대한 욕망입니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아름다운의 기준이 획일화되고 이로 인해 점점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되는 현대 도시인에서 느낀 공포심’이라는군요. 음, 전 어리둥절해집니다. 이런 테마를 다루려면 요가학원 대신 성형외과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영화의 라스트신도 성형외과에 더 잘 어울리고요. 요가는 더 좋은 몸매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화된 외모까지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쿤달리니를 열어도 달라지는 건 없죠. 쿤달리니가 당시 패션 경향까지 뚫고 있지 않는 한은.

감독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주제 때문에 캐릭터가 얇아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수련생 대부분은 미에 대한 현대 여성의 콤플렉스를 대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적어도 이들 중 네 명은 다이어트, 성형수술, 젊음, 연예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존재하지요. 나머지 한 명만 여기에서 벗어나 있는데, 이 사람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보도자료를 읽어야만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하여간 폐쇄된 공간에서 캐릭터보다 기계적 역할이 더 중요시되는 사람들이 만났으니 이야기가 획일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드라마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도, 이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온전한 사람이 될 기회를 얻지 못 해요.

아쉬운 일입니다. 이 영화는 좋은 멜로드라마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거든요. [여고괴담] 시리즈의 팬이 아니더라도 관객들은 대부분 효정과 선화의 과거사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간미희와 요가학원의 마스터 나니 역시 조금만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면 [레베카]와 [이브의 모든 것]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우령] 흉내가 분위기를 망쳐서 그렇지, 중간에 나오는 70년대 말 한국 영화계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이 아까운 재료들이 모두 현대여성의 미의식에 대해 뭔가 이야기하겠다는 강박증 때문에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바로 그런 생각 자체가 이야기의 개성을 죽이는 획일화된 사고방식인데 말이죠.

호러영화로서 영화는 그냥 편안한 편입니다. 자극적인 살인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신체 손상과 신체 변형 장면이 조금 있긴 합니다만 그 정도야 일반 관객들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호러 장면들은 공포보다는 초현실주의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적 테크닉과 특수효과는 감독의 전작 [여우계단] 때보다 훨씬 좋은 편입니다. 특히 특수분장은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캐스팅일 겁니다. [요가학원]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두 충무로를 대표하는 스타이거나 연기파라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이들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조합인데, 그 조합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유진, 박한별까지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수연, 조은지, 김혜나까지 가면 뭔가 분위기가 묘해집니다. 거기에 이혜상, 이영진까지 들어갔으니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죠. 마침표처럼 들어간 신인 황승언도 이 그림을 망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이들 중 마스터 나니를 연기한 차수연이 가장 좋았습니다. 일단 굉장히 예쁘게 나옵니다. 연기폭도 가장 넓어서 배우 보는 재미가 있고요. 게다가 이 배우의 국어책 읽는 듯한 독특한 말투는 중독적입니다. 다른 배우들도 모두 주어진 자기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리고 함께 있으면 그림도 잘 나옵니다. 단지 아까도 말했지만 역할과 이야기가 많이 얇습니다. 이건 배우들의 힘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죠. (09/08/12)

DJUNA

기타등등

원래는 송지효가 출연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죠. 이 영화 찍기 위해 [궁]도 중간에 그만 두었었는데. 그것도 참 옛날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