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세르지오 마르티노 Sergio Martino

주연
아니타 스트린베르크....이리나 루비니
Anita Strindberg....Irina Rouvigny
루이지 피스틸리....올리비에로 루비니
Luigi Pistilli....Oliviero Rouvigny
에드위지 페네크....플로리아나
Edwige Fenech....Floriana
이반 라시모프....월터
Ivan Rassimov....Walter
리카르도 살비노....다리오
Riccardo Salvino....Dario
다니엘라 조르다노....파우스타
Daniela Giordano....Fausta

이리나와 플로리아나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 전 아직도 이 장황한 제목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미를 달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꼭 달 필요도 없는 거 같아요. 당시 이탈리아 영화쟁이들이 순전히 폼 잡기 위해 붙였던 그 수많은 제목들을 모두 분석할 이유가 어디 있나요. 알면서도 속아넘어갈 필요는 없다고요.

제목이 무엇이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에드가 앨런 포 영화입니다. 이탈리아 지알로 스타일로 변조한 [검은 고양이]지요. 적어도 에드가 J. 울머의 [검은 고양이]보다는 훨씬 포의 원작과 가깝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고 지하실 포도주 창고 벽에 시체가 묻혀 있다면 뻔한 게 아닙니까?

그러나 영화는 전형적인 지알로 살인극으로 시작됩니다. 끝이 구부러진 칼을 든 검은 옷을 입은 미치광이 연쇄살인마가 여자들을 죽이고 다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들인 루비니 부부와 살인사건은 무슨 관계일까요? 그건 남편 올리비에로의 옛 제자 겸 정부인 파우스타가 그 살인마에게 희생되었기 때문이죠. 그것만으로 끝이 났으면 좋겠지만 며칠 뒤엔 흑인 하녀 브렌다가 부부의 집에서 무참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범인으로 몰릴까봐 걱정이 된 올리비에로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아내 이리나와 함께 시체를 지하실 벽에 묻습니다. 며칠 뒤, 올리비에로의 조카인 플로리아나가 등장해 부부 사이에 끼어듭니다. 플로리아나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그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게 [검은 고양이]와 어떻게 연결되냐고요? 조금 더 진행되면 압니다. 사실 결말이 포의 원작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공들여 짜놓은 반전이 망가질 지경이죠. 꼭 이럴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까 울머의 영화보다 포의 원작에 가깝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검은 고양이] 요소들을 모두 지워내도 영화의 핵심 부분은 그냥 남거든요.

[너의 죄악은 밀실, 오직 나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의 스토리 흐름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기본 장르 벽돌들을 효율적으로 재구성해서 군데군데 효과적인 국면전환을 깔아두고 있죠. 물론 그것들을 공들여 분석하면 구멍투성이이긴 해요. 예를 들어 살인범의 음모는 다시 보면 굉장히 비능률적이죠. 성취도에 비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고생이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영화는 꽤 그럴싸한 서스펜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만약 [검은 고양이]와 권선징악의 의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건 지알로 장르 공식들이 아니라 그를 통해 펼쳐지는 70년대 이탈리아인들의 타락한 삶의 묘사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냥 타락한 게 아니라 폭력적이거나 불쾌합니다. 남편 올리비에로는 주정뱅이에 마약 중독자에 성차별주의자에 인종차별주의자에다 툭하면 아내인 이리나를 구타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폭력남편이죠. 이리나는 그런 남편에게 정면대응하지 못하고 뒤에서 징징거리는 희생자고요. 플로리아나가 등장한 뒤에도 이들의 사정은 특별히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빠진다면 모를까. 영화는 얼핏보면 넉넉하고 고생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이들의 속내를 박박 긁어 바닥을 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사에서부터 설정에 이르기까지 악독한 느낌이 줄줄 흘러요. 그 때문에 영화가 택한 관습적인 반전이 오히려 먹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만... 이 이야기는 이미 했군요.

노출과 섹스신이 많은 영화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장면들은 대부분 섹시한 배드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에드위지 페네크와 연결되지요. 그 중 가장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건 페네크와 아니타 스트린드베르크의 베드신이겠죠. 그 자체가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있다는 게 중요한 수준이지만요. 하여간 브루노 니콜라이의 야리야리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70년대 유로트래쉬 영화의 끈끈한 살색 느낌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특별히 불평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07/03/12)

DJUNA

기타등등

DVD 부록을 보면 에드위지 페네크는 참 곱게 나이를 먹었더라고요. 물론 보다 해상도 높은 화면으로 보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참, 이 사람은 타란티노의 권유로 [호스텔 2]에 출연한다고 하더군요. 안 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