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진표

주연
전도연....전은하
황정민....김석중
서주희....규리
윤제문....재호
류승수....철규
나문희....석중모
정유석....천수
고수희....황유순
김상호....김경배
김부선....김여인

은하와 석중

박진표의 [너는 내 운명]은 글 쓰기가 참 어려운 영화입니다. 그만큼이나 단순하고 감추는 게 없어요. 영화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들이 표면에 드러나 있으니, 관객들은 그냥 그것들을 집어 들어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영화는 꼭 70년대 호스티스물을 00년대로 옮겨온 것 같습니다. 티켓 다방 레지가 여자 주인공이고 그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순진한 시골 노총각이 남자주인공이죠. 남자주인공의 열정적인 구애 끝에 둘은 간신히 결혼하지만 당연히 그게 끝이 아닙니다.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전남편/스토커가 등장하는 것도 시작에 불과해요. 끝에 가면 불치병 에이즈까지 등장하는 걸요.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은하는 70년대 선배들이 겪었던 수난을 거의 모두 겪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잽싸게 건진 남편이 선배들의 남자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 그건 다행이죠.

이 뻔한 통속성은 몇 가지 이유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이 이야기는 박진표의 첫 장편인 [죽어도 좋아]와 마찬가지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감독 말에는 한 50퍼센트 정도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더군요. 하긴 원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실화란 이렇게 작정하고 통속적인 구석이 있기 마련이죠. 두번째로 영화의 설정과 직설적인 어조에 이 통속성은 어울립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통속성을 일부러 제거하면 오히려 진실되지 못해 보이죠. 다방 레지와 시골 노총각이 주인공들인 영화가 한없이 세련되면 어쩌라고요.

물론 전 이 영화에 계속 의심의 눈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가 일관성 있게 밀어 붙이는 '순박한 시골 남자'의 이미지가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볼 수 있죠. 전도연과 황정민의 감정 연기가 너무 노련하기 때문에 종종 관객들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전체적으로 이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는 보기만큼 통속적이지는 않습니다. 훨씬 예술적 계산이 분명하죠. 차라리 약간의 세련됨을 더 드러냈다면 더 솔직해보였을 정도로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효과적인 멜로드라마입니다. 그만큼 단순무식한 순애보의 힘이 센 거예요. 게다가 실화라잖아요! 위에서 시시한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전도연과 황정민의 감정 연기와 호흡은 굉장히 좋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만 바라봐도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갈 지경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 뭔가 미심쩍다고 머리를 굴리는 건 그냥 의심이 많은 제 성격 때문일지도 몰라요. (05/09/06)

DJUNA

기타등등

기자 간담회에서 박진표 감독은 계속 모델이 된 부부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리더군요. 그래도 영화 내용 대로라면 무슨 잡지에 사연이 실렸던 것 같습니다. 한 번 기사를 찾아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