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이크 캐스단 Jake Kasdan

주연
빌 풀먼....대릴 제로
Bill Pullman....Daryl Zero
벤 스틸러....스티브 알로
Ben Stiller....Steve Arlo
라이언 오닐....그레고리 스타크
Ryan O'Neal....Gregory Stark
킴 디킨즈....글로리아 설리번
Kim Dickens....Gloria Sullivan
안젤라 피더스톤....제스
Angela Featherstone....Jess
매트 오툴....크레이건 빈센트
Matt O'Toole....Kragan Vincent

1.

대릴 제로는 세계 최고의 명탐정입니다. 하지만 그는 실생활에서는 자기 구두끈도 제대로 매지 못하는 대인 기피증 환자이기도 합니다. 사건 의뢰인은 그를 만나지도 못합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모든 업무는 그의 조수인 스티브 알로의 몫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영화는 도대체 언제적 영화일까요? 아무래도 1930년대여야 하겠지요. 찰리 첸, 힐데가르트 위더즈, 미스터 모토와 같은 다양한 괴짜 명탐정들이 스크린을 누비던 그 시대 말입니다.

그러나 [제로 이펙트]는 빌 풀먼과 벤 스틸러 주연의 1998년도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제이크 캐스단은 아직 풋풋한 20대 초반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꽤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90년대에 괴짜 명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하니 패러디 냄새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공식을 패러디하는 것보다는 충실하게 따르는 쪽을 택합니다. 농담같은 도입부와 매우 황금 시대 미스테리 풍인 진상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당히 정통입니다.

이런 선택은 무척이나 당혹스럽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마치 텔레비전 시리즈의 파일럿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식 터치에는 나름대로의 예스러운 매력이 있습니다.

2.

이 영화가 모델로 취하고 있는 작품은 아더 코난 도일의 [보헤미아 왕가의 스캔들]입니다. 스토리 전개는 어딘가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더 닮은 것 같고요. 괴짜 명탐정이 협박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었는데 그만 용의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의 '객관성'을 잃게 된다는 거죠.

이 아이디어는 상당히 입체적인 드라마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카드 보드 캐리커쳐인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려 갈등하면서 점점 인간적인 면을 찾아갑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칼라로 변해가는 [플레전트빌]을 구경할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흥분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쪽 사람들이야!"라고 주장하는 제로에게 던지는 알로의 답변은 이 영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엔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은 없어. 있는 건 그냥 한 무리의 사람들이라고!" 권선징악이나 선악 구분, 심지어 정당한 복수까지 유보한 마지막의 차분한 결말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만화같은 도입부에서 다릴 제로와 스티브 알로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실망했을 겁니다. 후반부에 들어가 속도가 점점 떨어져가는 구조적 문제점도 있고요. 하지만 아이디어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서 영화는 덜컹거리면서도 꽤 잘 굴러갑니다. 제로와 용의자인 글로리아 설리번의 러브 스토리는 차분하면서도 잘 발전되어 있습니다. 러브 스토리와 함께 서서히 드러나는 진상 역시 결말용으로 충분하고요. 제로의 정서적 발전, 러브 스토리, 사건 수사는 모두 적절하게 얽히면서 '평면에서 입체로!'라는 영화의 공동 목표를 위해 사이좋게 돌진합니다.

3.

유감스럽게도 제이크 캐스단은 제로를 충분히 '명탐정'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이건 드라마상의 약점이 아니지만 그래도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알로의 허풍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의 상당 부분은 우연과 억측에 의지하고 있으며 제로의 논리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로의 대인기피증도 종종 오락가락합니다. 아마 캐스단은 생각만큼 추리소설 애독자가 아닌 모양입니다.

갈수록 느려지는 흐름도 지적해야겠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어느 정도 속도를 기대하는 이런 장르에서는 이렇게 여유를 부려선 곤란하죠. 아무래도 작가 출신 초짜 감독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글을 다루는 사람은 자신의 글이 스크린으로 올라가면 얼마나 느려지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제이크 캐스단에게 그걸 교정해줄 경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4.

사방에 덜컹거리는 요소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제로 이펙트]는 얻는 게 많은 영화입니다. 인간적인 깊이는 얇을지 모르나 묘하게 공감가는 면이 있고, 드라마와 코미디의 결합이 균형을 잃었을지는 몰라도 여러 곳에서 튀는 위트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제로 역의 빌 풀먼, 알로 역의 벤 스틸러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구식 추리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잖아요? (99/05/30)

D&P

기타등등

짐작하셨겠지만 제이크 캐스단은 로렌스 캐스단의 아들입니다. 부전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