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2014)

2014.01.24 22:21

DJUNA 조회 수:5599


김동현의 [만찬]은 그렇게 안녕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모두 가부장가족의 혈연으로 묶여있어요. 우선 은퇴 후 아이들의 용돈을 타쓰며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장남인 인철은 그럭저럭 직장에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병약한 아내 사이에서는 아직 아기가 없습니다. 딸인 경진은 이혼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서 보도자료를 확인해보니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하더군요. 막내 아들인 인철은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데 여자친구 사이에서 애까지 생겼습니다.

이 정도면 KBS 저녁 일일연속극 정도의 설정입니다.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몇 개월 뒤면 명절날 한자리에 모여앉아 기념사진 포즈를 취하며 즐겁게 웃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현실세계라면 이렇게 잘 풀리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 영화 속 사람들처럼 최악으로 달리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굉장히 운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만찬]의 주인공들에게 이렇게 나쁜 일들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경제적 문제가 크죠. 실업 문제가 심각하고, 헐거운 복지 시스템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불행은 그밖의 온갖 이유를 달고 있습니다. 타고난 건강이 나쁘고,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남자 보는 눈이 없어 형편없는 배우자를 만났고, 아이가 병이 있고, 추리소설을 안 읽어서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고... 이들 모두가 사회의 문제는 아니죠.

다시 말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불행은 현대 한국 가족의 불행과 불안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사악한 감독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전 [오로라 공주]의 시청자들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순서대로 나쁜 일들을 당하는데 여기엔 이들을 묶는 일관된 원인이나 논리의 흐름이 없습니다. 작가 맘인 거죠. 종종 비교되는 [오발탄]과도 좀 다릅니다.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인 장치들은 [오발탄]보다 훨씬 강하고 독립적입니다. 특히 막내가 겪는 일은 거의 19세기 통속연극 같죠.

[만찬]은 현대 한국 중산층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한국 중년 남성의 멘탈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해석이 가리키는 방향보다는 그런 해석을 하는 관점 자체가 더 가치있는 관찰의 대상인 것이죠. 이렇게 보면 [오로라 공주]스러운 재난의 연속도 이해가 가죠. 이들의 원인보다는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쪽이 더 중요하니까. 단지 주인공들의 관점과 감독의 관점의 차별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저 같은 관객들은 보면서 계속 갑갑할 수밖에 없거든요. (14/01/11)

★★★

기타등등
막내 이야기는 거의 추리로 흐르는데, 보면서 진짜 갑갑했습니다. 일을 너무 엉망으로 처리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감독: 김동현, 배우: 정의갑, 박세진, 전광진, 이은주, 다른 제목: The Dinner

IMDb http://www.imdb.com/title/tt326547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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