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린 언론 시사 후기

2014.04.23 11:38

김별명 조회 수:4660





어제 운좋게 자리 하나 얻어서 역린 언론 시사 다녀왔습니다.
안타까운 이슈로 기자회견 취소되고 상영만 한다고 했는데도 사람들 엄청 많더라고요.
가서 티켓 찾고 옆에서 현빈 팬카페, 디씨 현빈갤 등에서 준비한 깨알 같은 선물도 받았습니다.
여튼, 영화는 잘 보고 왔구요. 음… 캐릭터 별로 간단히 감상평 정리해봤습니다.
은연중에 스포가 될만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까봐 스토리 감상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정조(현빈)
사실 현빈이 연기한 즉위 1년 차 정조는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정된 톤이나 대사에 차차 빠져들었고 새로운 캐릭터에 몰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적 배경이 지극히 짧다 보니(정조 즉위 1년) 당연히 개혁 군주와 같이
역사적으로 후대에 알려진 모습보다는 역적의 아들로서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해
가까스로 왕이 된 신입 임금의 앳됨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생활 속 불안감들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초라하지만 단출한 임금의 서재 존현각에서 책을 읽으며 밤을 부지기수로 새는 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
실제로 정조가 직접 쓴 ‘존현각 일기’에는 세손 시절 그를 위협했던 일파의 이야기까지 기록돼있다고 합니다.
또 아직 상중이기 때문에 백색 곤룡포만 입고 나오는데, 
그 때문인지 설정상 수척한 얼굴도 매혹적(...)입니다. 역광을 잘써서 혼자있거나 말 탈때 얼굴이 엄청 빛납니다;;;

스쳐지나가는 수준이지만 영화에도 영조와 사도세자가 나옵니다. 
근데 사실, 정조가 이렇게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그 근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왕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아버지. 
정조가 즉위하면서부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공표하면서 
정적을 확연하게 구분 짓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와
새 정치에 대한 신념이 크게 반영된 의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현명하고 조심스럽습니다. 차분하고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왕입니다. 
현빈의 대사가 많았다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새뜻을 품은 군주다운 모습으로
가슴 치는 대사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게 현빈의 정조여서 잘 어울립니다.

배경은 아시다시피 즉위 1년, 그 짧은 기간 동안 내시는 물론 한낱 궁중 나인들까지
정조의 음식에 독을 타고 칼을 품기를 수 차례(열세번인가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정조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온 내시 ‘상책’만을 의지하며 지내왔습니다.
왕을 ‘살려야 하는 자’가 바로 ‘상책’인 것이죠.


-상책(정재영)
뭐 연기력을 굳이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습니다만, 여튼 이번에도 무척 좋습니다.
에서는 정조와의 부성애적인 모습을 깊이 느끼게 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형제같기도 하고 부자지간 같기도 하고, 가장 설득력 있고 유대가 빛나는 관계가 아닌가 합니다.
왕을 죽이기 위해 위장 입궁한 내시였다가 정조의 인간됨에 반해 그를 돕게 되는데 
정조에게는 어마어마한 반전을 가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다른 설정 자체가 현대의 킬러인 ‘살수’라는 존재인데요.
이재규 감독이 을 원탑 영화로 만들거나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듯이,
실제로 극중에는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연은 깊고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부분들이 잦은 플래시백을 통해 설명되는데,
현재 인물들의 감성과 존재를 만든 부분들을 같은 방식의 영화적 효과로 자꾸 설명하기에는
버겁거나, 헐거운 부분이 반드시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회상 장면의 잦은 교차가 극의 전개를 늘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면서
이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좀 있었습니다. 

여튼 극중 어린 정조가 상책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너는 왜 내시가 되었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살려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대답합니다. 이 답변이 좀 묘하게 애틋한데요. 
노론의 핵심 배후 세력 중 ‘안국래’라는 내시가 있는데(되려 영화에서는 아주 작은 비중으로 등장하더군요)
이자의 자금줄로 만들고 키워져온 것이 광백(조재현)의 비밀 살막(인간 살수 공작소랄까요)입니다.
굶어죽을 지경의 아이들을 전국 각지에서 거둬다가 전문 살수로 길러내는데
상책 역시 이 살막에서 개처럼 길러진 아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그 사연이야 오죽할까요.
어머니는 굶어 죽고 동생은 맞아죽은 비극의 주인공. 남다르게 비범했던 아이의 악착 같았던 삶.
설명이 충분치 않았겠지만 영화에선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밀어붙이는 육중한 무게감이 전반적인 기조지만 
바로 이 상책과 정조간의 대화에서는 관객들도 다 터질만큼의 유머 코드가 있습니다.ㅋㅋ
그 정확한 대사로 여러번 웃기는데요. 
그만큼 영화 초반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고, 비중이 큰 존재입니다.
원작 속에선 이름이 따로 나옵니다. 영화보면서 첨에는 헷갈렸네요. 



-광백(조재현)
가장 분장 시간이 많이 걸렸고 틀니를 끼고 이북 사투리를 써야했다는 조재현.
정도전이랑 이미지 겹칠까봐 괜히 저혼자 걱정했는뎈 그런 거 하나도 안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레볼루셔너리하고요;;;
하지만 굉장히 천박한 자입니다. 돈 때문에 애들을 잡아다가 개떼들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는데
영화는 인물의 외형이나 분위기 묘사에 보다 많이 집중한 것 같습니다. 악이죠 악. 반드시 단죄되어야만 하는.
광백은 전형적인 ‘악’의 모습을 고루 드러냅니다.
왕을 죽이기 위해 무자비하게 길러온 살수(조정석)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이 역시 아주 비열합니다.
광백이 거대악을 자처하고 있는 건, 대사로도 직접 드러납니다. 거대악은 하나의 흐름이자 세력인거죠.
이에 반해 정조는 ‘온 정성을 다하는’, 지극히 사소한 것 하나로부터도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기에 이들의 대립감은 극치를 달립니다.



-살수(조정석)
역시 광백의 비밀 살막에서 길러진 살수입니다. 
기대가 많았던 역할이고, 영화 후반부 액션에서 정조와 맞대결을 벌이며 액션과 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초반엔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정조 암살에 투입될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광백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마지막 ‘일’로서 왕 모가지를 가져오는 일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됩니다.
애틋한 로맨스도 나오고, 냉철하고 잔인한 살수와 따뜻한 한 남자의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사연을 가진 인물인데... 원작에 비해 아쉬운 면이 좀 있엇고요 
두 남녀의 비주얼은 훌륭하지만 역시 영화적 설명의 잦은 투입으로 
약간 곁가지로 느껴진 로맨스도 좀 안타까웠습니다.ㅠㅠ



-정순왕후(한지민)
아쉽다는 평이 많고, 그에 대부분 동의를 합니다. 일단 배우 자체가 악역이 드물었다보니
관객이나 배우나 몰입이 잘 안 되는 것 같고 작위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체의 말투나 특정한 어조가 많이 어색했습니다. 실제로 정조의 할머니였고
영조와 50살이 넘는 나이 차이가 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고서 봐도
의상이나 설정이 과도하게 튀는 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백옥 피부의 현대 미인같음 ㅠㅠ
정순왕후의 표독스러움만 너무 강조하려다 보니 캐릭터가 일면 단순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영화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성격을 노출시키려고 시도하는데 예를들어 
상중에 빨간 소복을 입고 있는다거나 임금 앞에서 다리를 척척 내밀며 시중을 받는다거나
가뭄에 기근이 만연한데도 호화로운 물놀이를 즐기는 등의 역시 외적 표현이라 내적 설명은 다소 부족해보입니다.
실제로는 노론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실세 중의 실세로 정조와 맞대결을 벌이는 인물이고 
잘 나갈 때(?)는 신하들에게 개별 충성 서약을 받았을 정도로 권위가 대단했습니다.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본인보다 10살 이상 많은 연상이었기 때문에 
정조가 세손이었을 때부터 갈등이 많았고
때문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캐릭터의 한계를 떠나, 정조의 집요한 정적으로서 그녀의 역할을 좀 더 알고 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정조 암살을 위한 24시간, 그 근거리 시간의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난 뒤 밝혀지는 반전과 결말...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좀 더 컴팩트하게 쳐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외 혜경궁 홍씨, 홍국영 등의 역할을 맡은 김성령, 박성웅의 연기도 좋았고 탄탄했습니다.
일단 안심하고 볼 수 있는 배우들이 많아서 괜찮았고, 
스스로 현빈의 정조에 몰입하게 된 뒤로는 더 불안하지 않게 봤던 것 같습니다. 

좋았던 건, 다모 감독과 제작진들의 화려한 결합답게 스타일리시한 액션이었고요. 
특히 앞부분의 도입부 영상이나 황천강을 건너는 느낌으로 절박하게 찍었다는 
살수가 강을 건너오는 장면은 진짜 압도적입니다. 미학적으로 볼 구석이 많은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웅장한 음악도 한몫을 하고요. 저는 너무 기대해서 아쉬운 부분들이 여럿 보였던 것 같은데,
감독 말처럼 ‘메시지는 밑에 깔려있고 표면은 그냥 쉬운 오락영화’처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그들이 각자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정리가 잘 안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좀 이래저래 정보를 많이 접하다보니 아 저게 저사람이구나 그러면서 봤는데, 
저도 아직 원작은 1권만 읽어서 본편 내용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소설이나 지금 소규모지만 3D로 보실 수 있는 다큐 '의궤, 8일간의 축제'를 보고 가셔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큐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수원화성에서 하기 위해 행차하고 
잔치를 베풀고 돌아오는데 소요된 8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갇혀 죽은 기간인 꼭 8일 동안 잔치를 여는 등 그 이면의 의도가 많고, 
아버지를 죽음에 몰았던 세력에 대한 경고의 일환으로 사건의 배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을 듯합니다.
영원한 제국은 보지 못해서 어떻게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구구절절 적다보니 잘 분간이 안되는데 스포될만한게 있으면 정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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