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원인들.  그리고 이후 사고 대처를 보며 머리 속을 계속 맴도는 말.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법이 있고 규약이 있고 시스템이 있지만 그것을 무시해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지적해도 지적한 이가 조직에서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배신자 취급당하는 사회.
책임과 권한.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우까지 받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해도 문책당하지 않는 사회.
오히려 그들이 큰소리 뻥뻥치고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아도 문제없는 사회.
개인의 잘못은 당연 처벌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그 개인이 잘못을 하게 된 시스템 자체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그것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끝나는 사건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는 사건 사고들.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IMO(국제해사기구)의 각종 규약과 협약은 매우 꼼꼼하고 타이트해서 육상의 웬만한 법규보다 훨씬 나은 부분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지켜야 하는 국가. 조직. 개인들이 설마하는 마음에. 돈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때 사고가 발생하고 인명 구조에 헛점이 발생합니다.

청렴도와 직업의식 등은 그저 개개인에게 강요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에 맞는 권한을 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일단 해줘야죠.
하지만 부정. 부패가 발견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조사하고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세상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 김기춘 같은 사람이 관뚜껑 열고 다시 돌아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독재도 있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에겐 싱가포르라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일당독재. 부자세습.  모두 하고 있지만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이 대한민국에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네에.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요.

제 전공은 조선공학입니다.
덕분에 하고 싶은 얘기. 할 수 있는 얘기도 많지만 괜한 동어반복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성적이고 합리적 의견. 판단입니다. 라며 감정없는 행위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아끼게 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는 계속 신경이 쓰여 관련 내용 포스팅을 합니다.


1. VHF 16번 채널과 life raft

사고일 저녁 뉴스를 보며 저는 애인분께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계속 버럭버럭 했습니다.
대체 왜 저렇게 선박의 전복 속도가 빠르지?
아니 전복 속도가 빠른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대체 왜 이렇게 구조자 수가 적지?
망망대해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연안. 그것도 주변에 조업하는 어선들 가득했을테고 구조선들도 금방 
달려올 수 있는 해역에서 사고가 났는데 왜 저렇게 구조자 수가 적지?
아니 그보다 화면을 아무리 봐도 펼쳐진 life raft가 하나 밖에 안 보이는데 대체 왜 작동이 안된거지?

뭐? 선장이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고?
뭐? 신고가 늦었다고?
아니 어버버하다가 해경에 신고가 늦었다 해도 VHF 16번 채널은 뒀다 뭐한거지?
그쪽 채널에 한마디만 했어도 근처 어선들이 미친듯이 달려왔을텐데?
등등등.

이미 밝혀졌지만 실제 16번 채널을 사용하지 않았더군요.
전세계 모든 선박은 해양상의 공통 송수신 수단으로 VHF 16번을 사용합니다.
각종 조난과 긴급상황에 대비해 무조건 켜놓는 채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태안 사고 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관제센터는 사고 2시간 전부터 예인선들에게 대형 선박 정박을 알리려 호출했지만 교신에 실패했습니다.
당연 16번 채널로도 연락을 했지만 역시 교신 실패.
태안 때 16번 채널 사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 문제가 되었었는데 대체 왜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을까요.

93년 서해페리호 사고 때도 구명장비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었습니다.
21년이 지나도 같은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는 사회. 
하나만 더 거론해 볼까요.
당시 사고 때도 정확한 승선 인원과 승선자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었기 때문에 이후 이런저런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었죠.
21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2. 세월호가 오래된 배라서 문제인가? 이명박 정부에서 선령제한을 늘린 것이 문제인가?

단답형으로 답변하자면 모두 아니오. 입니다.
사고 이후 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세월호의 선령을 문제삼는데 이건 문제의 핵심이 전혀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선령제한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뿐입니다.
필리핀의 경우 초쾌속선의 경우만 선령제한을 할 뿐 여객선의 경우는 제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연안여객선 선령제한 제도는 우리나라. 중국. 필리핀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특별한 제도입니다.
그럼 다른 나라들은 대체 왜 하지 않을까요?
선박의 나이 따져서 안정성을 따질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선박의 노후라는 건 단순하게 건조된 지 몇년이 되었느냐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피로누적 정도. 강도 변화. 부식. 마모 등등.
이런 것들로 측정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측정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안전검사를 합니다.
안전검사 제대로 하고 관리감독 제대로 하면 모두 끝나는 문제를 그걸 제대로 하지 않으며 그저 선령제한으로 일괄적으로 몇년 지나면 폐선.
뭐 이런 짓이나 하고 있는게 과연 정상일까요.

선박검사제도 강화.
선박관리제도 강화.
여객선 안전성 증진을 위한 조치(복원성 요건 강화)
등등.  우리나라와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이러한 간접적 조치들로 여객선 사용을 통제하고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검사 통과 못하면 운항 자체가 되지 않거든요.
이런 부분은 전공자가 아니라도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을텐데 대체 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잘못된 사실을 무분별하게 전파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선령제한을 두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고 적극적인 안전검사와 운항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해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는 걸 다루는 것이 맞을텐데 그저 오래된 배를.. 운운하며 자극적인 기사들만 쏟아내고 있더군요.

이번 구조 현장에 투입된 평택함의 경우 68년에 건조. 72년에 취역. 96년 미해군에서 퇴역했습니다.
그걸 우리 해군이 가져와 현역으로 뛰고 있고 아무 문제 없잖아요?
1913년에 건조된 독일의 Graf Goetzen. 이거 여객선으로 개조되어 현역으로 잘 뛰고 있습니다.
이런 배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해상에 한두척이 아닌데 아 정말!


3. 이후

해상에서 발생한 사고는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면 해상 사고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도 않고 사고 당시의 기상 상황. 조류 상황. 운항 상황 등등.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사고 원인은 이것이다. 라고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빨리 원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모든 것을 투명하게 조사하는 거죠.
사고 원인은 물론이며 사고 과정. 구조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문제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에게 조사를 의뢰해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제대로 진행될까요?
천안함에 대해 아직까지도 당시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건 그들이 종북이라 그런 것이 아니죠.
조사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남북대치 상황 때문에?
멍멍이 풀뜯어먹는 소리죠.

당시 사고 역시 발생 이후부터 구조 진행 과정까지 정말 한심했죠.  
어찌보면 지금의 도플갱어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까요?
네에.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요.

1986년에 있었던 미국의 챌린저호 사건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꺼예요.
당시 나사는 기밀사항이 소련에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발사 관련 인원들을 격리했고 사고 조사도 자신들이 했습니다.
천안함 때와 똑같죠.  조사에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것 역시 똑같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는 언론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조사 방식에 대해 언론들이 엄청나게 질타를 했고 나사의 내부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폭로들도 나왔죠.

차이는 또 하나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종북이니 빨갱이 타령을 하며 입막기에 급급했지만 백악관은 사회적 갈등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대통령 직속 조사위를 새로 꾸립니다.  
심지어 당시 대통령은 보수와 냉전의 아이콘 레이건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나사와 관련이 없는 이들로 구성되었고 독립성을 보장받았습니다.
리처드 파인만 박사가 이때 대활약을 했었죠.
조사 결과에 대해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강조를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구성된 위원회는 무려 5개월에 걸친 조사 과정을 끝내고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논란은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사한 위원회와 위원들을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보고서 역시 신뢰를 얻은 것입니다.

이번 사고는.
아니 이전에 있었던 각종 대형 사고들은 모두 인재고 국가 재난입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 장소만. 형태만 달리해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재난입니다.

더 큰 재난은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책임 회피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거죠.
심지어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네요?  -_-;;;
사고 이후 8일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사고를 인지한 시간이 언제인 지도 밝히지 않고 있어요.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

해수부 마피아니 뭐니 하며 그것을 엄격하게 조사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요.
낙하산 엄청나게 투척한 청와대에서.  어찌 낙하산 하나 잘 잡아볼까 아직도 노력하는 이들 많을 여당에서 뻔뻔하게 할 소리는 아니죠.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참혹하게 잃어버린 10년으로 기록될 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 drl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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