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 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나쁜 질문

 

김한민 감독의 명량은 이미 다들 많이 들 보셨고, 상식적으로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이순신이라는 한반도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위인의 가장 화려한, 그 개인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웠을 명량해전의 한 대목을 영화화한 이야기입니다.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처럼 명량은 이후 한산과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3부작 중 첫 번째 시리즈로 만들었다고 하고요. 이미 천만 관객을 넘었으니 후속편 제작 걱정은 안해도 되는 상황이 됐네요.


영화의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 내부의 공포라는 감정(아마도 패배감을 포함하는 이야기라고 봅니다)을 어떻게 용기로 전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 두 번째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충성과 의리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이죠.


김한민 감독은 정유재란 당시 무능한 조정과 수습할 수 없는 조선백성의 패배감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12(사실 13)의 배로 삼백여척의 왜군을 막아내는 울돌목의 극적인 순간의 정밀한 묘사를 통해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 하고 있죠.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 두 가지 질문이 얼마나 좋은 질문인가 하는 것일 겁니다


김한민 감독이 제시한 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에 집중해야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미 천만이 넘는 관객들이 김한민 감독이 제시한 답에 대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답이 정답이어서 라기 보다는 우리가 듣고 싶은 답이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의 동의를 얻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공포와 패배감을 용기로 바꾸어 내기위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의 답으로 감독은 자기희생적 리더십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우리에게 있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의리는 곧 백성, 국민에 대한 충성과 의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후 전 국민적 우울감 속에서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명된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것을 눈으로 나마 확인하고 국민이 곧 국가라는 이야기를 귀로 듣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영화관을 벗어나 광화문으로 나가면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그 스스로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책임회피와 국면전환만을 꾀하는 노회한 정치인들의 천박한 귀환을 만나게 되죠. 결국 감독의 두 가지 질문은 관객을 기분 좋게 할 만한 질문이긴 하지만 사실 어떠한 의미도 없는 질문일 뿐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 제대로 된 질문이려면 두 가지를 반대로 질문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면화된 공포와 패배감을 극복하기위해서 우리는어찌해야하는가?, 국민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키는 리더십을 강제하기위한 우리의선택은 어찌해야하는가? 로요.


아마도 저를 포함해 눈물을 흘리며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를 울돌목이 아닌 진도 앞바다로 치환해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구조하지 않는 세월호의 침몰 모습을 영웅적 리더의 활약을 통해 전황을 반전시키는 명량의 이야기로 겹쳐서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영화적 해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또는 이 영화를 416일 그때, 만약 영웅적 리더가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다시 쓰는 대체 역사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르죠. 이것이 천만 영화의 숨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이 영화가, 이 질문이 좋은 것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영화가 현재 이 사회에 던지는 일종의 질문일 수 있다면 우리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다음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아무리 좋은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우린 그다지 멀리 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던지면 비록 끝내 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답을 찾는 과정 중에 이미 꽤 멀리 까지 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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