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턴 3호 SATURN 3

2014.10.09 20:52

Q 조회 수:3274

새턴 3 Saturn 3

 

영국-미국, 1980.    


An ITC (International Television Company) Production. 화면비 1.85:1, 35mm. 1시간 28분

Directed by: Stanley Donen

Written by: John Barry, Martin Amis

Cinematography: Billy Williams

Production Design: Stuart Craig

Robot Design and Animatronics Special Effects: Colin Chilvers

Matte Painting and Visual Effects: Dennis Bartlett, Roy Fields, Wally Veevers, Peter Parks, Keith Holland

Music: Elmer Bernstein


CAST: Kirk Douglas (애덤), Farrah Fawcett (알렉스), Harvey Keitel (벤슨), Roy Dotrice (벤슨과 헥터의 목소리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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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 3호] 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국의 극장에서 공개된 적이 없이 그냥 소공동에서 유통되는 불법비데오로 빌려다 보았던 한편이다. 최소한 나의 기억에 비추어볼때 1980년중반까지의 한국에는 [스타워즈] 라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고 성룡이라는 메가스타가 그 압도적인 흥행력과 더불어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자리매김하려고 하던 시대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1977년부터 1983년 정도까지 너도나도 [스타워즈] 를 흉내내어 SF 블록버스터를 만드려고 덤비다가 처참하게 으깨지는 참사가 벌어지던 시기이기도 하고, 개중 [에일리언] 이나 [블레이드 런너] 처럼 현재까지도 명성을 유지하는 걸작들도 이 시기에 기획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겠다. 어쨌거나, [새턴 3호] 정도까지 되면 아무리 저예산 착취영화적 아이템을 가지고 맵시있게 뽑아내는 재능을 지녔다는 루 그레이드 경이라 할지라도 솔직히 무리수인 기획이었다. [찰리스 엔젤] 의 경이적인 히트로 말미암아 한때 미국 최고의 여자 스타로 군림하던 파라 포셋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 물론 영화가 엎어지지 않고 만들어지게 된 큰 이유중 하나였을 것이다. 


 대놓고 말하자면 각본은 별로 좋지 않다. 내용은 수준적인 SF 중편 정도의, 로보트인 헥터의 “인성 교육” 을 둘러싸고 감성에 메마르고 배려심이 부족한 전형적인 “미래인”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거창한 세트를 만들어서 토성의 위성에 건설된 우주 기지에서 이 스토리가 벌어져야 할 필연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환경파괴를 주도한 기계문명을 비판한다는 명목하에 인간 등장인물들을 찰나적인 즐거움에 집착하는 자기 모순적인 위선자로 만들거나 (애덤의 경우), 약품에 의존하지 않으면 상식적인 인간 관계도 이루지 못하는 싸이코패스 (벤슨의 경우) 로 그리고 있다. 그래도 두 남자들은 목적의식이라도 있지, 알렉스의 경우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보다 약간 나은 존재 정도의 위상이다.


그리고 [새턴 3호] 정도의 작품에 일일히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고 “비과학적” 인 묘사를 집어내서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이 한편을 한두번을 본 것이 아닌데, 여전히 그 전반적인 세계관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구는 인구 증가와 환경파괴로 쫄딱 망한 것 같고, 새턴 3호 스테이션에서 식량 증산을 비롯한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애덤은 알렉스와 함께 매일 농땡이를 까고 자빠져 있고, 벤슨 소령은 원래 새턴 3호에 파견되기로 되어 있던 다른 장교를 살해하고 그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헥터를 몰래 빼돌린것이 들킬까봐 그를 죽인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헥터는 어떤 기관에서 어떤 경위를 걸쳐서 만들어낸 프로젝트인지, 왜 한눈으로 척 봐도 싸이코패스인 벤슨에게 헥터의 “어린 뇌” 를 훈련시키는 역할이 맡겨진 것인지 (벤슨이 헥터를 개발자인 누군가로부터 강탈한 거라면, 목 뒤의 사고 [思考] 전송 장치도 벤슨이 임의로 만들어다 붙인 것인가?), 그것도 아리까리하다. 설정이 이렇게 흐릿한 구석이 너무나 많다 보니까 스토리에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감독은 놀랍게도 [Singin' in the Rain] 과 [샤레이드] 를 만든 뮤지컬계의 거장 스탠리 도넨이다.  이 한편의 캐릭터 다이나믹을 이러한 굉장히 양식적이고 인공적인 '50-'60년대형 뮤지컬 영화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닌데, 도넨은 [Bewitched] 같은 현대 코메디에서도 지극히 도회적이고 세련된 감수성을 발휘했던 분이다.  본인의 의향대로 스타일리쉬하게 초현실적인 (SF 적 고증을 무시한) 비주얼을 마음껏 만들게 내버려두었더라면 더 흥미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캐스팅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비 카이텔과 커크 더글러스 둘 다 연기력으로는 알아주는 분들이지만 카이텔의 경우는 거의 확실히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말아라” 라는 식의 연기지도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나보이고, 거기다가 영국 배우 로이 도트리스에 의해 “사악한 영국인 귀족” 투의 액선트로 더빙을 당해버렸으니. 아니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영국 배우를 쓰지 않고? 줄리안 글로버부터... 수도 없이 있는데. 아직도 살아계시는 (!) 커크 영감님께서는 촬영 당시에 63 세 (!) 셨는데 거침없이 발가벗고 카이텔한테 달려들어 목을 조르는 과격한 액션 신을 선보이신다. 헐리웃 노장 스타의 관록이야 뭐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에너지는 넘쳐나지만 신빙성은 전혀 없으시다. 8기통엔진이 달린 세발자전거 같다.


그리고 최악의 문제가 파라 포셋이 연기한 알렉스 캐릭터인데, 포셋이 연기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TV 영화 [불타는 침대] 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시달린 끝에 마찬가지 끔직한 폭력으로 반발하는 여인상을 감동적으로 표현해서 칭찬도 많이 받았고. 그러나 [새턴 3호] 를 보고 있노라면, 이 연기자님에게는 역시 TV 스크린이 적합했구나 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수증기를 뿜어내는 파이프들이 여기저기 칡넝쿨처럼 얽힌 대규모 에스에프 세트안에서 하얀 천만 두르고 뛰어다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우주 스테이션 베이비” 를 연기하려면 훨씬 더 (어린시절의 위노나 라이더처럼) 순수하고 요정스러운 모습이거나, 아니면 아예 ([별들 너머의 전쟁] 의 시빌 대닝처럼) 캠피함을 무릅쓰고라도 섹스어필을 과시했어야 하는데, 포셋은 요정스럽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다. 눈매에는 총기가 없고, 손짓 등의 제스처에는 어필이 없다. 괴롭거나 힘든 모습 등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연기로 표현을 잘 하지만, 플러스 알파의 무비 스타로서의 매력이 전무한 것이다.


이러한 SF 블록버스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서사의 장중함과 흡인력, 그리고 스타들의 매력적인 연기라는 요소를 포기하고, [새턴 3호] 에서 남는 볼만한 거리가 전혀 없냐면 그런 것은 아니다. 먼저 1980년대 초반의 아날로그적 특수효과가 지닌 한계를 고려에 넣고 보더라도 원래 감독이자 [수퍼맨] 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였던 존 배리 (작곡가 존 배리와는 동명이인) 가 총괄한 디자인은 멋있는 곳은 확실히 멋있다. 전반적으로 영국의 상업디자인계 취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인체해부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척박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기적인 콜린 칠버스의 로보트 헥터 디자인도 유니크하다. 영화안에서의 헥터는 거의 70-80% 기계적인 수단을 써서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CGI 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이 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얼굴” 이 없는데도 일정의 감정을 사운드와 몸짓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80년대형 “괴물” 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보자면 헥터는 괜찮은 축에 속한다.


그 의외의 특이한 점으로는 엘머 번슈타인의 음악을 들 수 있는데, [스타 워즈] 의 존 윌리엄스나 [스타 트렉] 의 제리 골드스미스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더 멜로디어스하면서도 웅장한 심포닉 스코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여담인데 이러한 심포닉 스타일의 번슈타인의 걸작은 애니메이션판 [헤비 메탈] 이다).


샤우트 팩토리에서 출시된 블루레이로 보는 [새턴 3호] 는 VHS 버젼과는 완전히 딴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화면비도 화면비지만 어두운 화면의 색감하며, 기타 시각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황당한 격차가 나기 때문인데, 물론 그 덕택에 비데오테이프로 볼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매트 페인팅의 조악함 (최악의 퀄리티는 헥터가 벤슨이 타고 온 잠자리형 로켓을 폭파하는 장면의 불꽃) 이 폭로된다는 안좋은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새턴 3호] 같은 한편에 있어서는 유감스럽게도 리바이벌에서 35미리 프린트로 상영이 된다고 하더라도 블루레이로 틀어주는 것보다 화질이 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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