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위험한 관계 Eva (2011)

2014.10.24 02:31

DJUNA 조회 수:28026


[오토마타]를 보면서 계속 이 영화 [에바: 위험한 관계] 생각을 했지요. 이 작품도 [오토마타]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의식있는 기계와의 관계를 다룬 스페인 영화입니다. 시대도 비슷하고요. 모두 2040년대가 배경이죠. 단지 접근방식이 많이 다르고, 결정적으로 [에바]가 더 좋은 영화입니다.

[오토마타]와는 달리 [에바]의 미래는 평온하기 그지 없습니다. 오로지 겨울만 있을 거 같은 눈덮인 대학도시가 무대예요. 태양폭발도 없고 공해의 흔적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 두 세계 모두가 의식있는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영화의 주인공은 알렉스 가렐이라는 로봇 공학 천재입니다. 10년 동안 외지를 떠돌던 그는 SI-9라는 자유의지가 있는 소년 로봇을 만들기 위해 고향을 돌아오죠. 로봇의 모델을 찾던 그는 에바라는 조숙한 10살 소녀를 만나는데 알고 봤더니 그 아이는 동생 다비드와 지금은 다비드의 아내가 된 그의 옛 여자친구 라나의 딸이었습니다. 에바에게 매료된 알렉스는 소녀 로봇으로 방향을 바꾸고 에바를 모델로 삼으려 합니다. 라나는 딸이 로봇의 모델이 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지만 알렉스의 친구가 된 에바는 스스로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요.

[에바]의 과학은 그렇게 치밀한 편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과학적 논리를 들이대면 이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모두 설명하는 대신 거의 옛날 이야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장르적 비약을 허용하고 있어요. 패션과 같은 건 일부러 복고풍을 강조해서 구체적인 미래의 이야기라는 분위기를 죽이고 있고요. 하긴 [에바]의 이야기는 E. T. A. 호프만이 썼을 법한 자동인형 이야기에 더 가까워요. 딱 그 정도만 기대하고 보면 되는 영화입니다.

공식적인 주인공은 알렉스이고 그가 고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 멜로드라마틱한 상황이 영화의 주를 이루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타이틀롤인 에바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좀 재미있는 조숙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아나 토렌트 이후 스페인 아역의 전통을 따라 죽음과 멜랑콜리의 운명이 묶인 비극적인 소녀죠.

SF 논리가 약하다고 했지만 에바와 관련된 사건들은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가 어떻게 파국으로 빠질 수 있는가에 대한 우울한 예측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는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 같은 거창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모든 일들은 개인적인 멜로드라마의 범위 안에서 맺어지죠. 그 때문에 더 애잔하지만. (14/10/24)

★★★

기타등등
다니엘 브륄이 주인공이니 당연히 더빙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거 같은데, 이 사람은 바르셀로나 출신이에요. 원래 이름은 다니엘 세자르 마르틴 브륄 곤잘레스 도밍고. 아버지가 독일인, 어머니가 스페인인이죠. 영화는 카탈란어와 카스티야어 두 개 버전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더빙되었는지, 따로 찍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둘 다 모르니까 제가 본 게 어느 버전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하여간 대부분 카탈란 사람들이 그렇듯 브륄은 두 언어 모두 할 줄 안다고 합니다.


감독: Kike Maíllo, 배우: Daniel Brühl, Marta Etura, Alberto Ammann, Claudia Vega, Anne Canovas, Lluís Homar, Sara Rosa Losilla, Manel Dueso

IMDb http://www.imdb.com/title/tt129855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6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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