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2014)

2014.11.18 01:41

DJUNA 조회 수:10730


부지영 감독의 [카트]에 이야기를 제공한 '실화'는 2007년에 있었던 홈에버 파업이죠. 하지만 꼭 구체적인 그 특정사건에만 얽힐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영화 역시 상황의 보편성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고.

대형마트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이 중심이 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재의 영화가 다룰 법하고 다루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교과서적인 순서를 통해 전개되지요.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능이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스스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스토리와 주제에 종속된 사람들인 겁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이 대형스타들을 캐스팅해 만든 주류 영화라는 것입니다. 마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운동권 영화에는 안 나올 것 같은 사람들이 줄줄 나옵니다. 염정아, 김영애, 문정희, 김강우 같은 배우들. 특히 염정아를 마트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죠.

이 정도면 왜 [추적 60분]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염정아를 캐스팅해서 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이 나올 법 한데, 극영화에는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다루지 못하는 영역이 있죠. 오로지 허구의 극영화만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영토가 따로 있는 겁니다. 이야기는 보다 개인적이 되고 실제 인물을 다룰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들 중 염정아가 나오는 주류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따로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영화는 보다 넓은 관객들을 겨냥한 멜로드라마가 되고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른 한계를 끌어안게 됩니다. 묘사는 절제된 편이고 이야기는 통속적이죠. 하긴 대부분 이런 운동권 영화들이 작정하고 통속적이긴 했군요. 하여간 이 선택 때문에 잃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꽤 긴 리스트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도 많습니다. 어차피 '걸작'이 될 생각이 있었던 영화는 아니었어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완성도는 적당히 접어도 됐죠. 그리고 영화는 주류 멜로드라마로서 상당히 성공했어요. 날 것의 메시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도 멜로드라마가 그걸 불편하지 않게 감싸안고 있어서 거슬리지가 않고 이야기의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의 연대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합이 중요한데, 이들의 앙상블이 굉장히 좋아요. 염정아 같은 스타에서부터 천우희, 지우와 같은 신인들, 이름없는 단역까지 벽 없이 잘 어우러져 있고 그 결과 발생하는 시너지도 상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스타 캐스팅의 덕을 상당히 보고 있죠. 예를 들어 앞에서 염정아를 계약직 마트 직원으로 상상하긴 어렵다고 했는데, 그 때문에 특별히 캐릭터를 쌓는 작업 없이도 여분의 드라마와 서스펜스가 발생해요. 반대로 김강우나 김영애의 경우는 그냥 배우에 맞춘 것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좋아요.

물론 같은 소재와 주제를 다룬 더 나은 영화, 더 새로운 영화에 대한 예술적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카트]의 시도가 안전한 반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반복이면 또 어떤가요. 같은 도구가 효과적이라면 계속 쓰는 것도 좋죠. (14/11/18)

★★★

기타등등
마실 나온 동네 아줌마들과 같이 봤는데, 관객 반응이 좋더군요. 박수도 나오고.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내용에 대해 상당히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타겟이 되는 관객들을 제대로 찔렀다고 할 수밖에.


감독: 부지영, 배우: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황정민, 천우희, 지우, 도경수, 김수안, 김강우, 이승준, 다른 제목: Cart

IMDb http://www.imdb.com/title/tt395383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8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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