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summer snow

2015.01.05 20:54

catgotmy 조회 수:1743

   전철 선로에 내려갔다. 폭탄을 설치하고 역에서 나왔다.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학원까지 걸어갔다. 학원 앞은 평소보다 붐볐고, 자전거를 탄 사람도 많았다. 수업을 듣고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갔다.


  “오빠, 다녀왔어.”


   다운받은 게임을 켰다. 오프닝 없이 게임이 시작됐고 아무런 설명 없이 도시에 서 있다. 뭘 해야할지 몰랐고, 조작 설명도 없다. 좌측 아날로그를 움직이니 캐릭터가 움직였다. 캐릭터는 “집으로 가야해”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난 집이 어딘지 몰랐다. 앞에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무슨 소릴 하냐면서 바로 옆이 내 집이라고 했다.


   집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고, 나한테 우호적인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음성을 들으면 알 수 있는 트렌스젠더, 두목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헬멧을 쓴 사람.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내 집이니까 들어가려고 하자 헬멧에게 맞았다. “내 집이라고!!” 구타를 당하고 게임오버.


  당장 저 집에 들어갈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마을을 돌아다녀보니 조용해 보이는 첫 인상과 다르게 시끄러운 동네였다. 웬 작은 남자가 날 보더니 따라오라고 해서 저건 뭔가 쳐다보는데 소주병을 깨서 날 위협했다. 잡혀가는 도중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컨트롤러를 잡고 이리저리 누르고 흔들어서 빠져나왔다. 이것저것 누르다 셀렉트 버튼을 누르니 핸드폰 화면이 나왔다. 목록에는 여동생 하나밖에 없었다. 여동생은 집으로 갈 테고, 집은 그런 상태고,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갔다. 오토바이 헬멧이 도망가려는 여동생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동생이 돌아와서 게임을 껐다.


   여동생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첫 번째 기억은 같이 보노보노를 봤던 일이다. 여동생은 세살인데도 낯을 가려서 오빠인 나에게 가까이 오질 않았다. 보노보노를 켜놓고 아무 생각없이 보고있는데 여동생도 정신없이 빠져서 봤다. 가까이 가서 여동생을 품 속에 껴안고 애니가 끝날 때까지 품고 있었다. 보노보노에 대해선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여동생의 촉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엉덩이가.


  여동생과 밥을 먹고, 다른 게임을 켰다. 산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강제진행 되는 부분이었다. 장애물을 피하고, 점프 하고, 퀵타임 이벤트를 하면서 정신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게임 코너로 갔다. 오빠에겐 게임기가 필요 없다. 전부 다운 받아서 하면 되니까. 체감형 컨트롤러는 다운 받을 수 없어서 wii를 갖고 싶어했다. 배덕한 오빠다. 고민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게임을 켰다. 원형의 스테이지의 한 쪽엔 커다란 못, 한 쪽엔 여동생이 묶여있고, 그 옆엔 뱀이 지키고 있다. 못을 뽑아서 뱀에게 가져갔더니 못을 휘감았고,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여동생은 일어설 힘이 없었다.


  다음 스테이지는 폐쇄된 별장이었다. 두 개의 방이 있는데, 한 쪽은 몇 명의 사람과 긴 식탁이 있고, 다른 방은 서랍 같은 것이 있는 부엌이었다. 체크할 것이 많지 않다. 사람이 있는 곳에 작은 구멍이 있고, 그곳을 통해 방이 촬영되는 것 같다. 여자 한 명은 촬영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옆 방 서랍엔 녹화중인 비디오가 있었다. 그걸 부쉈더니 여자는 안심했다.


  근거는 없었지만, 이건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컴퓨터로 녹화할 것이다. 비디오는 가짜다. 렌즈를 부수면 되겠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식탁 위에 여동생이 누워있다. 사람들은 초조해하면서 여동생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여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옆방에서도 이 방에서도 아무 것도 발견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직 여동생에게만 액션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오빠, 다녀왔어.”


  게임을 끄고, 같이 밥을 먹었다.


  여동생의 결혼식이었다. 부모의 장례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식장에서 만화책을 봤다. 재밌어서 본 것은 아니었다. 장례식때 무슨 만화책을 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만화책도 기억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친척들은 이런 나를 불쾌하게 봤지만, 나도 이렇게밖엔 할 수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혼자 남은 집에서 게임을 켰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라, 게임을 하면서 여동생에 대해 생각했다. 여동생이 고등학생 때 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여동생이 다쳤다고 했다. 학교로 갔다.


  운동장엔 육상부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높이뛰기를 하는 여학생은 영원히 떠 있는 것처럼 점프를 했다. 간호실에 들어가니 여동생이 한쪽 허벅지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다. 여동생을 업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여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릴 때 만졌던 엉덩이의 촉감이 생각났다.


  게임은 끝났고, 주인공과 히로인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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