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회에 대한 단상

2015.06.18 16:17

Hopper 조회 수:1726

현 게시판의 상황이나 이에 대한 생각은 이미 너무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탤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한 마디의 피로가 될 뿐.

"그러면 네가 글 좀 올리던가"라는 말처럼 저또한 가끔씩 진지 먹은 글만 올리는 유저에 불과했으니 그런 리액션에 어떻게 응수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언제부터인가 "듀게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끔 들어와서 마음에 드는 댓글이나 글에 "+1"을 더할 뿐. 

 

하지만 이 게시판 그리고 작금의 나라상황을 보며, 다시 한번 제 스스로가 가진 '편견'을 조금 굳히게 되었습니다.(큰 일입니다.)

현재의 논란과는 전혀 상관없으면서도 어찌보면 상관 있는 여러 단상들입니다. 



1. (나와 상식이 다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생각이 다르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설득하고 말하고 바꾸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사람 구분 못하고 막 사귀지 않습니까. 하지만 (타인이 저에게 하는 행동이나 생각에 한정해서) 바꾸려고 들면, 결국 못 바꾸더군요. (연인,가족 포함) 무엇보다 다른 상식과 전제를 지닌 사람은 이미 그 상식과 전제로 여러 해를 살아왔고 그것을 바꾸는 순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도 함께 부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지부조화가 꼭 사회현상에만 붙는 건 아니더라구요.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면 그것을 믿고 살았던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곁가지로 뻗어진 의견에 대해서야 얘기하며 설득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시작점인 '기본적인 상식과 전제'가 다르다면 그것을 설득해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더 유들유들 하겠어요. 부정해야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바꾼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리 긴 시간, 세상이 설득하지 못한 사람을 어찌 저라는 사람 하나가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고 나도 이렇게 살아온 것이고 생각은 바꿀 수 있어도 '살아온 시간'은 바꿀 수 없는거야. 변화는 언제나 '자기자신'에 의해서나 가능하지 우리는 타인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2. (상식이 다른) 그 사람이 타인에게 자신의 상식을 강요하는 경우. (예 : 꼰대마초)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식별하는 능력은 자아의 사회화에 무척 중요한 능력일 터이다. 무엇이든 얘기하는 것이 선이라는 발상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 '최근에 친구가 들려준 하루키 말입니다. 뭐 이런 인용의 부자연스러움은 감안합시다. 제가 살면서 겪었던 많은 무례한 처사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 자신의 '상식'을 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뭐 '맞다'고 생각한다는거죠.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대화와 관계 하에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저는 그 사람의 상식을 건드리고 싶지도, 말을 섞고 싶지도 않은데 , 그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상식을 들이밀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그것이 불쾌하다고 무례하다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게 '선'이고 그게 무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더군요.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개인주의'가 부재한 나라에서....




3. 무례한 행동을 하고 그것에 기분 나빠하면 "기분 나빠하는 네가 나빠"가 돌아오는 경우 (대표적인 사례 : 성추행, 성희롱)


예민한 심성을 지닌 이곳 분들이라면 생각보다 나에게 불쾌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심하게 여겨지는 경우를 몇 번 겪으셨을겁니다. 아니 애초에 "예민하다"라는 것은 마치 죄수에게 채우는 수갑과 같습니다. 나의 리액션은 모두 그 사람으로 인해서가 아닌 '바로 너의 예민한 성격 탓'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정말 많더군요.  예전에는 '아 그래 내가 예민한거구나' 라고 생각했었고 '내가 오바하는거야'라고 천주교 미사 처럼 "내탓이오"를 삼창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 화가 나더군요. 상처받고 불쾌한 것을 피력하면 왜 사과가 아니라 또다시 책임전가가 돌아오는 것일까. 왜 자신의 행동은 타인으로 인한 것으로 합리화하면서, 정작 상대방의 행동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상대방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 어쩌면 이런 방식은 자기합리화를 통한 자기 방어. 가장 기본적인 '나를 지키는 것'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  자신의 불쾌함에는 너무나 예민하면서 정작 타인의 불쾌함에는 너무나 둔감한 경우 (예: 내가 여자를 보는 건 괜찮아. 하지만 게이가 나를 그렇게 보는 건 참을 수 없어!)


누구나 불쾌함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불쾌함에 대해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하는 게 뭡니까? " 아 빛이 너무 눈부셔 개짜증나 으앙!!!" "배고파 으앙!!!" "나 축축해 으앙!!!" "무서워 으앙!!!!" 하지만 사회화 된다는 건 분명 나의 불쾌한만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불쾌할' 수 있다는 걸 아는거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불쾌함을 주고 싶지 않고 설령 그가 불쾌하다면 사과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니까. 그가 나로 인해 불쾌하다면 사과하고 위로하고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은 소중하니까요. 자기 물건에 작은 흡집 나면 노발대발 하면서 정작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흡집이 나면 무심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문제는 우리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가 아닌 이상, 관심도 없는 사람의 불쾌함에 미안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싫은 사람에게는 고의적으로 불쾌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공격하고 맞서고 모욕하고. 하지만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내가 소중한 만큼 그 사람도 자신이 소중할 것이고" "나만 아픈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만큼 아플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가 사회화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자기 아픈건 기똥차게 알지만 부모가 아픈건 원래 처음에는 무심하다가 철들고 알거든요.  


그런데 "너가 불쾌한 것이 나한테 안 중요해" 가 되버리는 경우. 더 나아가 "타인의 불쾌함"에 공감 못하고 무심한 경우  그것에 책임지지 않는 경우는 결국 '나만 소중해'라는 유아적인 태도와 닮아있다는 겁니다. 사이코 패스가 극단적인 예죠. 바로 여기에 1번 단상이 떠오르죠. "나에게 상식이 다른 이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제 1의 상식이 뭡니까. "나는 소중해. 나는 나를 지킬거야" 이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상식이고 약육강식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상식들은 우리가 커가면서 '배우는' 것이고 사회와 문화가 교육시키는 일이죠. 결국 타인의 '불쾌함'에 공감하고 조심하는 것은 순전히 "교육의 문제"이고 ,  "무언가의 반응할 줄 아는 감수성"의 문제라는거죠.




5. 대한민국이라는 무례한 사회에서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에서... "영화와 문학 속에 있는 가상의 인물을 보고, 공감하며 눈물흘리고 동일시하던 인간이 정작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감정에 '무심'하다면 그건 대체 뭘까." "사회문제 속에 있는 희생자 피해자 들의 분노에는 함께 분노하면서 왜 정작 자신으로 인해 분노하는 사람의 감정에는 무심할 수 있는가. " "자신이 대상화가 되는 것은 치를 떨면서 남을 대상화하는 것은 즐겨하는건 또 뭘까  " 자기 가슴에만 반응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몇 백명의 아이가 죽음을 당해도, 몇 천명의 사람이 전염병으로 고생을 해도 "무심해 보이는" 지도자가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공적인 가치와 상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가르칩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는거죠. 이 사회와 문화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그런 '공적인  가치와 상식'을 우습게 여긴 것은 이제 이 나라의 당당한 역사 입니다. 학살하고 차별하고 괴롭혀놓고, 뻔뻔하게 얼굴 들고 살고 있는 나라. 가해자는 소리지르고 피해자는 쉬쉬하는 나라. 친일파들은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소외받는 나라. 이런 거시적인 역사가  미시적인 우리 삶과 일상에 무관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패자에게 공감하고 함께 협력하고 돌보는 것을 가르치기 보다 그냥 소수의 '승자'가 되라고 가르친지 몇년 입니까. 점수로 서로를 이기고 밟고 스펙으로 경쟁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환원하던 나라에서 '집단의 협력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자고 우리는 언제 제대로 배웠냐는거죠. 모든 생존과 의무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신자유주의스러운 나라에서 말입니다. 그"아니 고작 이런 걸로 무슨 얼어죽을 역사와 문화야..오바 아니야?" 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문화라는 건 전염병과 같아서, 국가와 조직 시스템이 무너지면 그게 '개인의 질병'으로 찾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도자(혹은 운영자 관리자)가 "아 몰라"로 대처하면 사람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알아야 하고 그러면 지도자가 "너가 아는 거 유언비어, 너 고소"라고 처단하는 나라입니다. 문화와 시스템이 우리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속에 '내면화'된다는 것은 사회학의 상식. 한 개인의 문제를 한 사회의 문제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고, 한 사회의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는 일이 예술/문화의 상식. (평론가 김현 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그런 감수성의 상식이 죽어버린 나라에서 우리가 서로 그 상식을 다시 재생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p.s 그림에서, 무엇을 그렸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렸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어떻게'보다 '무엇'에 더 쉽게 반응한다. 소재와 주어는 누구나 쉽게 파악하지만 정작 '어떻게'라는 논리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이 왜 난해하게 느껴지는가. 그것이 순전히 "어떻게"에 강하게 천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페미니즘과 같은 어려운 이론 부터 여혐남혐 문제 까지, 그건 모두 '논리'의 문제다. 

      A->B일 때 중요한 건 A,B가 아니라 "->"라는 것. 무엇이 문제냐고?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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