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2010.04.23 23:18

DJUNA 조회 수:15412


[허트 로커]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엘라의 계곡]의 작가 마크 볼이 각본을 쓴 이 영화에는 분명한 방향성과 메시지가 있어요. 이들은 모두 노골적으로 표면 위에 드러나 있으니 이를 해석하기 위해 굳이 내용 분석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거예요. 전쟁은 중독성이 있고 거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전쟁을 주도하게 되면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과 곤란에 빠집니다. 참,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에 가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마크 볼이나 감독 캐스린 비글로는 [허트 로커]를 메시지 중심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설정과 캐릭터는 모두 분명한 주제를 위해 짜여져 있지만, 정작 영화가 본론으로 들어가면 주제는 사라집니다. 하긴 눈 앞에 폭발 직전의 폭탄이 놓여 있고 그걸 해체하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게 날아갈 판인데 거기 집중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선적이지 않겠습니까. 영화의 즉물성은 당연한 것입니다.


캐스린 비글로는 주인공인 윌리엄 제임스와 폭탄해체라는 직업을 변태적인 로맨스처럼 그립니다. 제임스가 자신의 직업이 주는 자극을 섹스보다 더 좋아한다는 건 그냥 눈에 보입니다. 그는 그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뭐든지 해요. 제임스는 자신의 직업이 너무 좋아서 안전한 폭탄 해체라는 목표를 잊어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상식적인 동료 샌본은 미칠 지경이지요. 이런 묘사는 익숙한데, 폭력적인 상황과 그 상황에 거의 성적으로 얽혀있는 전문가의 관계는 비글로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 때문이죠.


영화 속에 그려지는 일련의 액션들은 고전적인 히치콕의 전통을 따릅니다. 폭발을 기다리는 폭탄이 소재인 영화이니, 언급 자체가 식상할 지경이죠. 하지만 주인공들의 땀 냄새와 그들의 목숨을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금속 기계의 차가운 존재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액션장면은 결코 식상하지 않습니다. 이 긴장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폭탄 해체 장면이 아니라 이라크 저격수와의 대결 장면인 건 좀 의외지만요. 폭탄이건 저격수건 그 시퀀스는 걸작입니다.


그러는 동안 제임스의 드라마는 이야기가 원래 깔아놓은 반전 테마 안으로 조금씩 들어갑니다. 특히 베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라크 소년이 개입된 뒤로 영화는 조금 감상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보면 그 감상주의 역시 영화의 정서가 아니라 소재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베컴의 개입 이후 폭탄 변태에서 벗어나 양심과 인간적 감정을 가진 진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보통 영화에서는 이게 캐릭터의 성숙이고 대부분 이를 통해 얻는 게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그가 그 이후 벌이는 소동은 철저하게 무의미한데, 그건 그가 대상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막연한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감상주의에 기대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폭탄 변태는 폭탄을 해체할 줄은 알잖습니까. 감상적인 바보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폭탄 변태의 섹시함만 잃어버릴 뿐이죠. (10/04/22)


★★★☆


기타등등

영화가 그리는 액션 묘사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여러 지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왜곡의 상당부분은 알고 저지른 것일 겁니다. 비전문가인 저로서는 그 윤색 과정이 영화의 드라마에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 Kathryn Bigelow 출연: Jeremy Renner, Anthony Mackie, Brian Geraghty, Guy Pearce, Ralph Fiennes, David Morse, Evangeline Lilly, Christian Camargo, Suhail Aldabbach, Christopher Sayegh, Nabil K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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