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은 듯한 명절 이야기

2015.09.30 10:07

여름숲 조회 수:1987

또 한번의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아빠가 오랜 투병끝에 돌아가시고 난 후 네번째 맞이하는 추석입니다.

그간 오빠와 저는 어떤지 몰라도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이던 조카들은 이제 성큼 커서 큰조카는 제 할머니 키를 넘어선 제법 아가씨 태가 나는 숙녀가 되어 버렸고, 몇년 사이 부쩍 늙어 버리신 엄마는 집안일을 힘겨워 하시는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오빠는 지난 여름 이제 자신이 아빠 제사를 모셔가는게 어떤가 하는 의사를 넌즈시 저녁자리에서 꺼냈고

엄마는 니네 맘이 정 그렇다면 뭐 하고 못이기는 척 대답하시고, 그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얘기지만 엄마의 저지에 입 다물고 있던 저도 반색을 했지요.

물론 제사를 오빠집으로 모셔가신다해도 아마도 당분간 모든 준비는 엄마가 하게 되시겠죠.

오빠와 새언니는 맞벌이를 하시니까.. 늘 하시던 대로 이삼주 전부터 마른 장거리를 준비하기 시작하시고, 온 동네 세일하는 전단지를 비교하여 발품을 파셔서 저렴하면서도 좋은 제수 장거리를 장만하시겠죠.

3일정도가 남으면 갈비나 산적거리 고기를 재우고, 손주들이 좋아하는 식혜를 몇리터씩 마련해 놓으실 테고..

모든 전처리가 된 식재료들을 명절(또는 제사) 전날 엄마와 함께 싣고 가서 행사를 치루게 되겠지요..

 

여튼 그러그러한 사유로 제사를 모셔가기로 결정이 되니 엄마가 며칠전에 오빠와 제게 당부를 하더군요..

본디 제사를 모셔가는 시기는 추석 차례를 지내면서 조상께 고하고 하는 것이니 마침 잘되었다..

그리고 차례를 지내며 제주가 고인께 이번까지만 여기서 모시고 다음부터는 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라 고하고

제기를 모두 챙겨나가면서 제기 중 밥주발에는 햅쌀을 가득 담아 제주가 모시고 나가며 이제 우리집으로 가십시다~~며 들고 나서며

새집에 가서는 여기가 저희 집입니다.. 앞으로는 여기서 모시겠습니다고 다시 고하고 간단하게나마 상차려 절하고 마무리...라고 하더군요...

 

들으면서 오빠도 저도 빵 터졌는데...

요즘 세상에 너무 종가집 돋는 풍습아니냐.. 했지만 엄마가 정색하시며 원래 그렇게 하는거라며 간만에 법도타령 하시는 바람에..(아니 시골 농부 할배 할매한테서 나신 분이 뭔 법도타령은..하긴 공명첩으로 사도 양반은 양반이니) 

오빠랑 미리 이번엔 우리 좀 뻔뻔하게 합시다 엄마가 저리 원하시는데.. 하고

막상 행사에 들어서니...

 

오빠의 발연기는 발호세를 넘어 장수원도 능가하더군요.. 차례지내며 국어책을 읽는 바람에 제가 터져버려서 완전 큭큭큭...

3학년 조카녀석도 아빠 누구한테 얘기해요?

할아버지!

에이 뻥!!

 

이런 이유로 평소에 오전이면 완전 끝나던 명절 행사가 이것 저것 챙겨서 오빠집까지 가니 점심때..

간단히 상차려 절하고

앗싸 좋은점 하나 있군요..

오빠가 운전을 안해도 되니 점심상에 남매가 마주 앉아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그 동안은 오빠 집근처의 처가로 일찍 가라고 오빠 음복도 딱 한잔 이상은 못하게 했었는데..

운전할 일이 없으니 오빠도 작정하고 마셔서 간만에 명절같은 기분 좀 냈습니다(술퍼마셔야 명절이냐?) 

 

추석 지났다고 부쩍 선선한가요?

이제 바깥활동하기 좋은 날이 다가오네요.

모두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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