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3 17:38
교회를 꽤 가보신 분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목사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루리라 부분에서 흐뭇하게 웃음)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이 구절을 활자적으로 옳다는 것에 갖다 붙입니다.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근본주의 개신교 목사들은 요한계시록의 이 구절도 사랑합니다. 자신의 말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이거만한 구절이 없거든요.
보통 토달면 지옥가 라는 뉘앙스로 씁니다.
어떤 종교적인 글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거든요.
예를 들면 천주교와 개신교(근본주의 제외)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쪽은 틀렸고 한쪽은 맞다라고 말하기는 애매해요.
뭐가 맞는지 정확히 몰라요. 그리고 가치라는 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치는 변하는 부분이 있고 싸워나가는 겁니다.
활자적으로 성경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안에서도 지지고 볶고 싸웁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하고, 활자적으로 받아들여서 확실하다고 확신하지만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해요.
단지 그 모임의 다수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거지라고 할 뿐입니다.
그런 생각 아래서 동성애를 반대하고, 창조과학을 맹신하고, 다른 종교를 이단시 하는 겁니다.
이단시 한다는 건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최악의 배드엔딩으로 간다고 단정하는 거고
자신은 최상의 해피엔딩으로 간다고 믿는거죠. 그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멈추고 열심히 꿈을 꾸는 것 뿐이지만요.
그 안에서 자란 사람은 저항감이 커지거나 바보가 됩니다. 반질반질하게 되기도 하구요.
국정교과서랑 별 다를 게 없어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이렇게 말함 성경해석 끝!!"
그리고 그렇게 해석을 막아놓은 건
그게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일겁니다. 꽉 막아놓으면 세뇌가 훨씬 쉽거든요.
요새 교회가 예전만큼 장사가 안되는 건 정보를 얻기가 예전보다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감옥 안의 생활만을 아는 사람은 감옥이 불편해도 그러려니 하고 삽니다.
누군가는 그걸 낙타의 순종으로 미화하기도 하겠지만요.
교회가 완벽해지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완벽하게 꼴통짓을 하지는 말라는 거죠.
2015.10.14 07:43
2015.10.14 09:21
그런걸 기적으로 퉁치기도 합니다. 기적적으로 그리 되었다. 그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걸 작은 곳에 가두고 이거만 믿으라고 협박하는 꼴이 웃깁니다.
그런 교회에선 교인들이 생각하는걸 두려워합니다. 생각하고 질문하는 걸 따진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요. 아무말없이 헌금내는 사람을 가장 좋아합니다. 진짜 신앙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곳에서 괴로울수밖에 없죠.
2015.10.15 00:06
현재 성경의 메이저라고 부를수 있는것은 아마 헬라어 번역을 토대로한 한글번역일겁니다.
번역하는작업을 생각해보자면 번역하시는 분들이 직접 어떻게 번역하시는지는 저도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어떻게 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가 글자 그대로 그저 언어만 바꾸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어를 바꾸면서 동시에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게 중요한것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해보자면 조각조각으로된 여러 성서들의 최초 원문들의 헬라어가 한글로 번역되기까지의 문법상 문맥상 일부 오류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 원문의 뜻은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 성경이 원문과는 많이 다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같은 구절의 성경을 놓고 설교를 할 때 목사들마다 많은 차이는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신의 영리를 위한 쪽으로 해석을하는 목사들이 생기면서 여기저기 쌈박질이 생기는 것이지요.
사실 재미있다고 생각이 드는게 성경이라는 건 일종의 창작물이잖아요. 그것도 예수님 사후 꽤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씌어진. 일단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이 사실이라고 치고.. 그 당시에 예수님이 했던 말들과 행적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사용했던 말은 아람어였을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걸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언어로 쓰고 그게 여러나라말로 번역되어 내려오고 그것이 영어권에서 나온걸 일본인이 번역하고 그걸 받아들인게 초창기 한국 기독교의 성경이라고 알고 있는데 활자를 일획 일점 틀림없이 믿으라는게 좀 웃기지 않나요?? 온통 한자어로 씌어진 성경과 2천여년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사이에 얼마나 긴밀한 활자적 진실성이 담보되는건지..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꼭 합리성을 기반으로 해야할 필요는 없지만 미심쩍은 기반을 가지고 자기 말이 틀림없으니 여기에 투자하면 대박이 난다던가.. 이땅을 사면 꼭 오른다던가 하는 건 대부분 사기꾼들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