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3 16:00
제가 참 좋아하는 연구자이자 저자이자 교수인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책을 다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책들은 거진 읽어 본 것 같습니다.
어떤 책들에서는 많은 도움, 배움도 얻어서 개인적으로 참 신뢰하는 저자입니다.
얼마 전, 이 분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두꺼운 연구서가 아닌 훨씬 가벼운 에세이 형식의 글 모임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출판사, 신뢰하는 저자의 콜라보라 무척 재미있게 읽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계속 마음에 걸리는 한 편의 글 속의 하나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내용과 맞지 않는, 그러니까 최근의 연구 결과와 맞지 않는 문장이었습니다.
혹시 몰라 검색도 해보고, 관련 내용을 다룬 다른 저작들도 찾아보니 그 내용은 아무리 봐도 맞지 않더군요.
저는 오타나 비문, 번역 오류, 기타 출판 편집의 실수 등에 굉장히 관대합니다. (몇 몇 예외는 있지만)
그리고 사실 사소하다면 사소한 내용이었고 어찌보면 전체적인 내용과의 어울림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알려드리고 싶고,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출전이 있지 않을까 이런 여러 생각들이 계속 들더군요.
평소에 절대 그러지 않는데, 오히려 조용히 넘어가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충동적으로 저자분이 재직하고 계신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 된 이메일 주소를 통해
‘그 문장은 이래저래해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라는 내용을 최대한 정중하게 담아 이메일을 어제 저녁에 보냈습니다.
보통의 경우, 공개 된 메일은 사용하지 않는 메일이거나 답변도 거의 오지 않을 확률도 높겠죠.
게다가 그 분은 관련 업계에서도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일개 독자이니까요.
가만히 있지 괜히 이메일 따위나 보냈나 라는 생각도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교수님으로부터 답신이 와있더군요.
요약하자면,
제가 지적한 부분은 자신의 착각이자 오류였다고, 자신의 불찰이었다고.
지적해줘서 고맙고, 만약 2쇄가 나오게 된다면 반드시 고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팬레터 답장을 받은 팬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을 읽고 또 읽게 되더군요. 그리고 뭔가 뿌듯한 감정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맛에 팬질을 하는 거구나!
아무튼 올 초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그 분은 ‘공부밖에 모르는 천생 학자다. 매일 새벽 너댓시에 일어나 책을 읽는 지독한 진지함과 성실성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라고 써있더군요.
가끔 보면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창작물을 통해 보이는 모습과 실제 본인과는 괴리가 많은 경우가 있는데
이 분의 경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도 좋은 책들을 계속 출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15.10.23 16:10
2015.10.23 16:59
요즘 일들이 좋지 않은 일들이 쌓여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제게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일이 생겠네요 ^^
2015.10.23 16:11
뭔가 큰 반전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저는 타락의 끝판왕인 듯. ㅠㅠ
2015.10.23 16:16
2015.10.23 16:19
저도 역시ㅜㅜ 그 교수님 답변 보고 괜히 제가 기분 좋아졌네요.
2015.10.23 17:02
뭔가 반전인듯 아니듯 반전이 없어 죄송합니다. ㅜ.ㅜ
2015.10.23 16:24
2015.10.23 17:04
그동안 전 이런 경우 절대 나서지 않는 타입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워낙 지적받는 것에 약하다는 것이 원인인데... 아무튼 이번엔 그야말로 충동적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5.10.23 16:26
저는 왜 제목부터 부정적인 결말을 예상했던걸까요. 팬질따위 뭐이런;; 기쁜마음 공감합니다^^
2015.10.23 16:47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어제 저녁에 메일 보내셨는데 오늘 아침에 답신을 주시다니 부지런하셔라.
저는 예전에 어떤 (흠모하던?ㅋ) 아마추어 기타리스트한테 악보를 요청해서 그분이 작곡하고 채보한 악보를 메일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악보를 들고 너무 좋아서 부들부들 떨었던 적이 있었어요.
2015.10.23 17:45
익명 팬질의 즐거움은 더 짜릿합니다. ^^
예전에 어떤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쓰던 분께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제 생각을 이메일로 써보내곤 했는데
(인터넷에 칼럼이 올라오면 두어 시간 내에 써 보냈으니 아마 그 글에 대한 첫 번째 독자 후기였겠죠.)
어느 날 밤 12시쯤인가 칼럼이 올라와서 잠도 못 자고 새벽 2시 넘어 이메일을 보냈는데
순식간에 수신확인에 "읽음"이 되면서 답장 날아오는 걸 보고 온몸에 찌르르 전율이 흐르더군요.
(좋기도 했지만 좀 비판적인 글을 써보냈는데 바로 답장 날아오니 무서워서... ^^)
제 인생에서 가장 글을 열심히, 똑똑하고 아름답게 쓰려고 애썼던 시절이었어요.
지금도 그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 [보낸 편지함]에 쌓여있는 편지들을 보면 깜짝 깜짝 놀라죠.
내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글을 썼나 하고 ^^
2015.10.24 02:31
반전? 없는 착한 결말이라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일화로군요. 무척 부럽습니다. 축하하구요. 덤으로 그 분이 누구신지도 알고 싶어집니다.
2015.10.25 02:42
2015.10.25 11:27
아.. 좋네요.. 너무 좋아요.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세상이어서 일까요.
당연한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네요.
2015.10.25 13:28
슬쩍 검색해서 누군지 찾아봤는데, 그럴만한 사람이다 싶군요. 본인이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거 같으니, 밝히진 않겠습니다.
2015.10.26 09:01
앗, 검색하니 나오는군요. 특별히 밝히고 싶지 않았다기보다 주말동안 듀게에 들어올 수 없어 답글을 달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네, 그럴만한 분이지요.
2015.10.2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