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오브 컵스 Knight of Cups (2015)

2015.11.20 14:12

DJUNA 조회 수:6202


[나이트 오브 컵스]는 우리가 미국 관객보다 먼저 볼 수 있는 테렌스 말릭의 신작입니다. 미국 개봉일은 3월로 잡혀 있다고 해요. 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고요. 번역되기 힘든 제목은 타로 카드에서 따왔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타로 카드의 상징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요약할 수 있는 선명한 스토리는 없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릭은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인데, 가족 관계나 애정 관계는 삭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이 넉넉하지만 내면이 공허한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는 풍광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고뇌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에는 깡마르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한 명씩 옆에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에서부터 나탈리 포트먼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건 좋지만 이들 대부분이 사막 왕의 후궁처럼 소비되고 있어 많이 신경이 쓰이더군요.

[트리 오브 라이프]와 [그레이트 뷰티]를 반반 섞은 것 같은 영화입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기의 고민은 전 우주의 고민이고 자기 가족 이야기는 성서적 텍스트라는 태도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릭의 사치를 그리는 방식은 보고 있으면 [그레이트 뷰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 라스 베가스의 가짜 피라미드와 에펠탑을 소렌티노의 로마처럼 장엄하게 찍어대는 걸 보고 이 영화의 진지성을 심각하게 의심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그의 고뇌 내용은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계속 들려오는 크리스찬 베일의 내레이션은 엠마뉴엘 루베츠키가 장엄하게 찍은 경치를 보조하는 배경음악처럼 보여요. 공들여 텍스트를 분석한다고 해도 특별히 재미있는 뭔가가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씬 레드 라인] 이후 말릭의 영화들은 이전에도 그랬으니 그게 특별히 새로운 뉴스는 아니지만.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전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트리 오브 라이프]를 좋아해요. 의도와는 정반대로 읽어도 남는 게 많은 영화죠. 하지만 [나이트 오브 컵스]를 보면서도 같은 노력을 할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전 그냥 영화를 보면서 릭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을 하더라도 더 재미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만 했어요. (15/11/20)

★★☆

기타등등
여의도 CGV 맨 뒷자리에서 봤는데, 좀 앞으로 당겨 앉을 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큰 화면으로 봐야 좋을 영화.


감독: Terrence Malick, 배우: Christian Bale, Natalie Portman, Teresa Palmer, Wes Bentley, Imogen Poots, Cate Blanchett, Ben Kingsley

IMDb http://www.imdb.com/title/tt210138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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