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자는 나무 (2010)

2010.12.01 23:53

DJUNA 조회 수:10632


[서서 자는 나무]를 만든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힘든 목표를 세워놓고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특별히 튀지는 않지만 무난하고 착한 신파 영화. 이게 얼마나 만들기 힘든지 정말 몰랐던 건가요? 의심나신다면 그런 영화들 중 괜찮은 게 뭐가 있나 한 번 찾아보시죠. 예상 외로 기억나는 작품들이 별로 없고, 걸리는 영화들도 은근히 노련한 수작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무난한 영화를 잘 만드는 건 쉽지 않습니다. 관객들이 이미 이런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에 대해 다 알고 있어서,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서 자는 나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이 영화는 시한부 신파입니다. 남자주인공은 뇌종양 때문에 몇 개월밖에 못 삽니다. 아내와 딸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요. 남자는 남기고 갈 가족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압니까? 그는 소방관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애꿎은 폐교에 불이 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필 폐교인 건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죠. 아시겠지만. 


영화가 소재나 주제에 대해 진지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독심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진지함이 영화에 반영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서서 자는 나무]에는 그 진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를 쓰는 이상한 캐릭터들만 있는 겁니다. 이들에게 가공된 결말을 안겨주기 위해 그만큼이나 인위적인 화재 사고를 동원하는 각본은 어떻습니까. 전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컨베이어 벨트에 누워 암석파쇄기를 향해 흘러가는 액션 영화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밧줄을 끊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탈출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건 캐릭터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영화는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한 [배달의 기수]를 만든다는 2차 목적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관객들에게 소방관이 얼마나 힘겨운 직업이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필수가 아닙니까? 하지만 영화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일종의 암석파쇄기처럼 사용합니다. 순전히 영화를 끝내기 위한 소도구지요. 홍보물로서 거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각본이 통과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배우들은 매우 힘겨워합니다. 송창의는 어떻게든 진부한 각본을 이겨내고 드라마의 비극성에 도달하려 노력하는데, 그 동안 그의 연기는 거의 레슬링처럼 변합니다. 서지혜는 (아무래도 감독은 공황장애환자를 묘사하려 했던 것 같은데) 눈만 껌뻑거리면서 아역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딸로 나온 주혜린은 최대 희생자입니다. 영화는 이 아이에게 오로지 귀여운 연기만 시킵니다.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연기인 것입니다. (10/12/01)



기타등등

영화의 무대인 삼척시가 소방방재산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알았습니다. 아니,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몰랐고 그 뒤에 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알았지요.


감독: 송인선, 출연: 송창의, 서지혜, 여현수, 주혜린, 다른 제목: Standing Sleeping Tre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tanding_Sleeping_Tre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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