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Batman (1989)

2010.02.18 23:43

DJUNA 조회 수:5394

감독: Tim Burton 출연: Michael Keaton, Jack Nicholson, Kim Basinger, Pat Hingle, Billy Dee Williams, Michael Gough, Jack Palance, Jerry Hall

1.

이 영화가 개봉될 무렵 배트맨 팬클럽의 항의가 대단했다는 사실은 지금은 거의 잊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워너 사가 배트맨의 캐릭터를 왜곡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 영화가 배트맨의 어두운 원래 요소를 되살렸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영화 속의 배트맨은 팬클럽 회원들의 심기를 심하게 거스를만한 요소들을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절대로 영웅 따위가 아닙니다. 그는 단지 콤플렉스에 가득 찬 신경증 환자입니다. 그가 행사하는 폭력은 그런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방편일뿐입니다. 게다가 그 과도하다는 폭력(당시 배트맨 팬클럽 회원들의 눈으로 보면)에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화끈한 액션도 없고 끝난 뒤에도 찜찜함만이 남습니다. 마이클 키튼이라는 배우 역시 원작의 캐릭터와는 달리 육체적으로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불안해보입니다. 그렇다면 팬클럽 회원들이 보고 싶어했던 우리의 밤의 영웅에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팀 버튼이 다시 만들어낸 이 검은 기사는 원래 이미지보다 훨씬 원판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것은 바로 버튼이 케인의 만화 캐릭터에 감추어진 풍부한 잠재성을 원작자보다 더 잘 감지해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버튼의 배트맨 이미지는 옛 이미지들을 지우고 전면으로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2.

[배트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음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톤 푸스트(명복을!)가 디자인한 고담 시티는 검고 크게 덩어리져 있으며 괴물처럼 우뚝 서서 하찮은 시민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갱들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으며 시장부터 경찰관까지 모두 무능하고 부패해있습니다. 새로 당선된 지방검사도 믿을 수 없고 게다가 가끔 나타나는 배트맨이라는 괴물도 시민들의 불안을 줄이기는 커녕 가중시킬 뿐입니다. 배트맨은 거의 결말 부분에 이를 때까지 '시민의 편'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 영화에서 버튼은 고담 시티를 40년대 필름 느와르의 무대처럼 묘사합니다. 신문기자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에서부터 마치 베로니카 레이크처럼 묘사된 갱단 두목의 정부(제리 홀이 연기한)까지 너무나 예스러워서 나중에 조커의 부하들이 플루겔하이머 미술관을 프린스의 음악으로 채울 때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따지고 보면 [배트맨]은 만화같은 줄거리와 SFX를 덧붙인 현대판 필름 느와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이 영화는 워너 사에서 만든 [배트맨] 영화 중 가장 스토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 엉성한 플롯이라고 비판을 받았고 지금도 허점이 많이 눈에 뜨이지만 이런 소재를 가지고 치밀한 스토리를 만들라고 한다면 벤 헥트나 로버트 타우니라도 두 손 들고 말겠지요.

그런 점을 대충 눈감고 봐준다면 스토리의 구조는 상당히 좋습니다. 조커와 배트맨의 갈등 구조는 매우 타당하고(그들은 서로를 창조하고 그렇게 해서 새로 태어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때문에 서로를 죽이려 합니다) 브루스 웨인과 비키 베일의 로맨스 역시 단순히 끼워넣기 식이 아니라 스토리를 풀어가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흐트러지기 쉬운 두 요소를 비키를 매개로 해서 결합하는 방법도 진부하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잘 되어 있고요.

4.

'악역이 좋을수록 영화가 좋아진다'는 옛 격언은 이 영화에서 지나치게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는 너무나도 화려하고 인상적이어서 가면 뒤에 숨은 우리의 주인공은 그의 곁에만 가면 왜소해집니다. 이것이 영화의 단점일까요? 글쎄요.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악역의 훌륭함에는 지나침이 없다고 보거든요.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불안한 성격의 다중인격자 역을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면서 그럴 듯하게 연기합니다. 결코 만화 속의 영웅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지요.

조커와 배트맨은 팀 버튼이 즐겨쓰는 대립쌍의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한 사람은 화려하고 요란스러운 노출광이며 다른 한 명은 검은 옷 속에 숨은 우울증 환자입니다. [배트맨]은 이런 대립이 가장 잘 드러난 영화입니다.

킴 베이싱어에 대해서는... 이 배우에 대해서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럭저럭 맞았어요.

5.

대니 앨프먼의 멋진 음악은 다른 팀 버튼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절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 브루스 웨인의 심리를 암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앨프먼의 음악은 서서히 비상하다가도 불안하게 다시 하강합니다. 거창하기는 하지만 비틀려 있고요. 한없이 씩씩하고 자신감에 찬 [슈퍼맨]의 주제와 비교해 보세요. (95/08/05)

★★★

기타등등

신문 기사에 실린 '박쥐 인간'의 그림은 원작자 밥 케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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