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2 Batman Returns (1992)

2010.02.13 14:15

DJUNA 조회 수:5833

감독: Tim Burton 출연: Michael Keaton, Michelle Pfeiffer, Danny DeVito, Christopher Walken, Michael Gough, Michael Murphy

1.

팀 버튼은 영화에 숫자 붙이기를 아주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지금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영화인 [비틀쥬스]의 속편도 [비틀쥬스 2]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비틀쥬스]가 될 계획이었습니다. 일종의 결벽증이겠지요.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그런 면이 보입니다. 그는 다른 영화에 종속된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를 참을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2.

[배트맨 리턴즈]는 워너 사의 [배트맨] 시리즈 중 저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저희와 이야기 한 사람들의 대부분도 같은 의견이더군요. 왜 그럴까요? 이 영화는 시리즈 중 가장 '재미없고' 느리며 액션도 부족하고 스토리도 헐렁하기 짝이 없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가장 팀 버튼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편의 잭 니콜슨과 같은 스타가 없었기 때문에 워너 사는 광고의 타겟을 팀 버튼으로 잡았고 버튼은 그 어떤 때보다 돈을 팍팍 쓰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워너 사는 그 뒤에 땅을 치면서 후회하게 됩니다만, 그 덕분에 [배트맨 리턴즈]는 정말로 그 다운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괴하고 신경질적인 분위기,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신경증 환자들, 해결책없는 암담한 결말... 이 모든 것을 갖춘 블록버스터는 무척 희귀하죠.

3.

[배트맨 리턴즈]의 성격을 한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신경질적'이란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신경증은 팀 버튼이 감독한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이 영화에서 날카롭게 전면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개인적입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고담 시티는 여전히 사회악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배트맨]에서는 그나마 형식이라도 갖추고 있었던 선과 악의 대결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감독은 썩어있는 고담 시티의 묘사는 대충 무시하고 대신 버림받고 소외된 세 주인공들의 개인사에 집중합니다. 버튼이 바깥 세상에 무관심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그는 각 캐릭터들의 비틀림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비판에 접근해가는 방법을 택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수줍은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4.

[배트맨]이 40년대의 분위기를 기조로 하고 있다면 [배트맨 리턴즈]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는 19세기 말입니다. 보 웰치 (그의 유일한 [배트맨] 영화입니다)가 창조한 유연하고 날씬한 새로운 고담 시티는 빅토리아 시대의 철제 예술품같고 펭귄의 운두높은 실크햇 역시 그 시대에 속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은 팀 버튼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찰스 디킨즈 적이기도 합니다. 영아 유기와 서커스단, 하수도와 같은 소재 역시 19세기 말의 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킵니다.

[배트맨 리턴즈]는 멜로드라마입니다. 액션은 더욱 더 줄어들었고 세 주인공들의 인간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버튼이 자기 영화에 죽어라고 끌어들이는 '미녀와 야수' 테마도 다시 등장하고요. '미녀'역시 야수인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요.

5.

[배트맨 리턴즈]는 정말로 가면무도회 같습니다. 사람들 대신 박쥐와 펭귄과 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이니 어쩌겠어요? 세 주인공들은 자신의 본명과 함께 동물 상징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명으로 대낮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동물 가면을 뒤집어 씁니다. 이들이 돌아다니는 고담 시티의 밤은 마치 정신분석의에게 시달리고 돌아온 신경증 환자의 악몽과도 같습니다. 밤에 이드를 화끈하게 풀어놓았으니 스트레스라도 해소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잖아요. 오히려 그런 이중성은 그들의 정신을 보다 파괴적으로 몰아갑니다.

이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밤의 동물들과 낮의 사람들이 충돌하는 장면입니다. 양쪽의 얼굴들이 모두 공개되어 있는 펭귄의 묘사에도 그런 면이 발견되지만(그래서 그는 배트맨에게 자기가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캣우먼이나 배트맨과 다른 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면은 얼굴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배트맨/브루스 웨인과 캣우먼/셀리나 카일의 절름거리는 로맨스는 그런 충돌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면무도회에서 둘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장면의 아이러니칼함 역시 재미있지요. 그들 둘은 그 파티에서 분장하지 않은 유일한 커플이었으니까요.

6.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는 캣우먼/셀리나 카일을 연기한 미셸 파이퍼입니다. 원래는 아네트 베닝에게 돌아갈 배역이었지만 그녀가 임신해서 파이퍼가 대타로 들어섰지요. 베닝이 연기해도 나름대로 잘했을 것도 같지만 파이퍼의 연기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다른 캣우먼은 상상도 하기가 힘이 듭니다. 충혈된 눈과 원래부터 불안해보이는 특유의 동작은 파이퍼를 더욱 더 멋진 미치광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자신을 이루는 두 성격이 뒤섞이는 캐릭터의 묘사는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상대적으로 펭귄 역의 대니 드 비토는 다소 떨어지는 편인데, 펭귄이 지나치게 과장되게 동정을 호소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키튼은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할 자체가 전편보다도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7.

[배트맨 리턴즈]는 해피 엔딩이 아닙니다. 편가르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종결짓는 모든 파국들은 비극적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가장 사악하게 묘사되는 인물인 맥스의 죽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솔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더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특히 저희들은 캣우먼이 배트맨 표시를 향해 고개를 쳐드는 마지막 장면을 아주 좋아합니다. 정말로 그녀에게는 이런 결말이 맞습니다. 멜로드라마의 해피 엔딩은 어울리지 않죠. (95/08/05)

★★★

기타등등

펭귄의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는 [피위의 대모험]의 주연 배우였던 폴 루벤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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