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11:20
1_ 의욕에 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안하다 보니,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동인을 찾게 되더군요. 대부분의 상황에서, 제 기본 입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인데 그걸 바꾸는건 애저녁에 포기했고, 기본 입장에서 출발해서 자신을 잘 구슬러 '무언가를 한다'로 옮겨놓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뭔가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는다'가 제 뿌리 깊은 기본 입장인데 '중고서점에 나온 이 책, 일단 중고로 구매하니까 가격절감이 있고 다 읽고나서 되팔아버리면 대여료 같은 느낌으로 살 수 있어! 이 정도면 손해 아니지?' 절차가 있어야지만 뭔가 살 수 있게 되는거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야 일년 내내 긴축재정만 굴리는/이불 밖은 위험하니 집안에만 있는다는 상황이니 뭔가 아니다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게 밖으로 나아가는지를 관찰하고, 그 의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저와 다를지도 모르지만. 보통 쇼핑할 때,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필요해서 구매를 하기보다는, 모호하게 설정된 정말 큰 범위를 탐색하거나 애초에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는 상태로 돈을 쓰고 싶다(!)는 느낌으로 수많은 판매품들을 살펴보며 내가 사고 싶은 것이 나타나도록 하더군요. 마치 정부의 예산 집행마냥 말이죠. 일단 구매할 것이 있고, 이후에 돈이 있는게 아니라 일단 돈이 있고 이후에 구매할 것이 따르는 것이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구매력을 산정하는서부터 차이가 나는지도 모릅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무리하게 받으면서도 구매가능한 분량을 크게 잡거나, 쓸 수 있는 돈이 엄청 많으면서도 구매력을 매우 낮춰잡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 구매수준이라는 것이 매우 사적인 영역인지라 어느 정도가 안정선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저 같은 경우 덮어놓고 안 쓰는 입장을 언제나 취하게 되는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아니면 뭐, 좀 궁핍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일수도 있구요.
아니면 저의 총체적인 입장 설계에 미스가 있는지도 모르죠. 선생각 후행동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선행동 후생각으로 전환해야할 부분들 말이에요. 저는 그 선행동 후생각의 영역이 의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그런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짧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고 행동부터 나가볼만한 거죠. '행동에 도달할만큼 생각이 차오르지 않았어, 그러니까 난 행동을 하지 않겠어'라고 하면 영원히 솔로(?)가 된다거나 그런 영역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의욕이 도대체 어디서 솟아오르는가, 를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게 되면, 언젠가 친구와 대화하던 중에 나온 이야기로, '주말이 얼마나 하잘것없이 흘러가는가'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평일도 시간이 빨리 흐르고 주말도 시간이 빨리 흐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주말을 어떻게 채우던 간에, 무엇으로 채우던 간에 만족을 할 수 없는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자각의 순간이 온다구요. 역으로 말하면, 후회하지 않게 되죠. 아니면 덜 후회하게 된다고 할까요. 이 시간에 뭘하든 완벽하게 만족하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어, 그러니 (실패의 낙차와 상관없이) 뭐든 시도는 해 봐야지, 같은 거요. 어차피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잠을 자도, 혹은 빡빡하게 스케줄을 채워서 보고 먹고 마시고 사도 아쉽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도무지 제가 생각하는 욕구나 의욕이 뭐가 있는지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낮은 준위의) 내가 뭘 하면 만족하는지를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가끔씩 수동적으로 뭔가 홀린듯이 어떤 것에 열중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상황은 있지만, 작고 단순하며 능동적인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찾기 어렵더군요. 아니면 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건, 해봐야 아는 겁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뭐, 이 정도로 나오진 않았겠습니다만) 간지러움는 허상이며 그 진실은 (간지럽히고 있는) 타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느냐이다'는 정보를 보고 '음, 누군가를 믿는다면 별로 간지럼 타는 사람이 되지 않겠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그걸 생각만 했냐 하면 실제로 체화하려고 노력도 했고, 그래서 (주관적으로 생각하건대 )보통보다는 간지럼을 안 탑니다. 모기 물린 것을 약 바르지 않고 참을 수 있다거나, 누가 겨드랑일 찔러도 그런가 한다거나 그런 사소한 일인거죠. 그런데 이런 역치를 높혀서 상황을 억제하는 내적 기조가 심화되다 보니까, 배고픔 같은 것도 대충 참아 넘겨버릴 수 있고 신체의 신호에 둔감해지더라구요. 심할 때는 며칠에 한 끼씩 먹고 했으니 말이죠. 지금도 배고픔을 적당히 넘겨버리는걸 보면 절식도 습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감정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감정에 둔감하다 민감하다, 그럴 때 스트레오 타입은 돌 같이 흔들림 없는 사람과 조변석개로 변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쪽보다는 세분화된 감정 패라메터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극단적으로 갈수록 이분화된 감정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감정에 미숙하면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 뿐인거죠. 좋아하는게 아니면 싫어하는 거, 혹은 3개 해서 아무 생각없는 거 이렇게 있을 수도 있겠군요. 감정에 능숙한 사람은 복합적인 감정도 잘 이해해서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고 입장을 취할 수 있겠지만 신체적인 신호와 정신적 감화를 잘 못 읽는 사람은... 흠... 힘들겠죠.
그리고... 작은 감정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편인 저로서는, 어떤 행동과 상황을 좋아하려면 장기간 농사를 지어야하니 욕구를 찾기 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첫 눈에 반하는' 게 있느냐 없느냐로 의견이 분분한 것과 비슷하겠죠.
2_ 글을 쓰는 것 자체, 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냐, 내겐 글쓰기 이상의 이상과 소통이 있어, 글을 씀으로 자아 실현의 연장선상이자 인맥(?)확장의 도구도 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이 아니라는 거죠. 예전에 '글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라는 댓글에 '아.. 아니야, 그건 아냐'라고 생각하며 대답도 못했지만, 이제는 '그렇군요'라고 말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막상 대답하라고 하면 못 하겠지만. 그래서 뭐 목적이나 뭐나를 떠나서, 같은 말을 반복하든 말든 이제 그런건 모르겠고- 같은 느낌으로 아무 말이나 해보려합... 음, 이건 어렵겠군요.
어떤 특정한 행동이나 결과에 도달하기 까지 갖춰진 환경이란, 매우 특수하고 운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매우 즐거운 4인 모임이 있다면, 그 중에 한 명만 빠지더라도 그 양태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또한 각각이 조금씩 변한다면 도무지 그 전과 같이 돌아갈 수 없을꺼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조합의 아우라가, 별 것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별 거였다는 그런 이야기죠. 네, 이런저런 공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 것이 오고 헌 것은 갈지언정 같은 것은 없을 거라는 두려움과 기대감인 것이죠.
듀게도 제게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석해서 캐내고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되는 게 좋은 거란 이야기죠. 될 때까지는 말입니다. (혹은 글이 써질 때까지는)
3_ 무언가를 거칠게 서술하는 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국회가 하고 있는 일을 정묘하게 이해하고 묘사하기 위해서는 품이 너무나 많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남들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만한) 기한에 맞춰 글을 쓰긴 힘들죠. 그렇다고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막 글을 쓸 수도 없는 것이고, 뭔가 적당히 양보하면서 모호하게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냥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건 너무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이 나뉘어 있고 그걸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글쓰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죠. 그런걸 적당히 인정하면서 부드럽게 글을 쓰는건 어떻게 써야 하는건지. 언제까지나 '제 생각으로는'이란 말을 모든 문장 안에 넣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인 거잖아요.
흥미로운 논문들, 재미있었던 책들, 볼만한 만화들, 생각해볼만한 기사들. 그런 것들을 만족스러울 수준으로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건 그게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되었을 때나 겨우 가능한 것이겠죠. 좀 무지해보이더라도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우회로는 만들어 놓아야 하겠죠.
그런 김에 이야기하면 요즘 국회는 (여러모로) 참 재미나더군요. 총선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의 연말 정기 국회인지라, 유권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시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미 예산안은 통과 되어버렸지만. 야당 의원총회는 거기에 앉아서 함께 참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적나라한 기사가 많은데, 여당 의원총회는 그만큼 밀도 있는 기사가 보이질 않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당 내에서도 종교세 의안 통과 결정 같은 경우에는 가타부타 말이 있었을 것 같은데 두 의원 정도가 반대했다, 정도의 기사만 있더군요. 그리고 예산안 통과 후에 뒷풀이 하는 이야기나 나오고. 보면 한참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야근하고 고생하는걸 보는 기분입니다.
4_ 그럼 남은 주말 잘 보내시길. (벌써 정오라니! 벌써 정오라니!)
2015.12.06 12:55
2015.12.06 13:20
얼마 전에 어떤 자료를 준비하다가 소속감/유대감과 자기효능감이 없는 사람이 자살한다는
정신과 의사의 글을 읽었어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거나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인간은 죽고 싶어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인간이 살고 싶어 하는 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을 때겠죠.
어떤 일을 하려는 의욕이라는 게 어떤 일을 함으로써 내 삶을 더 멋지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라면
결국 내가 할 그 일에 대해 알아봐 주고 쓸모 있다고 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적어도 그 의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려면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반드시 물리적으로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그런 존재를 느낄 수만
있으면 되는 거죠. 이를테면 듀게에서 누군가가 잔인한오후 님께 "글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 같다."
는 댓글을 달았을 때 잔인한오후 님은 그것에 대답을 해야겠다는 필요를 혹은 의욕을 느끼셨을 테고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통해 대답을 만드신 거잖아요.
만약 실제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어도 이런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나에 대한 질문 혹은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응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리고 그 질문에
좀 더 멋진 대답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공부도 한다면 그런 게 의욕의 시작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잔인한오후 님이 의욕을 내고 싶은데 혼자서 시도를 잘 못하겠는 일이 있으면 듀게에 올리는 겁니다.
"이걸 해볼까요 말까요?"하고요. 그러면 저를 포함해서 누군가가 "꼭 해보세요. 응원해요. 인증사진 올려주세요."
등등의 댓글을 올리겠죠. 그러면 하게 되는 겁니다. ^^ 해보면서 그 일 자체에서 의욕이 더 생길 수도 있고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을 듀게에 알려서 반응을 얻어가며 함께 진행시키는 식으로 의욕을 유지시킬 수도 있겠죠.
결론은 듀게에 글 많이 올리시라고요. ^^
2015.12.06 18:29
2015.12.06 21:51
2015.12.07 22:07
토요일이 지나버리고 일요일이네요.
올해 달력이 맨오른쪽에 일요일이 있어 다시 확인하는 버릇이.
그렇습니다 객관적 질서의 일상으로 사는 사람은 어쩌면 행운을 타고난거죠.
말씀데로 좋고 싫음 두가지 선택 외엔 난 달리 할게 없네요 첨 부터 끝까지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