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Renaissance (2006)

2010.01.27 11:48

DJUNA 조회 수:4484


1.

21세기 중엽의 파리. 젊은 과학자인 일로나 타수예프가 수상쩍은 상황 속에서 실종되자 밑바닥 출신의 민완 형사 바르텔라미 카라스가 수사에 나섭니다. 카라스가 음모를 파헤치는 동안 파리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다름 없는 대기업 아발론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집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일로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던 조로증, 몇 십 년 전 같은 주제로 연구를 했던 아발론의 과학자 조나스 뮐러의 연구 논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2.

[르네상스]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영화의 스타일입니다. 이 영화는 모션 캡쳐를 이용해 딴 동작을 다듬고 그 위에 표정을 입힌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점이 다르죠. 이 영화에는 색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회색도 드문드문 등장할뿐이죠.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흑과 백입니다. 콘트라스트를 극대화한 흑백 화면을 상상해보세요. 그 때문에 영화의 이미지는 흑백 만화책이나 판화처럼 보입니다.


분명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하지만 유일한 시도는 아니죠. 3D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에 회화적 스타일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게임에서도 이보다 더 좋은 시도는 얼마든지 있었어요.


[르네상스]의 세계는 신기하지만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판화가나 만화가라면 흑과 백만 가지고도 예술적으로 통제되고 디테일이 풍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면 그림을 위장한 3D 애니메니션이라면 사정은 다르죠. 매 장면보다 충분한 디테일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의 이미지가 주는 정보는 무척 빈약합니다. 심지어 캐릭터들의 얼굴도 구별하기 쉽지 않을 정도죠.


[르네상스]의 한계는 중급 3D 애니메이션의 일반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그냥 뻣뻣해요. 동작은 굳어있고 표정은 어색합니다. 아무리 정보를 줄이고 회화인 척 해도 표현력의 한계는 가릴 수 없죠. 비교적 좋은 전문 배우들이 녹음한 대사들도 이 뻣뻣한 스타일 속에서는 그냥 어색합니다. 전체적으로 [르네상스]는 한 번 해볼만 했지만 반복할 필요는 없는 시도처럼 보입니다.


3.

그렇다고 내용이 좋으냐. 그것도 아닙니다. [르네상스]에서 SF적인 요소는 주로 비주얼의 바탕이 될 때 빛을 발합니다. 그게 본격적인 드라마와 얽힐 때는 엉망이 되어 버리죠. [르네상스]는 가장 나쁜 부류의 SF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조건적인 공포와 미신으로 일관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그 미신의 대상은 유전공학입니다. '유전공학'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바로 그 순간 이 단어는 신성모독과 동의어가 됩니다. 과학자들은 모두 대기업에게 세상을 팔아넘기려 하는 악당들이고, 우리의 주인공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엄청난 비밀이 공개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선 토론이고 토의고 없습니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건 신성모독이기에 그는 무조건 옳습니다. 과학자 집단도 "넌 무식하고 난 똑똑해!"식 대사로 토론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고요. 정말 지겨워요.


그렇다고 캐릭터나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느냐... 그것도 아니라니까요. 카라스는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따분한 터프 가이이고 그는 공장생산된 필름 느와르의 공식 속에서 생기없이 움직입니다. 카라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래요. "이 사람은 악당이야!"를 외치기 위해 후반부에 나오는 몇몇 설정들은 너무 인위적이라 그냥 기가 막히고요. '유전 공학'이라는 단어와 '비판'이라는 형식이 결합된 건 무조건 쿨하다고 착각하는 부류들이 아니라면 [르네상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06/10/26)


★★


기타등등

화면비율이 2.35:1인 영화입니다. 메가박스 12관에서 상영할 때는 자막 왼쪽이 나오는 부분을 검게 가리고 상영하더군요. 하긴 흑과 백만 존재하는 화면이니 자막이 안 보일 때도 가끔 있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여전히 노골적인 화면 비율 왜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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