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라는 명칭

2010.03.13 22:02

DJUNA 조회 수:9245

종종 엉겁결에 내뱉은 단어 때문에 난처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정적인 추리소설 애호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대방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장르를 두고 '탐정소설'이라고 불렀다고 칩니다. 순식간에 바늘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와 여러분의 몸을 쿡쿡 찔러댈 것입니다.

골수 SF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공상과학'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즉시 벼락이 떨어질테니까요.

왜 그들은 이런 단어들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탐정소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새 추리 소설 중 명탐정들이 나와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몇 안되니까요. 그렇다면 '공상과학'은 왜요?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공상이라는 말이 장르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SF 장르 팬들은 오래전부터 이 장르가 뜬 구름 잡는 허황된 이야기라고 낮게 평가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공상'이라는 말을 지워버리고 싶어합니다. 추리소설 팬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추리소설이 탐정소설보다 더 폭이 넓고 품위있게 들리지요.

대안은 무엇일까요? 공상을 떼면 '과학소설'이 남습니다. 괜찮은 역어지요. Science Fiction의 직역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냥 SF라는 단어를 쓰고 싶습니다. 만화나 영화와 구별하기 위해 SF 소설이라고 쓸 수도 있죠. SF novel이나 SF story라는 표현은 오래전부터 쓰이고 있으니 '역전앞'과 같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쓰는 한국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중복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SF라는 표현이 '과학소설'이라는 표현보다 낫다는 것일까요?

뜻이 불분명하기 때문이죠. SF는 물론 Science Fiction을 줄인 말입니다. 하지만 SF라고 발음해보세요. 과학도 사라지고 픽션도 사라집니다. 그건 그냥 의미없는 음의 조합일 뿐이지요.

하지만 '과학소설'에는 그 불분명한 느낌이 없습니다. 과학소설은 뭔가 과학과 관련된 소설들입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과학'에서 탈출할 수 없어요.

장르가 막 태어나려고 했던 휴고 건즈백의 시대에 '과학소설'은 완벽하게 들어맞는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SF는 정말로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을 혼합한 로망스였으니까요.

하지만 장르는 결코 탄생 당시 정의된 굴레 안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발전하고 영역을 넓혀갑니다. SF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과학'이나 '예언'과는 아무 상관 없는 수많은 SF들이 탄생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죠. 영어로 쓰여진 가장 중요한 SF 단편으로 알려진 작품이지만 과학의 '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르 안의 사람들은 그 작품에 휴고 상을 주고 장르의 대표작으로 인정하고 있죠.

어째야 할까요? 다시 정의를 할까요? 그 역시 시간 낭비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굳어진 단어를 바꾸는 것은 혼란만 초래할 뿐이죠. 어떻게 어떻게 바꾸었다고 해도 그 정의 역시 고정적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앞의 두 개가 보장된다고 해도 새 단어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대체 용어는 '사변소설 speculative fiction'이라는 것입니다만 그 역시 대체용으로 사용될만큼 유명해지지는 않았습니다.

SF는 그래서 여러 모로 편리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므로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speculative fiction'도 될 수 있습니다. 이 혀꼬부라지는 단어의 머릿말이 SF인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런데 지금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짐작하신 분들도 계시겠는데, 전 지금 [문학과 사회]에 실린 제 소설에 대한 평을 읽고 있습니다. 평자는 장르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이 작품, 저 작품은 SF가 아니어도 될 수 있었던 작품이고, 이 작품 저 작품은 SF가 아니다'라면서 장르의 경계 양쪽에 제 단편들을 재배열 하고 있었답니다.

읽으면서 조금 슬프더군요. 예를 들어 그 글은 [집행자]가 아마존 오지를 무대로 해도 충분히 가능한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기본 주제를 끌어다 쓴 비슷한 줄거리의 소설이 하나 나올 수는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적어도 가상의 행성을 세우고 그 환경에 맞는 생태계와 그에 맞는 윤리 규칙을 연역해내는 재미를 제가 결코 누리지 못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장르 소설의 작가나 독자들 모두한테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존을 무대로 했다고 해도 [집행자]는 과학 소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존에는 제 단편을 끌어가는 데 맞는 문화를 가진 종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이 없지요.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연역을 거쳐서 그런 종족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형적인 SF 집필 방식입니다. 물론 자연과학적인 면은 없지만 SF의 경계는 오래전부터 거기서 벗어났습니다.

장르 독자들은 과학소설이라고 자기 장르를 불러도 됩니다. 이미 독자들은 오랜 독서와 습관을 통해 그 범위를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외용으로는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국외자인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은 장르의 이름을 들어 일단 정의부터 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 덕택에 과학소설의 경계는 줄어들고 그 좁아진 경계 안에서 비평과 독서의 힘도 축소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장르 명칭에 매달린 결과지요.

예가 나갑니다. 얼마 전에 나온 보르헤스 전집 제5권인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보면 다음과 같은 역자의 해설이 나갑니다.

"보르헤스는 영미권의 대표적인 공상과학소설들을 번역해 스페인어권에 소개시킨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장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중에서 SF적 상상력이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작품은 [지친 자의 유토피아] 단 한 편뿐이다."

정말 그럴까요? SF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바벨의 도서관], [브로디의 보고서]와 같은 작품들은 거의 순수한 SF 소설들입니다. 'speculative fiction'으로 넓게 잡을 필요도 없죠. 맘 편하게 넓게 잡는다면 [알레프]나 [모래의 책]과 같은 작품들도 장르 안에 술술 들어옵니다. 실제로 60년대 뉴 웨이브 SF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동시에 좌절시켰던 보르헤스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지친 자의 유토피아]는 미래를 다룬 유일한 보르헤스 소설이니까 그의 유일한 SF다'라는 순진소박한 믿음으로 장르에 접근한다면 시작도 할 수 없죠. SF를 이해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보르헤스에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장르란 참 골치 아픈 물건입니다.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이 존재하고 명칭이 존재하며 독자가 존재하는데, 그런 걸 무시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죠. 하지만 그 대상은 정의도 하기 힘들고 경계도 불분명한 유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장르를 의미하는 최선의 명칭은 대상만큼이나 의미가 불분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명칭의 의미가 약해질수록 사용은 정확해집니다. (0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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