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꿈이야기)

2016.06.26 04:31

여은성 조회 수:692


 1.친구와 어딘가를 갔는데 잠깐 소파에 기대서 20분 정도 자다가 꿈을 꿨어요. 


 

 2.사실 누구든 긴 꿈을 꿀 때 그 꿈을 꾸는 데 현실에서 걸린 시간이 어느정도인지 잘 모를 거예요. 일어나서 생각해 보면 그 긴 꿈을 새벽 2시에서 7시까지 꾼 건지 아니면 뇌가 엄청나게 가속해서 현실에서는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긴 꿈을 꾸게 해주는 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죠.  



 3.꿈의 시작은 대충 어떤 바닷가에 딸과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거였어요. 보통이라면 이 아이의 엄마는 누구인지 어쩌다가 여기 와 있는지를 캐내보려 했겠지만...거긴 꿈이잖아요.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고 딸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밤마다 딸을 앉혀 놓고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곤 했어요. 이 바닷가와 오두막이 있는 세상 밖에는 나쁜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과 마주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요. 물론 네겐 나쁜 놈들보다 강해질 만한 잠재력이 있지만 나쁜 놈들보다 강해지는 건 통쾌한 일도 행복한 일도 아닌 일이니까, 그냥 이 바닷가에서 평생을 보내는 게 우리의 행복이라고 말해주면 딸은 눈을 동그마니 뜨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곤 했어요. 그럴 땐 아이의 긴 속눈썹이나 오똑한 콧날, 맑고 깊은 눈을 바라보며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가 맞을까...하고 궁금해하곤 했어요.


 여기서 시간이 8년 정도 뒤로 점프했는데 며칠 안 본 일일드라마의 내용이 다 이해되는 것처럼 상황이 이해됐어요.



 4.휴.



 5.다 큰 딸이 바닷가의 오두막을 떠나고 있었고 나는 그걸 딱히 말리지 않고-물론 말리고 싶었지만-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최대한 삐딱한 자세로 그러다가 떠나는 딸의 뒤에 대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너를 만신창이로 만들 거라고 악을 썼어요. 딸이 뭘 하고 싶어한다고 딱히 얘기하진 않았지만 내 꿈 안이라서인지 나는 딸이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딸의 앞을 막아서며 예술가는 이곳에서도 될 수 있는데 굳이 도시에 가는 건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명해지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비아냥거렸어요. 넌 사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거니까 여길 떠나고 싶으면 그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떠나라고 다그쳤죠. 그러자 딸이 당신도 같이 도시로 가자고 했는데 나는 오기가 나서 그러기 싫다고 했어요. 그러자 딸은, 나는 당신의 보석이 아니라 세상의 보석이라는 말을 하고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가버렸어요.



 6.여기서 또 시간이 15년정도 점프했는데 1인칭인지 3인칭인지 모를 시점으로 내가 15년동안 딸을 기다렸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었어요. 15년동안 흔들의자에 앉아서 딸이 오면 매우 퉁명스럽게 이제 왔냐고 중얼거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왜냐면,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고 싶어서요. 내가 조바심내며 딸을 기다렸다는 걸 들키고 싶지가 않았어요. 


 15년동안 그렇게 살고 나니 너무 지쳐있어서 이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행에 옮기려다가 갑자기 겁이 났어요.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예술가가 되는 데 실패한 딸이 어쩌면 나를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으로 여기고 이곳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쩌면 바로 지금, 이순간에도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어요.


 또 하염없이 딸을 기다리다가 어쩌면 딸은 오래 전에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이에겐 누구보다도 강해질 잠재력이 있지만 나쁜놈들보다 강해지기 전에 나쁜놈들을 만나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울었어요. 딸이 도시로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정말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그때 딸이 한 번만 더 권했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려고 했었어요. 왜 그때 쓸데없는 오기를 부렸을까 하고 너무 후회스러워서 울었어요. 한때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정말로 내 딸이 맞을까 하고 의심하곤 했었는데 왜 그런 의심을 했는지도 후회됐어요.

 


 7.그렇게 의자에 앉아서 모래사장의 지평선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딸이 돌아온다면 처음에는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거라는 거요. 내 딸의 성격으로 보아 뛰어오거나 하진 않을거고 느긋하게 걸어올텐데 딸이 이쪽으로 걸어온다면 아주 작던 점이 점점 딸의 형체를 갖추며 커져가다가 내 앞까지 왔을 때 오롯한 딸의 성상을 띌 거라는 거요. 


 그래서 혹시 저 머나먼 지평선 끝에서 작은 점이 나타나지 않나 눈을 가늘게 뜨고 머나먼 지평선을 계속 바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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