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네이버 일요 웹툰에는서로 전혀 다른 웹툰들이 경합중인데,

특히 '스퍼맨', '소녀더와일즈', '중립디자인구역' 세가지는 극과 극이예요.

이걸 뜯어 보면 참 재밌습니다.


19금 웹툰이면서도 놀라운 속도로 1위에 진입한 '스퍼맨'은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감출 생각이 없이 질주하고 있고,

'소녀더와일즈(이하 소녀)'는 방향성을 잃고 갈팡질팡 하고 있죠.

그리고 '소녀'와 정 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중립디자인구역(이하 중립)'의 행보와 비교하면 '소녀'의 편협함은 더욱 잘 드러납니다.


우선 '스퍼맨'은 예외로 두고, '소녀'와 '중립'을 비교해볼까 합니다.

스퍼맨까지 다루기에는 너무 말이 길어지거니와,

전혀 다른 논지를 끌어와야 하거든요.


여하간 '소녀'와 '중립', 이 둘은 정말 극단적으로 반대 길을 걷고 있어요.


그래서 이 둘을 한 번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포가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1. 우선 '소녀'를 살펴봅시다.

그림작가인 제나는 hun과의 협업 이유에 대해

'싸우는 히로인'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과연 지금 이 작품이 가는 길을 본다면

잘못된 선택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작품의 소녀들이 하는 '싸움'에는 스스로의 자립이 없어요.

철저하게 종속적이죠. "기획된 이벤트"를 따라갈 뿐이예요.

이들이 싸움을 통해 보여주는 건 철저하게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강함'이나 어떤 개인적 목표보다 싸우는 여고생이 보여주는 비쥬얼이 중요해진 거죠.


초반에는 그래도 캐릭터들간의 라이벌 의식등이 강조되며 이런 면이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이 부분은 안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이 극의 초점이 남주인공 '재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발생해요.

이 답답하고 숫기없는, '하지만 강한' 판타지적인 인물이 극을 끌어가면서

전형적인 어장관리를 시작합니다....


어장관리에 걸려든 히로인'들'은 하나같이 마성의 남주에게서 헤어나오질 못하죠.

전형적인 하렘물 러브코미디의 논리죠. 아니, 뭐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러브코미디를 지향하는 설정이긴 합니다만,

극이 진행될 수록 초반의 설정을 활용하지는 못하고 괴상한 사건들만 발생하죠.


하렘물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물론 말하지 않을뿐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하지만 '소녀'는 그 많은 하렘물 중에서도 특별히 더 나쁜 지점이 있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물들이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이 작품은 '히로인들'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남주인공 재구에게 반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남주이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중반이후로 '진짜'여주인공으로 상정된 퀸의 지휘가 흔들립니다.

hun 작가는 이걸 굉장히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하는데,

각자를 커플로 만들어줄 수 있는 '서브남주'를 삽입하는 거였죠.

이렇게 되다보니 가장 큰 피해는 '히로인들'에게 돌아갑니다.

강해지는 것보다 '연애, 사랑받는것'이 전면으로 나와버리죠....


이 세계관에 나오는 '소녀'는

'재구를 좋아하거나'

'재구 외의 남자를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닌 경우라면 '조연급'도 되지 않거나

'외모'에 차별점을 주는 경우죠.


이러한 안좋은 전개는 최근 '최달달'에피소드에 들어 극대화됩니다.

'강함'을 내세우던 서브히로인은

주인공의 애정으로부터 멀어지자 '강함'은 등지고 '마스코트'가 되어버리며,

한술 더떠 납치 당하기에 이릅니다.

남주는 애정도 없으면서 '선배'를 구하기 위해 불덩이로 뛰어들죠. =ㅅ=


저는 이 에피소드가 이 작품의 안좋은 점을 총체적으로 보여 준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싸우는, 강한' 여주인공은 어느순간

남주의 구출만을 기다리는 연약한 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2. 그에 반해 '중립'의 경우는 굉장히 영리한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남성의 것'으로 치부되던 '격투기'에 단순하게 기호화된 소녀를 가져다 붙인 '소녀'와는 다르게

'중립'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소재인 '디자인'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힘이 강한 분야입니다.

그 분야에 도전하는 여주인공 '호양'은

얼핏 남성처럼 보이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나죠.

이때문에 남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도 꿋꿋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합니다.


게다가 이 공간에 일하는 선배들은 죄다 남정네인데다가

하나는 '7번째 언니' 취급을 받고..

하나는 자기 이름이 여성스러워서 싫어합니다...

제일 마초처럼 보이는 '치프'는 놀랍게도 연하죠.


싫어하며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순정만화의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공식을 묘하게 비틀고 있죠.

이 부분이 가장 영리한 부분인데, '호양'이는 심지어 사랑도 자기 스타일대로입니다.

'사랑'을 논하면서도 이정도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아예 연애와 거리 둔 중성적 캐릭터와는 또 다른 매력이죠)

동시에 진취적인 캐릭터로 남을 수 있는 건 정말 보기 드물다고 생각해요.

 

'소녀'의 최달달이 -재구의 관심에서 멀어지자-갑자기 요리, 방송, '구출되는 여주인공' 등의  '고전적 여성상'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과 정 반대로

'호양'은 자기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자기 방식대로 행동해요.

'소녀'가 가장 비전형적인 소재를 가져와 '전형적인' 서사만 고집했다면

'중립'은 '전형적인' 서사를 진행하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서사를 구축해나가고 있어요.


심지어 '소녀'와 유사한 '구출이벤트'를 살펴보면 둘의 차이점은 더욱 극명해집니다.

제일 좋은 건 '구출'따위의 이벤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치프'의 행동원리가 되는 '책임감'은 단순한 연애심리와는 다르죠.

게다가 '구출'된 이후는 어떤가요. 가장 '마초'다웠던 '치프'는 호양보다 작고 어려집니다.


아마 다음번 위기가 닥칠 땐 분명 호양이 '치프'를 구하는 구도로 흐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흐른다면 '구출'이 없었을 때보다 오히려 작품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되겠죠.


3. 저는 단순히 '중립'이 '소녀'보다 더 여성주의적 작품, 혹은 젠더퀴어적 작품이기에 더 뛰어나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작가가 캐릭터에 대해 다루는 '태도'를 말하고 싶은 거예요.

'소녀'는 철저하게 'hun'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나무위키'에는 '소녀'의 비판 항목에 "남자 캐릭터가 편협하다"고 기술해 놓았지만

전혀 아닙니다. 이 세계 자체가 편협한 시각으로 이뤄져 있어요.

'다른 남자'는 '재구'의 '조력자'이거나 '안티테제'여야만 하는 거죠.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캐릭터가 '불분명한 판타지'에 종속돼 있어요.

아예 노골적인 '스퍼맨'보다도 어찌보면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꽤 떠들썩 했던 '뷰티풀 군바리(이하 군바리)' 사례를 보죠.

저는 해당작품을 좋아하지 않아서 깊게 보진 않았지만

'작품이 그리는 여성상'에 대해서는 재밌는 논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동시에 '연재중단' 요청은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군바리'보다도 '소녀'가 더 위험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군바리'의 문제는 '소녀'와 비슷하면서 일면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시각'묘사 죠.

'군바리'가 묘사하는 카메라 앵글과 구도는 인물의 여성성을 강조하는데 꽤 많은 주안을 둡니다.

서사 진행과 상관 없이 작가의 무의식 반영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빵 논란"은 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그림이 서사에 어울리는 표현방식은 아니었음이 분명하죠.

'연중 요청'이 과하단 의미는 이 작품의 잘못이 없다기보다는

이 작품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위험한 '시각적 대상화'가 이미 방송, 영화 등 타 매체에서 지적 없이 표현된다는 점에서 하는 말이죠.


'소녀'는

'강한 여성상'으로 '설정된'인물을 잔뜩 가져와서는

정작 서사는 '재구'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킵니다.

한 번도 이 작품에서 여성이 스스로 뭔가 이뤄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이미 완성된' 여주인공들이 '미완성된' 남주에게 매달리는 판타지....외에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강하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강하지만 남성에게 종속적"인 여성들이예요.

이러한 구도 자체도 문제거니와

이러한 구도 때문에 캐릭터는 철저히 '작가'의 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인물에게 스스로의 목표가 없으니 자꾸 외적인 사건이 발생해야 하고,

휘황찬란한 악역이나 캐릭터까지 무너트리는 범죄가 발생하고.....



4. 여하튼 짧게 정리하자면

'소녀'는 'hun'의 단점이 극대화된 서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단점의 근간이 되는 '판타지', '서술방식' 또한 편협하고요.

'러브코미디'와 '하렘물', '격투기'라는 '장르'에만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혀 없죠.

연재가 장기화되면서 이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구요.

개인적으론 '제나'의 그림이 너무 아까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8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83
126070 에피소드 #86 new Lunagazer 2024.04.25 4
126069 프레임드 #776 new Lunagazer 2024.04.25 5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new soboo 2024.04.25 68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new daviddain 2024.04.25 8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new catgotmy 2024.04.25 39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1] new 상수 2024.04.25 132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5] new Sonny 2024.04.25 276
126063 3일째 먹고 있는 늦은 아침 new daviddain 2024.04.25 65
126062 치어리더 이주은 new catgotmy 2024.04.25 120
126061 범죄도시4...망쳐버린 김치찌개(스포일러) 여은성 2024.04.25 254
126060 다코타 패닝 더 위처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악마와의 토크쇼 예고편 [3] update 상수 2024.04.25 138
126059 요즘 듣는 걸그룹 노래 둘 상수 2024.04.24 123
126058 범도4 불호 후기 유스포 라인하르트012 2024.04.24 178
126057 오펜하이머 (2023) catgotmy 2024.04.24 77
126056 프레임드 #775 [2] Lunagazer 2024.04.24 28
126055 커피를 열흘 정도 먹어본 결과 [1] update catgotmy 2024.04.24 161
126054 [넷플릭스바낭] 몸이 배배 꼬이는 3시간 30분. '베이비 레인디어'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4.24 299
126053 프렝키 더 용 오퍼를 받을 바르셀로나 daviddain 2024.04.24 40
126052 넷플릭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감상 [6] 영화처럼 2024.04.24 205
126051 "韓, 성인 문화에 보수적"…외신도 주목한 성인페스티벌 사태 [6] update ND 2024.04.24 33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