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 리메이크 하기

2010.03.06 11:10

DJUNA 조회 수:6493

([령]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에 전 어느 정도 기본이 된 영화인 [장화, 홍련] 대신 아이디어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최종 결과가 형편없는 [령]과 같은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이라고 한 적 있었죠. 오늘 한 번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볼까 합니다. 물론 이건 가벼운 게임이니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우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령]의 기본 설정을 다시 한 번 읊어보기로 하죠. 이 영화의 주인공 지원은 기억상실증 환자입니다. 도입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사고를 당한 뒤 지금까지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죠. 그래도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면서 유학도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서 지원의 친구들이 정체불명의 물귀신에게 살해당하기 시작합니다. 역시 같은 물귀신을 본 지원은 자기와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 알아내기 위해 학교 선배인 준호와 함께 수사에 나서고 이 모든 사건의 뒤에 수인이라는 옛 단짝 친구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알고 봤더니 수인과 지원은 살해당한 친구들 때문에 물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수인은 죽고 지원만 살아남았던 거예요. 지원은 준호와 함께 사고 현장으로 가서 조금도 부패되지 않은 수인의 시체를 발견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게 끝일까요? 그럴 리가 없죠. 사실 지금까지 자기를 지원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수인이었어요. 지금까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물귀신은 지원이었고요. 사고 때 영혼이 바뀐 거죠. 한동안 물귀신 유니폼을 입고 떠돌던 지원의 유령은 지원의 엄마 몸 속에 들어가 수인을 공격합니다. 물론 수인은 이번에도 간신히 살아남고요.

자, 이 이야기에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검토해보죠.

일단 저 같으면 지원이 엄마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은 버릴 겁니다. 따로 떼어놓으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설정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야기가 너무 산만해져버려요.

유령과 공포 효과 대부분도 지워버립니다. 이야기가 흥미로우면 잘 먹히지도 않을 공포 효과를 남발할 필요는 없어요. 게다가 [령]의 공포 효과는 모두 [링]이나 [검은 물 밑에서]의 표절이니 날려도 아쉬울 건 없죠.

저 같으면 연쇄살인도 축소시킬 겁니다. 연쇄살인을 진부하지 않게 그리는 건 예상외로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영화들이 이 소재를 러닝타임을 채우고 공포 효과를 넣기 위한 만만한 도구 쯤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래요.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장르 클리셰임이 명백한 도구를 다룰 때는 결코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고등학교 장면이나 수인이 왕따를 당하는 설정도 없앨 겁니다. 이유는 위와 거의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훨씬 더 잘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더 잘 해왔습니다. 뭐하러 어설픈 흉내가 될 걸 알면서 그대로 따라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무엇을 더해야 할까요?

제가 가장 먼저 더하고 싶은 건 기억상실증에 걸린 직후의 묘사입니다. [령]은 지원이 사고 이후의 삶에 적응한 이후부터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얼핏 보면 쿨한 터치같지만 이건 완전한 낭비입니다. 뭐하러 기억상실증 이야기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을 버려야 하나요? 백지 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자신이 '지원'이라는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안정된 환경과 친절한 주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분명 매혹적인 영화 소재가 될 것입니다.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신데렐라의 함정]이 그 대표적인 예죠. 전 일단 이 소설을 벤치마킹하길 제안하는 바입니다. (물론 영화 버전도 참고하면 좋겠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군요. 영어권의 리메이크 계획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아직 모르겠고.)

영화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원이라고 생각한 인물이 사실은 수인이라는 사실을 후반부에 보여주지만, 전 그런 바보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그 반전은 어린애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안이합니다. 둘째, 반전은 수인에게 훌륭한 액션과 드라마의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왜 이렇게 그럴싸한 기회가 생겼는데 허겁지겁 영화를 끝내야 합니까? 반전은 중반 정도에 두는 편이 좋습니다.

고쳐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지원, 수인, 준호의 삼각 관계입니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들의 동기는 너무나도 정리가 안 되어있거든요. 폼잡으며 예술영화 행세를 할 게 아니면 교통 정리를 해주는 게 좋겠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들의 삼각관계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이야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이들 중 하나여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서브텍스트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먼저 텍스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첫째는 이성애 삼각관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짝 친구였던 지원과 수인은 모두 준호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개성이 강한 부자집 딸인 지원은 적극적이었지만 준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습니다. 소극적이고 가난한 집안 출신인 수인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정도였지만 오히려 준호는 수인에게 더 호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눈치챈 지원은 수인을 질투하기 시작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수인은 지원의 환경을 더 부러워했을지도 모릅니다. 준호는 사고 이후의 지원을 더 사랑하게 되는데, 그건 그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지원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수인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그 때문에 지원의 유령은 수인을 공격적으로 질투하며 괴롭히게 되고요. 아마 잘만 한다면 수인을 밀어내고 비교적 좋은 상태로 보존된 원래의 육체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구체적인 목표도 서 있죠.

두번째는 동성애, 또는 양성애 관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수인과 지원은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넉넉한 집안 출신이고 사회적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지원은 수인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원은 준호를 공식적인 애인으로 받아들이고 수인에겐 가혹하게 대합니다. 물론 지원이 수인에게 새로 느끼게 된 증오의 감정은 수인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탈출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죠. 이 경우 사고 이후의 지원은 준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게 나중에 복선이 될 수 있습니다.

양쪽의 설정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첫번째의 설정은 지원과 수인의 감정과 동기가 이해하기 쉽고 명명백백합니다. 두번째 설정은 몇몇 동기 설명이 불분명하지만 지원과 수인의 드라마가 보다 복잡미묘한 파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전 후자 쪽이 조금 더 당기는데, 단순히 증오만을 품고 있는 유령은 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체화시키기는 더 어려울 겁니다.

자, 이제 친구들을 다룰 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한국판 '헤더즈'입니다. 지원과 이들의 관계는 철저한 권력의 상하 관계지요. 하지만 이들은 사고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요?

수인이 짜증나는 존재였다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정입학의 증인이니 조금 위험하기도 했을 거고요. 그 정도면 어정쩡한 사고를 방치하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원입니다. 지원이 '짱'이어서 죽이려고 했다, 또는 죽는 걸 방치했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일진회 멤버도 아니고 같은 직장에 다니지도 않아요. 지원이 죽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계급상승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럴 경우 '짱'은 아무리 짜증나도 살아있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따라다닐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게다가 왜 이들은 사고 이후 지원을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요? 다시 기억이라도 찾는다면 큰일 날텐데요.

첫번째 대안은 친구들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학살의 기회가 없어지고 증인들이 사라지는 게 문제지만 워낙 역할이 불분명하니 준호의 비중을 늘리면 커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가 모자라면 준호를 죽이는 방법도 있겠죠. 이건 첫번째 삼각관계를 다루었을 때 효과적일 겁니다.

두번째 대안은 친구들에게 보다 그럴싸한 동기와 상황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친구들이 수인에 대해 짜증 이상을 느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번째 삼각 관계에 어울리는 건데, 이건 어떻습니까? 이들은 준호와 마찬가지로 지원이 자신의 이성애적 사회관계를 위해 일부러 선정한 친구들입니다. 몇 명은 정말 준호와 친척관계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수인에 대한 이들의 증오는 공공연한 호모포비아로 설명가능합니다. 훨씬 공격적인 린치가 가능하죠. 이 경우 수인이 사고를 당했을 때 갑자기 지원이 태도를 바꾸고 자신의 본심을 드러냈다고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따라다녔던 '짱'에 대해 심한 혐오감과 당혹감을 느꼈을테고 그 결과는 지원에게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둘은 충동적인 증오범죄의 희생자들이 되는 거죠.

두번째 대안의 장점은 지원의 유령에게 비교적 입체적인 동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친구들이 살아남은 '지원'을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기억을 되찾을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겠지요. 소극적인 몇몇은 겁에 질려 구석에서 웅크리고만 있겠지만 적극적인 쪽은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억을 되찾기 전에 '지원'을 죽이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원의 유령에겐 복수 이외에 동기가 하나 더 생깁니다. 수인을 보호하는 것이죠. 이 경우 후반부에 기능적 반전을 하나 더 둘 수 있습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령이 알고 봤더니 수호천사였다는 식으로요. 특별히 무게를 둘만큼 놀라운 반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극적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대안을 따른다면 지원의 유령은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치밀한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닐 겁니다. 너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유령보다는 이쪽이 더 낫겠죠. 아마 이 유령은 지원의 썩어가는 정신이 남은 잔해일 것입니다. 살아있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사랑, 증오, 복수심이 제대로 된 이성의 통제를 받지 못한 채 날뛰는 것이죠. 이 경우, 영화의 결말은 죽은 지원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화해와 용서의 제의가 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 대안을 따른다면 연쇄살인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안은 있습니다. 우선 모두를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책임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로 골라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는 남겨두는 게 좋겠죠(왜 저라고 살생부를 쓰지 말아야 합니까?). 모든 살인들을 비슷한 수준으로 묘사해서 병렬식으로 나열할 필요도 없어요. 하나는 기사나 소문으로 암시만 하고 나머지 하나에 집중할 수도 있거든요. 이 경우는 살인이 지원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라는 드라마 속에 편입될테니 그렇게까지 구성이 단선적은 아닐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추리물의 치밀한 구조에 갇혀 유령 이야기의 시적인 느낌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만.

슬슬 정리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삼각관계를 다루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둘로 나누어지겠죠.

첫번째 삼각관계를 선택할 때 영화는 에드가 앨런 포의 [라이지아]와 대프니 뒤 모리에의 [레베카]를 섞은 것이 될 겁니다. 기억을 잃고 깨어난 '지원'은 서서히 '자신'에 대해 배워갑니다. 소극적이고 겁에 질린 자신과는 달리 과거의 지원은 카리스마 넘치고 굉장히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어요. 하지만 갑자기 바뀐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남자 친구 준호는요. 모두가 원래의 지원을 어느 정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온갖 초현실적이고 불길한 일을 겪은 뒤, 주인공은 자기가 지원이 아니라 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드라마가 시작되겠지요. 주인공은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까봐 두려워할 겁니다. 물론 지원의 유령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힐 거고요. 처음에는 죄의식 때문에 거의 굴복했던 주인공은 결국 막판에 지원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될 겁니다.

이 경우는 정말 여자 친구들의 죽음은 없는 편이 낫겠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준호에게 맥시밀리언 드 윈터의 흉내를 내게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하지만 사고는 어떻게 된 걸까요? 그냥 사고일까요? 지원과 수인이 보트라도 타고 있다가 물에 빠진 걸까요? 질투심에 빠진 수인이 지원을 죽이려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둘이 모두 빠진 거라면 어떨까요? 이렇게 하면 주인공은 결코 결백한 희생자가 못되겠지만 서스펜스와 갈등은 더 커질 겁니다.

결말은 어떻게 하는 편이 더 좋을까요? 완벽한 해피 엔딩은 곤란하겠죠. 저같으면 후반에 준호를 죽이겠습니다. 아무도 '상품'을 타지 못하게 말이죠. 결국 수인이 육체 쟁탈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육체의 일부가 여전히 지원의 습관을 따르는 식의 모호한 결말을 택할 수도 있고요. 지원이 승리를 거두는 결말은 쓰지 않을 겁니다. 암울해서가 아니라 지원이 완전히 전면에 드러나면 맥이 풀리기 때문이죠.

두번째 이야기의 도입부는 첫번째와 같습니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고 서서히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배워갑니다. 이번엔 저번과는 달리 주인공은 외면상 거의 완벽해 보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서히 친절하게만 보이는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특히 자기와 같이 빠졌다가 죽은 친구 수인에 대해 물어볼 때는요.

그러는 동안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갑니다. 그리고 두번째나 세번째 친구가 장엄하게 죽어갈 때 주인공은 현장에 있게 되고 거기서 살인을 저지르는 자기 자신의 유령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주인공은 기억의 일부를 되찾게 되고 자신이 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은 처음엔 위에 언급한 첫번째 이야기를 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스토리 라인에서는 아주 얄팍한 인물로 그려지는 준호에겐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점점 더 수상쩍게 행동하죠. 결국 주인공은 완전히 기억을 되찾고 지금까지 친절한 친구이며 무고한 희생자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후반부는 남은 친구가 주인공을 죽이려 하고 여기에 지원의 유령이 개입하는 형태를 취할 것 같은데, 조금 조심해야 할 겁니다. 액션물의 설정이 너무 강하면 유령 이야기의 힘이 죽으니까요.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는 교훈은 언제나 쓸만합니다.

공포효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일단 자존심상 깜짝쇼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계획을 세웁시다. 사실 이건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관객들을 무섭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안이한 공포도구들을 끌어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진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겠죠.

유령에게 사다코 옷을 주는 일은 하지 맙시다. 이런 건 실소만 유발할 뿐입니다. 왜 진지한 호러를 만들면서 패러디를 끌어옵니까? 지원의 유령에겐 죽은 당시의 옷을 입히고 헤어스타일도 바꾸지 맙시다. 그건 좋은 복선이 될 수도 있어요. 머리칼로 얼굴을 가린 유령도 무섭지만 유령의 뒷모습이나 그림자에 가려진 흐릿한 형체도 그만큼이나 무섭습니다. '유령 얼굴 가리기'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물은 여전히 주인공이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검은 물 밑에서]의 표절은 피하고 봅시다. 아마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제3자가 목격하는 동안 유령의 희생자가 장엄하게 살해되는 장면일텐데, 전 아직 생각 못해봤습니다.

뭐가 더 남았을까요? 아, 수인의 엄마. [령]에서 제가 좋아했던 건 지원의 몸에 들어간 수인이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씹어대며 시장에서 일하는 수인의 엄마를 훔쳐보는 장면이었습니다. 괜히 충격적인 반전을 넣는답시고 뒤에 분위기를 망치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수인과 수인의 엄마의 관계는 어느 삼각관계를 선택한다고 해도 일정 깊이로 다룰 가치가 있습니다. 둘 다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애정과 죄의식의 기반이 되어주죠. 지원의 엄마 이야기는 없애겠다고 했는데,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지원의 엄마도 괜찮은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 죽어 지내다가 사고 이후 무력화된 딸을 독점하고 소유하려하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물론 이건 즉석으로 만든 두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다른 데로 포인트를 옮기면 전혀 다른 성격의 이야기들을 더 만들 수도 있어요. 같은 요소들을 취해도 스토리 전개가 늘 제가 선택한 것과 같은 식으로 흘러갈 이유도 없고요. 여러분은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지요? (0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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