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 

 

 

특수효과들 잔치로써 [타이탄]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장식하는 내용물들에 관해선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줄거리만 갖고서 고려를 해보면 전 거기에 잘 매달릴 수가 없었고 상영 시간 중반도 가기 전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들은 얄팍하고, 이야기도 엉성한 구석들이 많은 가운데 정해진 운명대로 그냥 따라가는 것 같은데, 그리스 신화를 갖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팔자인가 봅니다. 그런 한계에 대해 제 머리는 영 맘에 들어 했지만, 그래도 제 두 눈들은 만족하는 동안 신나했고 제 머리도 그 좋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주시하는 동안 재미있어 했습니다.

 

1981년 작 [타이탄족의 멸망]의 리메이크한 본 영화는 우리들이 듣던 그리스 신화 이야기와 차이가 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그리스 신화들에서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의 신들과 인간들의 관계는 그보다 더 바닥입니다. 저 올림푸스 산 위에서 자신들 일상에 제멋대로 영향을 끼치는 신들에게 불만이 많은 인간들은 신들에게 반기를 들고, 이러니 그들을 창조한 제우스(리암 니슨)나 다른 신들은 인간들이 엉덩이 좀 맞아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그의 형 하데스(레이프 파인즈)는 기꺼이 대량 살상 무기인 크라켄이란 괴물을 풀어 놓을 기세가 되어있으면서 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신들은 그리 착한 존재들은 아니고 인간이 아닌 그들에게 인간말종이란 표현이 가능하지 않은 게 유감스러울 지경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페르세우스(샘 워딩턴)의 아버지 제우스는 자신에게 대드는 왕인 아크리시우스(제이슨 플레밍)을 X먹이기 위해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인 아크리시우스의 아내를 속여 그녀와 관계를 가진 강간범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데스는 자신에게 대드는 인간들을 혼내주는 것도 부족해서 애꿎은 서민들도 해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성격파탄자이고 그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어릴 때 버려진 자신을 돌봐 주어 온 가족을 잃은 가운데 겨우 아르고스 해군에게 구조됩니다.

 

 아무리 페르세우스 본인이 자신이 평범하다고 강조해도 그의 팔자야 이미 오래 전부터 다 정해져 있습니다. 하데스가 아르고스 사람들에게 10일 후에 안드로메다 공주(알렉사 다바로스)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크라켄으로 아르고스를 100% 아작내겠다고 협박하니 이에 그녀를 재물로 바치자는 분위기가 도시를 잠식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데미갓으로써 주목받게 된 페르세우스는 다른 군인들과 함께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고 그 동안 당연히 메두사나 페가수스를 비롯한 CG 캐릭터들과 대면합니다. 메두사 머리를 손에 넣어서 결국에 안드로메다를 구출하고 아르고스를 구할 거란 걸 말해도 스포일러는 아니겠지요?

 

 원래 줄거리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건 좋긴 하지만,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진 않습니다. 운명이 어떻게 정해지든 상관없이 신들 앞에서 의지를 행사하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정작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신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방향을 잃어 가버리지요. 캐릭터들은 신들이나 인간들이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경우 단순하니 많이 심심한 편이고, 각본은 그들을 갖고 나름대로 이리저리 드라마를 짜내려는 듯 하지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도 않는 가운데 그런 동안 어느 새 이야기는 정해진 단계들을 그냥 밟아가기만 하니 따분함이 크라켄보다 고개를 먼저 쳐들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영화의 특수효과들은 돈값을 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고 이들은 보기 재미있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덩치 큰 전갈들과 벌이는 격한 전투 장면이 있고, 나중에 우린 이들보다 좀 더 큰 전갈들을 타고 황량한 지역을 거치는 장면도 나옵니다. 메두사를 처지하기 위해 페르세우스 일당들이 카론의 배를 타고 그녀의 소굴로 가는 과정에서 보여 지는 음침한 지하 세계의 모습은 분위기 좋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리스 신화에 들어오게 된 괴물 크라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클라이맥스도 캠피한 분위기 속에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제 자신에게 던진 질문: 덩친 큰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인 여주인공을 극장 화면에서 본 게 언제였더라?, 아니면 이게 처음인가?).

 

 이런 영화에서 배우들로부터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도, 3D 영화의 표준으로 정해진 [아바타]에 이어 또 다른 3D 영화에 출연한 샘 워딩튼은 그 많은 CG들 속에서도 주인공 자리를 잘 지켜낸 좋은 주연입니다. 그 외 다른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들은 그다지 많이 구별이 안 가는 편이라서 전 니콜라스 홀트, 제이슨 플레밍, 매드 미켈슨, 대니 휴스턴과 같은 익숙한 배우들을 영화 보는 동안 알아보지 못했지만, 도입부에서 피트 포슬스웨이트는 알아 봤습니다. 리암 니슨과 레이프 파인즈의 경우 이름 있는 조연들로써 등장할 따름입니다.

 

 [타이탄]은 보는 재미에 여러 결점들을 기분 좋게 넘어가줄 수 있는 좋은 오락 영화입니다. 진지하게 가려고 애쓰기보다는 얼마 전에 본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과 같은 바보스러운 재미를 안기거나 아니면 어차피 얄팍한 주인공들 갖고 막 과장스럽게 노는 게 더 좋았을 법했지만, 이야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부분 부분에서 흥미로운 가운데 원작을 보신 분들은 원작을 살짝 인용하는 것에 재미있어할 것입니다(원작을 보지 않은 저도 속으로 이게 뭔가 할 정도로 눈을 끌더군요).

 

 오늘 오전 3D 버전으로 영화를 감상했는데, 원래 2D로 찍은 걸 3D로 바꾼 건 불필요했습니다. 같은 경우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비해 3D 효과는 안경 착용자인 저에게 덜 불편하게 다가왔긴 했지만 그냥 2D로 봐도 무난했을 겁니다. 3D 영화 볼 때마다 제가 매번 불평하던 화면 밝기 문제야 여전하고 액션 장면들은 어색한 가운데, 별다른 이점들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돈도 아낄 겸 그냥 2D 디지털 버전으로 보시는 게 더 좋은 감상 경험이 될 것입니다. 전 시간 있으면 다음 주 출국하기 전에 국내에서 다시 제대로 2D로 감상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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