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도시)

2016.08.25 07:25

여은성 조회 수:844


 1.친구와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말했어요. 아마도...도시라고 불리는 이 사막과, 이 사막에는 친구가 원하는 형태의 오아시스가 없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이야기로 흘러갔던 것 같아요. 생존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말이죠.



 2.나는 우리 같은 인간들은 100% 도시형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당장 자살하면 된다고 말했어요. 거대하고 안전한 메가로폴리스에서 빛과 열, 쾌적함을 제공받으며 살아가는 것 이외의 삶은 이제 와서는 살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요.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가끔 어떤사람들은 '넌 야만인 류로 분류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도 하지만 아니예요. 아주 잠깐...한정된 상황에서 유사 야만인 기분을 내고 바로 문명인으로 복귀하는 거죠. 문명인으로 복귀하면 스스로 불을 때지도 않고 스스로 물을 길어오지도 않아요.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면 누군가가 죽여서 누군가가 잘 다듬고 누군가가 잘 요리해낸, 한때 생물이었던 음식을 누군가가 문앞까지 배달해 주죠. 매우 공손한 태도로요. 이 모든 것이 어느날 무너진다고 상상하면 그런 세상에 적응할 수는 없을거예요.


 심지어는 육체를 단련하는 것 조차 유사 혹사예요. 뭔가를 들거나 나르거나 일하거나 하는 과정...나 자신을 세상에게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근육이 단련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상적인 형태를 주조해내기 위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동작을 누군가에게 전수-물론 공손한 태도로-받아 쾌적한 온도와 적절한 음악이 들리는 곳에서 동작을 반복하죠. 그렇게 근육에 적절한 혹사를 가했다고 생각되면 운동을 끝내고 깨끗이 씻고 떠나는 거예요. 모든 게 매끄럽게 가공되어 있어서 가끔 돌아버릴 거 같기도 해요.



 3.싸움을 싫어해요. 말싸움도 싫어하고 주먹싸움도 싫어하죠. '그야 싸움은 나쁜 거 아닌가?'라고 하겠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예요.


 왜냐면 문명 세계에서 싸움이야말로 가장 조악한 유사품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한쪽은 죽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명 세계에선 한쪽이 죽으면서 끝나는 싸움은 도저히 없단 말이죠. 투닥거리다가 뭔가 이상한 이유를 붙이면서 싸움을 중지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녀석들이 개입하면서 싸움을 중지시키거나 뭐 그래요. 싸움을 시작할 때는 문명에서 유리된 야만인 흉내를 잘 내던 녀석들은 이상하게도 다시 문명인으로 돌아와 계산기를 굴리고 있고요. 


 어떤 감정이나 어떤 행위들은 한 순간이나마 야생의 원형에 가깝게 재현이 가능하기도 해요. 하지만 아마도 이 메가로폴리스에서 원형 비슷하게라도 모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싸움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싸움은 하지 않아요. 모사하려고 해 봐야 비슷하게조차라도 모사가 불가능한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걸 하고 있으면 그냥 스스로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하던 걸 멈추고 낄낄거리게 돼요.



 4.휴.



 5.위에서 말한, 메가로폴리스에서 원형에 가깝게 재현이 가능한 감정이 사랑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건 아니예요. 사랑이야말로 구애의 형태가 아니라 구매의 형태로 얻어내게 된, 원형에서 매우 멀어진 감정 중 하나라고 보거든요. 혹시 사랑을 말하는 건가 착각하는 분이 있을까봐 걱정되어서 써요. 



 6.언젠가 Q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쓴다고 했는데 그건 야생성 때문이예요. 물론 때로는, 문명인들도 자신감이 넘치는 순간엔 야생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Q도 메가로폴리스에서 20년 넘게 살았으니 규격화되어 있죠. 그러나 뭐 반년 좀 넘게 봤을 뿐이지만 자신감이나 교만함에 의해 끌어내어지는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거푸집의 규격을뛰어넘어 가끔씩 Q를 날뛰게 하는 것 같아요.


 그걸 보고 있으면 예전에 읽은 과학 기사가 떠올라요. 지나치게 질량이 증가해서 불안정해진 블랙홀은 스스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플라즈마를 뿜어내어 질량을 줄인다는 논문에 관한 기사였어요. 우리를 둘러싼 문명 세계는 우리를 하루하루 문명 세계에 맞는 사람으로 바꿔버리죠. 나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예요. 하지만 Q는 스스로를 너무 원형과 다르게 바꿔버리려는 세상의 시도에는 저항하곤 해요. 그걸 옆에서 볼 기회가 있으면 그 기사에서 본 블랙홀이 플라즈마를 마구 내뿜는 걸 실제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그 시리즈를 하나 더 쓸까 했는데...쓰는 김에 내가 좋아하는 숫자인 7까지 채워 볼까 하는 중이예요.



 7.대화를 마친 후 문득 생각난 듯 친구가 말했어요. '그런데 자네 요즘 방산주를 샀다고 하지 않았나.'라고요. 그렇다고 하자 친구가 말했어요.


 '그럼 전쟁이 벌어져도 자살은 하지 말아야겠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32
126026 [KBS1 독립영화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44] update underground 2024.04.19 120
126025 프레임드 #770 [2] update Lunagazer 2024.04.19 28
126024 아래 글-80년대 책 삽화 관련 김전일 2024.04.19 107
126023 요즘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 Ll 2024.04.19 100
126022 PSG 단장 소르본느 대학 강연에서 이강인 언급 daviddain 2024.04.19 100
126021 링클레이터 히트맨, M 나이트 샤말란 트랩 예고편 상수 2024.04.19 136
126020 [왓챠바낭] 괴이한 북유럽 갬성 다크 코미디, '맨 앤 치킨' 잡담입니다 [1] 로이배티 2024.04.18 192
126019 오늘 엘꼴도 심상치 않네요 [7] daviddain 2024.04.18 162
126018 프레임드 #769 [4] Lunagazer 2024.04.18 52
126017 [근조] 작가,언론인,사회활동가 홍세화 씨 [11] 영화처럼 2024.04.18 532
126016 80년대 국민학생이 봤던 책 삽화 [8] 김전일 2024.04.18 357
126015 나도 놀란이라는 조너선 놀란 파일럿 연출 아마존 시리즈 - 폴아웃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88
126014 체인소맨 작가의 룩백 극장 애니메이션 예고편 [1] 상수 2024.04.18 124
126013 [웨이브바낭] 소더버그 아저씨의 끝 없는 솜씨 자랑, '노 서든 무브'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18 260
126012 이제야 엘꼴스럽네요 [3] daviddain 2024.04.17 194
126011 프레임드 #768 [4] Lunagazer 2024.04.17 61
126010 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돌도끼 2024.04.17 139
126009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찍은 파리 바게트 광고 [1] daviddain 2024.04.17 213
126008 농알못도 몇 명 이름 들어봤을 파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daviddain 2024.04.17 136
126007 아카페라 커피 [1] catgotmy 2024.04.17 13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