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2015)

2017.02.17 00:28

DJUNA 조회 수:4690


[눈길]은 KBS에서 2015년에 방영된 2부작 삼일절 특집극을 재편집한 극장판입니다. 들어보니 처음부터 극장판을 계획하고 찍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영화가 여전히 지상파 텔레비전용 특집극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요샌 둘 사이가 많이 좁아졌다고들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차이가 보여요.

위안부 소재의 영화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시골 소녀 종분과, 종분이 동경하는 예쁘고 똑똑한 부잣집 막내딸인 영애가 주인공이죠. 같은 마을 출신이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은 1944년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됩니다. 현재 파트에서는 영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이 든 종분이 이웃집 소녀와 친구가 되면서 과거의 짐을 벗어던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였기 때문에 소재 표현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한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죠. 국가에 의한 성폭행이 소재인 영화지만 [눈길]은 직접적인 성폭행 묘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오용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귀향]의 클립들이 '[귀향] 엑기스'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이 태도는 올바르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이 빠지자, 채워야 할 자리가 생깁니다. 영화는 이 자리를 종분과 영애라는 두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고 그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합니다. 그들은 역사의 희생자로 등장하지만 오로지 그 역할로만 정의되지는 않습니다. 쌀쌀맞은 부잣집 딸과 사람 좋은 가난한 집 딸의 관계이니 익숙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 묘사는 쥐어짠 느낌 없이 자연스럽고 지나친 미화로 얄팍해지지도 않습니다. 캐릭터가 살아나자 이들이 겪는 고통 역시 더 깊어지고요. 전 이들을 그리는 영화의 '소녀문학적'인 태도가 좋았더랬습니다.

현재 파트를 보면서 [국제시장] 생각이 났습니다. 둘 다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의 이야기지만 [눈길]은 [국제시장]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지금 현재진행형인 문제점을 무시하지 않고 주인공 종분 역시 현재의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지금의 삶을 살려고 시도하죠. 한마디로 "이 호강하는 젊은 것들아, 내 고생 이야기를 들어라!"의 강압적인 태도가 없습니다. 보다 어른스러운 노인에 대한 성숙한 영화인 것이죠. (17/02/17)

★★★

기타등등
정진의 유작입니다. 명복을.


감독: 이나정, 배우: 김영옥, 김향기, 김새론, 조수향, 서영주, 장영남, 이승연, 정진, 다른 제목: Snowy Roa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drama_Snowy_Road.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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