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통제

2017.06.28 17:48

10%의배터리 조회 수:832

어릴 때, 그러니까 20대까지도 저는 굉장히 많이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감성적인 것은 유치하고 촌스럽다고 느꼈죠.

저는 아무리 봐도 다른사람들보다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었고 그것은 완벽주의 성향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완벽하게 해낼 것 같다거나 해내면 매우 설레고 기쁘고 벅차서 매우 쾌활하고 재밌는 사람으로서 엄청나게 많은 과업을 수행하고

실패하였거나, 물리적 시간상 실패할 것으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동굴속으로 들어가버렸어요.

그러나 전 이게 그냥 감정적 기복이 심하다고 느꼈을 뿐, 저 빌어먹을 완벽주의 성격을 고칠 생각은 못했죠.

그래서 당시엔 이 널뛰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을까, 를 고민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완벽하게 인생을 살 거라고 착각하면서요.

 

그리고 일에 매몰된 현재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제대로 과업이 수행되지 않거나, 뭔가 내가 완벽하게 한 것 같지 않거나 핀트를 잘 못 맞췄다거나 하는 날은 저 스스로에게 분노할 뿐입니다.

네, 어쩌면 이제 분노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잘 못하면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분노.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죠. 일을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어요.

일이 없어서 한가해지면 굳이 상사에게 가서 조릅니다. 제발 일 좀 달라고.

오늘은 휴가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일하고 있습니다. 장소가 중요치 않으며 시간도 중요치 않아진 상태까지 간 것 같아요.

그냥 365일 24시간 자는 시간을 빼고 그 외 집안일 등 제가 수행해야하는 임무를 빼고는 회사일에 매달리고 있죠.

어제밤에 문득 생각이 들어서 일중독 자가테스트 따위를 뒤져서 해봤는데 의미가 없더군요.

저는 모든 항목에서 '매우 그렇다'라고 느끼고 있었기에 점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서 뒷부분 질문은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국어시간에도 많은 칭찬을 받았었어요. 잘 썼다고.

그래서 소설을 몇번 써봤는데 그만 뒀죠. 저는 줄거리 수준만 쓸 줄 알지, 디테일한 묘사를 창조해내는 게 불가능하더군요.

요즘 들어서 생각해보니, 어릴 때 국어시간 및 각종 수상을 하며 칭찬받았던 글들은 모두 다 비소설이었습니다.

 

현재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엄청나게 많이 쓰긴 하는데 이게 다 그런 비소설부류더군요.

하루종일 메마른 글만 읽고 쓰고 해서 그런걸까요.

 

요즘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이겁니다.

감정의 통제가 이뤄지다 못해서 하루종일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시간이 없는데

인간적인 공감능력, 그러니까 측은지심이라던가 그런 감정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타인의 말에 저는 굉장히 일적이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는 겁니다.

반면 또 타인의 반응이라던가 분위기는 굉장히 잘 캐치해서 그 타인이 얼마나 당황해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너무 눈에 보여요.

그래서 미칠 지경입니다. 나는 정말 사회성은 글러먹은 인간이구나.  왜 나는 그때 그런 말을 한걸까. 그거 참 좋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말이 왜 죽어도 안떠오를까.

 

오늘도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는데, 저는 그냥  안타까운 눈으로 잠시 쳐다봤을 뿐

이제서야 아 그때 내가 가서 위로의 말을 한번도 안했구나 라고 깨닫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휴가이므로 비록 일하고 있지만 듀게에 반드시 글을 써서 이 휴가를 만끽하리라 라고 굳은 다짐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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