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 전쟁]으로 우리의 침팬지 영웅 시저의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삼부작의 끝인 거죠. 그렇다고 이게 시리즈의 끝이냐. 그건 아니겠죠. 이미 시리즈 1편에서 실종된 우주선의 떡밥을 깔아놓았고, 이번 영화에는 오리지널 [혹성탈출]의 주요 캐릭터에 대응하는 인물이 등장하거든요. 이 삼부작의 속편이 나온다면 아마 10여년 뒤가 배경일 것 같고 내용은 오리지널과 많이 다르겠지요. 일단 오리지널 영화의 반전이 먹히지 않을 테니까.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요새 아이들 중 상당수는 그 반전을 보면 놀라는 대신 어리둥절해 하더군요. 당시엔 먹히던 SF 관습이 지금은 이상해보이니까요.

하여간 영화가 시작하면 시저의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인간들이 유인원 아지트를 습격해 양쪽 모두에 수많은 사망자들이 나왔는데, 그 중엔 시저의 아내와 아들도 있었던 거죠. 시저는 가족을 죽인 '대령'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간 군대를 찾아나서고 그 사실을 눈치챈 친구들이 그의 뒤를 따릅니다. 중간에 그들은 말 못하는 어린 인간 여자아이를 만나고, 아이가 인간들의 언어를 앗아가는 병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편까지 시저는 모범적인 리더였습니다. 3편에선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그냥 지쳤는지. 언제라도 인간들에게 몰살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러 무리를 떠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혹성탈출] 시리즈는 리더쉽 교과서가 아닙니다.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고,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캐릭터들의 드라마죠. 그리고 영화는 이 드라마를 통해 지난 2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따라왔던 시저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마무리짓는 데에 성공합니다. 이 이야기엔 한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다고 생각한 옛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의 장중함이 있어요.

영화의 스토리는 조셉 콘래드가 닦아놓은 길을 따릅니다. 그러니까 [암흑의 핵심]을 흉내낸 [지옥의 묵시록]을 흉내낸 영화인 거죠.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대령은 이 영화의 커츠고요. 다행히도 영화는 선배들의 작품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서는 스토리보다는 묵시록이라는 개념 자체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문명인으로서 인간의 멸망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인간이 멸망하는 게 아니라 언어와 문자를 통해 전승되는 문명을 인간 대신 유인원들이 물려받는 멸망이죠.

[혹성탈출] 시리즈는 정말 뜬금없이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 블록버스터인데, 어쩌다보니 최근 나온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원작을 능가하는 리부트는 많지만, 삼부작이 결말까지 이렇게 만족스럽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죠. 옛날 SF의 낡고 수상쩍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놀랍고요. 오래 연구될 가치가 있는 시리즈입니다. (17/08/08)

★★★☆

기타등등
용산 CGV에서 하는 시사회로 봤습니다. 이전까지 왕십리 CGV에서 하던 시사회가 여기로 다 옮겨간 것 같은데, 저야 좋죠. 집에서 가깝고. 마스킹도 다 해주고.


감독: Matt Reeves, 배우: Andy Serkis, Woody Harrelson, Steve Zahn, Karin Konoval, Amiah Miller, Terry Notary

IMDb http://www.imdb.com/title/tt345095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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