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조던 피터슨)

2018.03.31 12:37

여은성 조회 수:1263


 1.유튜브에는 종종 조던 피터슨의 강연에 자막이 붙어서 올라오곤 해요. 이 사람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문제를 주의깊게 다루려는 자세는 고개를 끄덕일 만 해요.


 무언가가 문제라고 주장하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하죠. 첫번째는 자신이 문제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정말 문제거리가 되는지, 두번째는 그 문제가 어떤식으로 발생-지속되는지 끈질기게 추적하는 거예요. 세 번째는 끈질기게 추적해서 알아낸 것들도 사실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거예요. 


 

 2.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연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왜냐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더 쉬운 방법이 있잖아요? 온갖 방법과 노력으로 모으고, 분석하고, 재검토해낸 자료들을 제출하는 것보다 그냥 대중을 선동하는 게 훨씬 쉽고 더 잘 먹히니까요. 왜냐면 대중은 사실 멍청하잖아요? 그리고 사실은 똑똑해지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똑똑해지는 기분만 느끼면 대개는 만족하니까요. 어떤 평론가가 셜록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해주는 느낌을 제공하는 드라마.'라고 평했듯이요. 대중이 원하는 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사람이지, 어렵고 복잡한 연구 자료를 들이미는 설명충이 아니니까요.



 3.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이슈를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데 관심이 없어요. 권력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느냐가 결국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노력해서 권력을 가지는 것보다 대중들에게 잘 보여서 대중들에게 '부여받는'게 훨씬 쉽고 빠르죠. 그러다 보니 늘 앞과 뒤가 바뀌는거예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삼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져오기 위해 문제를 만들게 되거든요.


 그리고 대중들이 권력을 빌려주면 줄수록, 마치 아이돌처럼 확고한 연기를 해내야하죠. 권력을 '빌려주는' 대중들은 권력을 빌려준 대가로 더욱 정교하고 더욱 선명한 role을 연기하길 주문하니까요. 24시간 내내 말이예요. 아이돌이 무대 밖에서도 남자친구가 없는 척해야 하는 것처럼 운동가도 24시간 내내 운동가여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토론은 토론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해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게 됐죠. 그냥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상대방을 조롱하고, 상대의 예상되는 공격에 대한 대응논리를 퍼뜨리는 쇼가 된거죠.



 4.휴.



 5.하지만 어쨌든 빌려받은 건 빌려받은 거거든요. 대중이 광대에게 빌려준 권력을 회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죠. 안희정봉주나 온갖 연예인, 교수들을 보세요. 한번 눈밖에 나면 인기도, 명성도, 커리어도...몇십년 간 쌓아온 게 박살나는 덴 한나절도 안 걸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서의 인식으로 발현되는 힘은 애초에 가지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대중의 힘은 거의 모든 걸 빼앗아갈 수 있지만 돈은 빼앗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할 수만 있었다면, 조재현의 건물도 빼앗아서 불태워버렸을 걸요? 대중들은 분명히 그렇게 했을 거예요!



 6.조던 피터슨의 인터뷰나 강연 영상을 보며 마음에 드는 건 이거예요. 역시 이 엿같은 세상에 솔루션따윈 없다는 거요.


 피터슨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논리로 현상을 분석해내요. 그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피터슨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요. 그런데 현상 분석은 분석일 뿐이고 내가 궁금한 건 이거거든요.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면 왕처럼 살 수 있는건데? 똑똑한 네가 한번 말해보시지.'


 죠. 피터슨이 뭔가를 분석할 때는 똑똑하고 멋져 보이지만 솔루션을 제시할 땐 결국 이거잖아요?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인생이 조금 나아질 것이다.'말이죠. 저렇게 똑똑한 사람조차 결국 할 말은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인 거예요.



 7.그래요...인생은 뭐 그렇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왕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예요. 미친 듯이 노력해봐야 '자신의 인생보다 약간 더 나아진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을 뿐이죠. 대개는요.


 피터슨의 책이나 영상은 주로 2~30대 남자들에게 인기있다고 해요. '자신의 저서와 강의가 유독 젊은 남성 층에서 인기있는 것을 볼 때 현대의 젊은 남성들은 현대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메시지에 목말라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네요. 맞는 말 같아요. 


 나중에 써보겠지만 이 세상은 세 종류의 인간으로 나눠진다고 보거든요. 권력을 가진 사람, 권력이 없는 남자, 권력이 없는 여자...이 셋이요. 그리고 이 셋중 단연 밑바닥인 건 권력이 없는 남자인거죠.



 8.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남자는 사다리를 올라가야만 하거든요. 남자가 위로 올라가려면 자신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다리를 찾아내야 해요. 초기 조건으로 운좋게 인맥이 구축되지 않은 경우, 남자에게 동아줄 같은 건 없으니까요. 다만 여자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 말고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또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죠. 이건 남여문제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실행 가능한 옵션의 차이를 말하는 거예요. 여자는 자신에게 걸맞는 전략을 고르거나, 아예 투트랙으로 갈 수도 있죠.


 물론 사다리가 아니라 동아줄을 택한 여자에게도 늘 위험은 있죠. 이 세상엔 실제로는 허접이면서 단단한 동아줄을 가진 척 하는 놈들이 많거든요. 동아줄을 잡고 빠르게 올라가는 전략을 취하려면, 그런 척하는 놈들을 제끼고 진짜 동아줄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키워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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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대중이 멍청하다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예요.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느라 바쁘잖아요? 똑똑해질 필요가 있을 때에는 그들도 할 수 있는 만큼 똑똑해질 수 있겠죠. 그런데 똑똑하게 구는 건 24시간 해내기엔 힘든 거예요. 그것 또한 일종의 노동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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