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려진 시간' 이 영화... 찾아보니 손익분기가 250만 정도였는데 50만도 안 들어서 쫄딱 망했다고 하는데. 

좀 아쉽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그렇네요. 완성도도 괜찮고 뭣보다 재미 있는 영화이고 또 강동원도 나왔으니 고독한 예술 영화로 오해 받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흠;


어찌보면 '늑대소년'과 공통점이 많은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조성희 감독과 이 영화의 엄태화 감독을 괜히 비교하게 되더군요.

인디 시절 많이 마이너한 느낌의 소재와 분위기를 내세우던 감독들이 주류 입봉 후 만들어낸 동화풍 환타지 로맨스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라는 억지로. ㅋㅋ

뭐 조성희 감독이야 그걸로 한 번이라도 대박을 내긴 했지만 엄태화 감독은 이게 망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도입부에서 아주 느긋~한 속도로 아주 작정하고 남녀 주인공 간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패기가 맘에 들었습니다. 

적당히 떡밥 살포하고 빠르게 사건 전개하는 게 요즘 영화들 추세라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까지 들더라구요. 


어린이들이 시간이 멈춘 화노도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은 듀나님께서 리뷰에서 지적하셨듯이 도저히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귀엽고 예쁘면서 애틋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그게 뭔데;)가 아주 그럴싸해서 좋았구요.


본격적으로 강동원이 현실에 돌아온 후 벌어지는 이야기들도 뭐, 굉장히 전형적이지만 허술하거나 억지 같은 느낌 없고 또 초반에 잡아 놓은 감정들이 살아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억울과 억울과 억울의 연속이라 답답해지는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들의 모자란 상황 판단들은 초딩이니까 그런 것이고, 어른들의 매정한 반응은 얘들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는 데다가 다르게 볼만한 충분한 근거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고, 등등 억지스런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극한 감정 소모에도 불구하고 짜증나고 싫지는 않았어요.


사실 클라이막스 직전에 강동원이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에선 하마트면 눈물 흘릴 뻔 했습니... (쿨럭;)



강동원의 커리어에서 가장 잘 생기고 멋지게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가장 적절하게, 거의 완벽하게 캐스팅 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이 역할은 강동원 말고 떠오르는 배우가 없네요. 문자 그대로 대체 불가 수준. ㅋㅋ

비슷한 나이의 그 어떤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맡았어도 어쩔 수 없이 오그라들거나 징그럽거나 그랬을 것 같은데, 강동원이라서 캐릭터에 설득력이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ㅅ=


수린 역의 신은수는 정말 프로처럼 연기를 잘 해서 찾아봤더니 이게 데뷔작이라서 깜짝 놀랐네요.

게다가 어디서 이름을 좀 들어본 느낌이다 했더니 JYP 연습생이더군요. 

뭐 아이돌로 데뷔를 할지 어쩔진 모르겠지만 그냥 배우 전문으로 경력 쌓아갔으면... 하는 맘이 들 정도로 연기도 잘 하고 예쁘고 그렇더라구요.


다 보고 난 후엔 어딘가 '타이타닉'이랑 많이 비슷한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건 설명하려 들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ㅋㅋ



암튼 억울한 사람들 나와서 고생하는 내용의 영화는 절대 볼 수 없다!!!

라는 분들만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괜찮게 볼 수 있는 영화 아닌가 싶었습니다. 전 아주 재밌게 봤어요.



2.

'헤이트풀8'을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건 타란티노 영화 특유의 '노가리'가 20여년을 거치며 숙성되고 무르익은 모습이었습니다.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픽션' 때만 해도 타란티노 특유의 노가리 씬들은 좀 쌩뚱맞게 튀어 나와서 재미를 주는 요소...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니 그냥 혼연일체가 되어 있더라구요.

두 시간 사십분이나 하는 영화에서 별 일 없이 수다만 떠는 부분이 두 시간은 거뜬히 되는 것 같은데 지루하지가 않고. 또 그 수다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말이죠.


나쁜 놈 여덟명이 폭설로 한 집에 갇혀서 서로 으르렁대고 총질 해대는 이야기... 라고 하면, 게다가 감독이 타란티노라고 하면 상당히 뻔할 만도 한데 인물들마다 디테일을 몇 가지씩 넣어 놓고 그걸 이용해서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키고 가라앉히며 긴장감을 쥐락 펴락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긴데? 라고 물어보면 엄... 하고 좀 당황하게 되긴 합니다만 ㅋㅋ) 데뷔 초의 타란티노가 상대적으로 좀 기발하고 튀는 아이디어들로 승부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의 타란티노는 그냥 거장이라는 느낌. 이렇게 이야기를 짜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화면을 잡아 내는 센스까지 무엇 하나 나이 먹고 예전보다 못 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없습니다. 정말 이 양반이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되리라곤 옛날 옛적 그 시절엔 상상을 못 했었는데 말입니다. 허허;


마이클 매드슨이나 조 벨 같은 배우들의 의리 출연(?)이 반가운 와중에 갑자기 커트 러셀은 왠 일인가 했더니 '괴물'에게 오마주를 와장창창 갖다 바치는 대목이 있더군요. 하하.


암튼 참 재밌게 봤습니다.

내년 개봉 예정이라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웃'은 꼭 개봉 때 극장에서 봐야지... 라고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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