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예찬

2018.11.30 15:09

은밀한 생 조회 수:1604

아 이 정다운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부드럽고 조용하며 슴슴한 이것은

시금치 예찬을 하자니 백석 시인의 국수 싯귀가 문득 생각나서 응용했어요. 물론 백석 시인이 얘기한 그 국수는 메밀국수죠.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평양냉면이요. 그래도 하얗고 가느다란 국수를 먹을 때면 늘 백석 시인이 떠올라요. 국수 삶는 뽀오얀 흰 김이 피어오르는 걸 가만히 바라봤을 그의 시선이.

그런데 국수 예찬 못지않게 시금치 예찬이 하고 싶어졌어요.
요즘 시금치의 매력에 푹 빠져 있거든요.
음 이게 참 국을 끓여도 좋고 무쳐도 좋고 덮밥에 대충 넣어도 좋고. 특히 카레에 시금치 넣으면 정말 맛있잖아요. 씹는 소리가 일단 수선스럽지 않고 젓가락으로 집으면 그대로 술술 잘 감겨서 입안에 들어와요. 시금치 된장국을 끓일 때 시금치를 애초에 넣고 끓이는 게 아니라 시금치를 미리 살짝 데쳐서 투하하는 식으로 끓여야 맛이 좋더라고요. 끓는 물에 소금 두 스푼 넣고 5초 정도 데친 후 찬물에 헹궈 꾹 짜서, 멸치 다시 육수에 된장 적당히 풀고 끓이다 넣어요. 시금치국의 소박하고 온화한 맛은 그 단순한 재료 조합에 있죠. 전 만드는 사람도 수고롭지 않은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는데요. 그러니까 슥슥 몇 가지 재료로 휘릭 만드는 그런 음식말예요. 만드는 사람이 너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음식은 좋아하질 않아요. 가령 북어 가루 무침 같은 양반댁 음식 같은 거요. 북어를 두드리고 결대로 찢고 그것도 모자라서 찢은 북어포를 손으로 비벼 곱게 가루를 낸 다음 포슬하게 무치는 식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혀의 만족을 위해 손가락을 혹사해야 하나 싶거든요 전. 누군가 그런 수고로운 음식을 해줘도 그러지 말라고 강하게 얘기해요. 아 얘기가 다른 길로 샜는데요 여튼 시금치국이 의외로 바게트 빵이랑 어울리더라고요.. 고소한 바게트빵을 씹고 시금치국을 후룩 마시면 수수한 그 맛의 어울림에 마음이 순해져요. 파스타에 넣어도 좋고. 겨울철 시금치가 은은하게 달달한 맛이 좋더라고요. 김밥에도 오이보다는 시금치를 넣은 게 더 좋고...

시금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ㅎㅎ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0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2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29
125848 프레임드 #748 [2] new Lunagazer 2024.03.28 34
125847 의사 증원 2000명이 천공 밈화 되는 걸 보면서.. 으랏차 2024.03.28 246
125846 이미 망한 커뮤에 쓰는 실시간 망하는중인 커뮤 이야기 [5] update bubble 2024.03.28 437
125845 몬스터버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돌도끼 2024.03.28 84
125844 롯데 인스타에 [12] update daviddain 2024.03.28 163
125843 고질라 곱하기 콩 봤어요 [3] 돌도끼 2024.03.28 208
125842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update 조성용 2024.03.28 302
125841 데드풀 & 울버린, 배드 보이즈:라이드 오어 다이, 더 배트맨 스핀오프 시리즈 더 펭귄 티저 상수 2024.03.27 118
125840 하이브 새 아이돌 아일릿(illit) - Magnetic MV(슈퍼 이끌림) [2] 상수 2024.03.27 155
125839 프레임드 #747 [4] update Lunagazer 2024.03.27 45
125838 [핵바낭] 다들 잊고 계신 듯 하지만 사실 이 게시판에는 포인트란 것이 존재합니다... [10] update 로이배티 2024.03.27 401
125837 예전 조국이 이 게시판에 글을 쓴 적이 있지 않습니까? [4] 머루다래 2024.03.27 643
125836 ZOOM 소통 [8] update Sonny 2024.03.27 263
125835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사람 catgotmy 2024.03.27 213
125834 문득 생각난 책 [1] daviddain 2024.03.27 140
125833 종교 유튜브 catgotmy 2024.03.27 107
125832 [왓챠바낭] 엉망진창 난장판 코믹 호러, '좀비오2'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3.27 151
125831 보아 신곡 -정말 없니?/그거 아세요? 귤에 붙어 있는 하얀 것은... 상수 2024.03.27 182
125830 토드 헤인즈 감독, 줄리안 무어, 나탈리 포트만의 메이 디셈버를 보고 - 나는 괜찮고, 알고 있다는 착각들(스포있음, 내용 보충) 상수 2024.03.27 201
125829 다시 한번 역대 최고의 영화 중의 한 편인 칼 드레이어의 <오데트> 초강추! ^^ (3.27, 3.30, 4.14 서울아트시네마 상영) [8] crumley 2024.03.26 21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