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인셀

2019.10.16 23:32

Sonny 조회 수:1753

리뷰를 먼저 쓰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반박을 먼저 쓰게 되는군요. 저는 이 영화를 두고 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지, 안전하고 단순한 영화라고 치부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인셀 살인범을 위한 교과서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외롭고 찌질한 멍청이들이 자기연민을 구체적으로 하는 데 훌륭한 교보재가 되겠구나... 그런 생각만 내내 했는걸요.

이건 해석이 갈릴 수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설정이 어쩌고 저쩌고, 영화가 조커를 미화를 안했고 어쩌고 하는데 이 서사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인셀 살인범을 위한 변호문입니다. 그네들 감성으로 하면 "먹먹문"이라고 해야 하나요? 주제부터 표현까지, 이 영화가 아예 통으로 인셀 살인범을 위로하는 가상의 격려문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프로파간다를 무슨 해석의 여지가 있는 듯 말하면 안됩니다. 그건 서사와 영화에 대한 기만이에요. 여기다 대고 영화는 100명의 감상자만큼 100개의 답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그 100개의 답이 다 똑같은 퀄리티의 답은 아니며,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전제를 왈가왈부하는 건 시간낭비이니까요.

<조커>를 두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 영화의 인셀 미화 혹은 인셀 공감이 완전한 중립의 예술로 남아있을 수 있느냐, 그 영향력을 우리는 과소/과대 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좀 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서 이 영화를 왜곡에 가깝게 옹호하는 평들이 보여서 의아합니다. 저희가 <변호인>을 논하는데 이 영화는 빨갱이 영화다 / 아니다 이런 걸 두고 논해야 할까요?

일단 모든 영화는 그 자체로 미화이자 아름다움을 목표로 하는 서사라는 걸 상기해야 합니다. <조커>가 조커를 미화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택도 없는 소리에요. 이 영화는 모놀로그에 가깝게 조커/아서라는 인물의 머릿속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그의 내면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 한 인물을 세계로 하여 서사를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약력과 확장성은 한가지 전제를 깔아놓습니다. 우리가 조커라는 인물의 탄생과 변형을 봐야 할 정도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영화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문하게 됩니다. 왜 우리가 우발적으로 총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엄마와 이웃집 여자와 그 딸을 죽이는 남자의 "외로운 일대기"를 구구절절 봐야합니까? 이 영화야말로 디시나 일베 감성으로 인간성을 부정하는 "즙짜기" 영화 아닌가요? 저는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저 살인범의 변태는 언제쯤이나 극적이고 유의미한 아름다움을 질문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 게 없단 말입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혼신의 연기를 다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인터넷 도처에 널려있는 "남자는 갑옷을 입는다"나 "망할 년이 고백했더니 얼굴 썩더라 김X년"나 "애미년이 나한테 거짓말 했더라 죽여버릴라" 같은 일베감성 낭낭한 자기연민이잖아요. 왜 우리가, 다 큰 남자의 징징대는 이야기를 듣고 그 결과물인 살인을 목격하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더 웃기는 건 이 영화가 영화 스토리 전체를 망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 아래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두가지 탈출구를 제시하고 있어요. 하나, 봐라 저 불쌍한 남자를... 이거 다 뇌내망상이고 지 혼자 내내 낄낄대면서 끽해야 하는 상상이란 게 지보다 약자들을 죽이는 것 뿐이다. 둘, 이히히히히 다 죽여버렸음!! 응...? 이게 뭐가 나빠? 그냥 상상이라고 상상~ 뭘 그렇게 진지먹고 그러시나? 전자는 "이거 다 꿈ㅋ" 정도로 영화 전체를 기만극으로 만드는 이야기고 후자는 관객의 윤리적 불쾌함을 농담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라서 다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토드 필립스가 굉장히 질이 안좋은 창작자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기 이야기와 캐릭터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렇게 한발짝 물러날 구석을 마련해놓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억울함이나 호소하는 건 성숙한 작가가 할 짓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커>는 현실 곳곳에서 일어나는 "내가 제일 불쌍해" 대회를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참가하는 남자들을 픽션으로 구성하고, 거기다 인기 코믹스 캐릭터인 조커라는 상징을 불어넣은 데다가, 성과 열을 다해 살인과는 도통 무관한 그의 사연을 팔아제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인셀을 자극하지 않나요. 아니, 살인이나 폭력으로의 직접적 창구는 되지 않을지도 모르죠. 문제는, 그런 남자들의 자기연민과 폭력적 사고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작용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메인 테마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억울해서 옆의 못되고 찌질한 인간들을 죽여버렸어"인데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된다, 그래도 옳다, 그럴 수도 있다 라며 둥기둥가하는 영화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이 영화가 레퍼런스로 삼은 것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입니다. (<코메디의 왕>도 따온 게 분명한데 그건 아직 못봤어요... 전 스콜세지 영화를 즐길 수는 있지만 그렇게 좋아하진 않습니다ㅠ) 현실과 망상의 모호한 경계, 점점 미쳐가는 남자 주인공, 더러운 세계, 그 누구도 곁에 없이 고립되는 환경, 외로운 대도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여자...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택시 드라이버>는, 이 영화에서 벌어진 일이 현실이든 망상이든 어느 쪽으로든 의미를 갖습니다. 이 영화의 폭력을 변호하는 가장 큰 두개의 전제가 있는데 하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캐릭터가 월남전에서 불명예전역한 인간이라는 점, 그러니까 국가의 폭력으로 소외된 인물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 인물이 폭력을 휘두르는 한 지점이 소녀를 성매매시키는 사회적 폭력에의 저항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망상으로 본다면 찌질이 택시 기사가 머리 속에서나마 그 울분을 사회정의구현으로 풀어내는 것이고, 현실로 본다면 갈 때까지 가버린 인간이 그래도 최후의 양심을 가장 격렬하게 폭발시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게 이 영화의 결론이 아닙니다. 너무 끔찍해서 사이다라고 보기도 어려운 이 영화는 그래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이 영화의 주제인 "외로운 인간(남성)은 어떻게 폭력으로 자아를 탐색하고 사회적 인정을 갈구하는가"를 아주 효과적으로 각인시킵니다. 트레버가 선인이냐 악인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들이 얼마나 궁지에 몰려있어서 사회성을 잃고 그걸 개인적 방식으로 해소하려하는지, 지금 이 사회가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조커>는요? 이 영화는 세계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아서라는 인물에만 관심이 있죠. 한 인간을 향해 집요하게 골몰하다보니 인물을 중심으로 세계를 가치판단하는 우를 저지릅니다. 아서는 사람을 죽였지, 하지만 그 놈들이 나쁘잖아!! 그래서 이 영화는 마지막에 대놓고 축제까지 벌리고 있지 않습니까. 잘했다 우리 조커! 너가 최고다 조커! 그 장면에서 영화는 어떤 객관성도 없습니다. 그의 영향력을 영화적으로 전시하는 데 온 힘을 다 하고 있죠. <택시 드라이버>에서 세상의 눈으로 트레버를 바라보던 그 시선은 <조커>에는 전혀 없습니다. 인간의 변화를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는 이렇게 슬퍼, 그는 그래서 미쳐가, 그는 이렇게 외롭고 서러워, 라며 주장하는 영화가 어떻게 그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택시 드라이버>가 의지와 충동의 영화라면, 그와 반대로 <조커>는 감상과 충동의 영화인데요. 내내 가라앉고 뭐하나 제대로 할려고 하지 않는 걸 긍정하면서 살인을 필연으로 여기는 영화가, 인셀의 완벽한 심리 아닙니까? 조커의 광기는 트레버의 광기랑도 다릅니다. 트레버는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인셀이었지만 조커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의 폭력에는 자기연민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조커>는 레퍼런스로 삼았던 <택시 드라이버>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가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사회와 대립시켜 개인이 사회에 저항하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보는 대신,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그 개인의 눈으로 사회를 재해석하고 끼워맞추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객관성을 잃어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감상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그 폭력은 도무지 연민할 구석이 없는 일방적 폭력이구요.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정의의 단죄같지만 한편으로는 미친 놈 광기폭발로 보게 되는데, <조커>는 반대로 광기 폭발 외에는 볼 여지가 없는 행위를 자꾸 개인의 감상주의를 섞어서 연민하게끔 혐의점을 흐립니다.

현실의 신문기사를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20대 여성 살해...'왜 안만나줘' 울분 폭발" <조커>는 딱 이런 헤드라인을 길게길게 풀어놓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내밀한 감정의 변화나 스토리가 있느냐, 그게 없이 호아킨 피닉스의 리얼한 찌질이 연기로만 채워져있는데 아무리 정밀한 묘사를 한다 한들 세계와 개인의 대립에서 아서는 별로 변명해주고 싶은 인간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타인을 향한 폭력이야말로 자신의 약함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아주 낱낱이 떠들어대니까요. 조커는 이해가 안되는 인물이 아니라, 너무 뻔하고 투명해서 이해하고 말 것도 없는데 그걸 이해할 뭔가 더 있는 것처럼 꾸며놓았다는 게 문제인 영화입니다.

<조커>가 인셀 영화인 이유는 결정적으로 두가지입니다. (스포) 하나는 이웃집 여자의 존재입니다. 아서는 그와 친해지고 연인사이가 되지만, 이후 그것은 망상인 게 밝혀집니다. 어쩌면 영화 속 유일한 망상적 관계일수도, 아니면 유일한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이웃집 여자와의 관계가 망상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만큼은 관객이 헷갈리지 않게끔 감독이 친절하게 망상이라고 플래시백을 되짚어주니까요. 이걸 문장으로 풀어보면 난 여자친구가 있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나 혼자 망상이었네? 하고 깨닫는 겁니다. 아서가 유일하게 깨닫는 망상이 여자친구의 유무라는 건, 그에게 여자친구의 존재가 그만큼이나 절대적이고 또 거짓말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뜻이에요. 그는 그에게 가장 무해하고 아무 사연도 없는 모녀를 죽입니다. 사실 아서가 이 둘을 죽일 이유는 전혀 없는데도요. 이건 오로지 인셀의 감정으로만 이해가능합니다. 내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 근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어. 그리고 너는 이제 나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겠지. 그러니까 나는 너를 삭제시켜서 내가 더 이상 비참하고 외롭지 않게 할거야.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해서 그 외로움의 목적을 해치우는 걸로 영향력을 느끼고 비로서 자유를 느끼는 게 인셀입니다. 갖지 못할 바엔 부숴버리겠어. 그러면 나는 절대자가 될 수 있어. 어쨌든 너(희)를 지배하니까. 인셀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그렇잖아요. 자기 욕망을 온전하게 성취하기 보다는, 자기 욕망의 대상을 파괴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은. 그 반사회적이고 어떤 부정적 평가든 일단 자신을 향한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저지르는 그런 게 제가 생각하는 인셀 감성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미약하게는 인터넷에서 비인간적인 악플 달고 쌍욕이나 인격적 모욕을 일삼는 거고, 더 심해지면 오프라인에서의 스토킹이나 육체적 폭력으로 밀고 나가는 거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위로받았던 대상이 가짜인 걸 알았을 때, 그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서 애정을 폭력으로 바꾸고 어떻게든 자기가 관계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게 인셀의 자기중심성이랑 너무 똑같습니다. 사실은 잊혀지거나 미움받는 게 싫은 건데, 여자 = 세계의 반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못해서 유치하게 자기주장만 펼치는 거죠. ...

이 영화가 인셀 영화인 이유는, 조커가 폭력을 저지르고 사회적 반응을 얻는 과정이 정말 너무나 인셀의 희망사항과 일치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인셀들은 무슨 살인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들이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길은 없는데, 그 상황에서 관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가 용납할 수 없어서 끔찍해하는 사건을 직접 저지르는 것밖에 없거든요. 온라인에서의 악플을 오프라인에서 흉기로 직접 저지르는 거죠. 이를테면 유명 토크쇼 진행자를 죽이는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영화 속에서 조커의 살해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녹화가 됩니다. 그래서 방송이 송출이 되버려요. '이 건방진 새끼를 난 죽여버릴거고, 온 세상이 그걸 다 지켜보는거지... 후후후' 인셀들이 폭력을 통해 관심을 얻는 망상이 너무나 매끄럽게 진행이 되잖아요. 아서의 이 행위가 맞냐 틀리냐는 역시 논외입니다. 이 행동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고, 관객 역시 그 목격자로 동원되는 거 자체가 인셀의 망상충족을 위한 거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 아서의 우발적 살인에 세상 전체가 떠들썩하잖아요. 인셀이 보기에 얼마나 신나는 세상이에요. 관심을 원했는데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있으니. 거기다가 자신은 살인을 저질렀는데 자기 주변사람들은 온통 자신을 찬양해주고요. 이 영화가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있진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이 영화 전체가 그냥 인셀들의 희망사항이니까. 살인을 저지르고, 그게 대서특필되고, 자신은 신출귀몰해지고, 폭동에서 다시 한번 영웅으로 취급받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사람이나 죽이는 찌질이 쓰레기 짓이, 아주 극적으로 환호받고 긍정되는 내용이 어떻게 인셀 영화가 아닌가요. 이 영화는 정말 편리할 정도로 인셀의 희망사항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실현시켜가고 있잖아요.

사는 게 쉽지 않고 때로는 좌절할 수도 있어요. 그 과정에서 우울한 타협도 해야 하고 세상에 적응도 해야 하죠. 하지만 우리의 불쌍하고 찌질한 아서는 그걸 안하고 아이처럼 자기 망상만 계속 밀어붙여요.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건 없어지고 결국에는 주변의 사람들을 파괴하는 걸 선택지로 남겨놓고 실행해요. 이를테면 길고양이를 죽이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내가 취업이 안됐으니, 내가 고백을 까였으니, 내가 가챠를 돌렸는데 쓰레기만 열두번이 나왔으니 열받아서 길냥이 좀 해코지 해야겠다는 인간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폭력이 약자를 향할 때 사연은 아무 의미도 없어집니다. <조커>에서는 그 희생자들이 조금 더 덩치가 크고 말을 할 줄 알며 조커의 옆에 머물렀다는 불운이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조커는 길고양이를 죽이는 행위랑 똑같은 짓을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인셀 영화에요. 자신이 버림받았고 자신은 너무 착하고 자신은 세상=여친에 베풀려했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으니 틈을 타서 파괴해버리겠다는, 그 음험한 상상을 영화가 대리실현해주고 있으니까요. 찌질의 극치에요.

너무 두서없이 쓰다보니 좀 흥분했는데... 이 영화는 빈곤한 자들의 절망이 폭력적으로 해소되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물론 도덕적으로 그걸 옹호한다기 보다는, 미학적으로요. 춤을 추는 조커, 외로운 조커, 자신만의 코메디쇼를 펼치는 조커를 보세요 여러분!!! 이 영화 자체가 조커의 코메디쇼이고 관객은 원치않게 약자를 희생시키는 백인 남성의 자기연민 쇼를 감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객관성이라도 있었으면, 거리라도 벌려놨으면 관찰이라도 했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 이 미치광이 찌질이 남자의 1인극을 계속 봐야하니 그게 너무 쓰잘데기 없어요... 이왕에 미친 놈이라면, 조씨보다는 돈을 뿌리며 자경단 노릇하는 배씨가 훨씬 낫지 않나 싶네요.

결론: <조커>는 인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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