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겨울왕국 2> 보고 왔습니다.

2019.12.19 20:23

Sonny 조회 수:470

같이 본 지인이 너무너무 즐거워해서 보람은 느꼈습니다만, 재미는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전편에서 주창한 정치적 의식을 스스로 배반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겨울왕국2>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서 침략자라는 가해성을 깨닫고 이방인의 용서를 구하는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만, 이걸 전편의 소수자성이라는 주제로 놓고 보면 좀 뜨악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고립을 자처할 수 밖에 없던 소수자가, 가족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지지자의 헌신 끝에 공동체로 복귀하여 소속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겨울왕국2>는 그 소수자가 스스로 공동체에 머무르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공동체로 떠납니다. 가장 크게 호명되는 성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생각해보면 많이 이상하죠. 난 퀴어여도 이반들 사이에서 잘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 귀에 자꾸 종로3가의 노랫소리가 들려~


<겨울왕국2>의 본래 주제로 생각해도 엘사가 아렌델 바깥으로 가는 건 좀 위화감이 있습니다. 엘사와 안나의 어머니가 바로 노덜랜드의 주민, 이민자 출신입니다. 미국백인의 기준에서 생각할 때 안나와 엘사는 "순수백인"이 아니라 일종의 하프인 셈인데, 여기서 엘사가 아렌델 바깥으로 나가는 건 냉동마법(...)을 쓰는 점이 바로 이민족의 이질성으로 연결되어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엘사는 아렌델 국민과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그 이질성이 자신이 왕궁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됩니다. 다섯번째 정령이라 함은 결국 엘사가 정령의 힘이 없는 "평범한" 아렌델의 사람이 아니라 이민족들인 노덜랜드에 소속될 수 밖에 없다는 걸 뜻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엘사는 아렌델로 더더욱 돌아갔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이뻐하는 엘사는 사실 코카시언이 아니라 다른 인종일 수 있다구! 하는 타자성을 오히려 불어넣은 걸 수도 있겠찌만... 그래도 좀 궁금합니다. 아렌델과 노덜랜드의 다리 노릇을 하는데 엘사가 굳이 아렌델 왕국을 포기하고 노덜랜드에 소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액션이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더군요. 엘사는 이제 건축만 하는 게 아니라 레이저 빔도 엄청나게 쏩니다. 마블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 건 그냥 제 생각인지... 역동적이면서 호쾌한 액션이 속편다운 장점이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디즈니면 디즈니답게 공주님의 품위를 좀 더 정적인 자태로 지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좀 따라붙긴 했습니다. 도마뱀은 너무 굿즈를 노린 티가 났고, 올라프는 귀여운 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저는 엘사를 보면서 아렌델 버젼 아이언걸... 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이러나 저러나 엘사가 예뻐서 좋았네요. 안나는 약간 정상가족 헤테로 컨셉이 강해서 그런지 1편에서 한스랑 알콩달콩하던 모습이 없으니까 좀 인상이 덜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그냥 안나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올라프가 까불면서 겨울왕국 내용 설명할 때는 좀 웃겼네요. 그리고 디즈니의 기술력은 이제 정말 세계최강이라는 것만 실감했습니다. Into the unknown 부를 때나오는 영상이 정말... 저도 모르게 에밀레 에밀레 환청이 들리는 듯한!


@ 아차. 덧붙이자면 <겨울왕국2>가 가지는 환경보호의 메시지가 잘 전달이 될려나요. 그레타 툰베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74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1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656
110765 이 게시판에는 관리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관리자가 될 수는 있습니다. [7] 룽게 2019.12.19 851
110764 이제 톰 크루즈의 영화 홍보와 리얼리티 강조는 뗄레야 뗄 수 없군요 [16] 부기우기 2019.12.19 597
110763 게시판 관리자님과 회원 여러분 그리고 ssoboo 에게. [14] 2019.12.19 1184
110762 좋아하는 90년대(아마도) 영화 ost 7곡 [5] sogno 2019.12.19 424
110761 연말연시를 책임질 줄 알았던 두 영화 [4] 예정수 2019.12.19 591
» (스포) <겨울왕국 2> 보고 왔습니다. [12] Sonny 2019.12.19 470
110759 도편추방제 좀 그만요~ [36] Sonny 2019.12.19 1388
110758 다쿠아즈 [6] 은밀한 생 2019.12.19 471
110757 [회사바낭]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예 [2] 가라 2019.12.19 480
110756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연대 성태윤 교수님 글 [16] Joseph 2019.12.19 935
110755 트럼프 미국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고 하네요. [5] cksnews 2019.12.19 666
110754 어쩌다 아니 꼭 사랑이 널 찾아내고야 말 것 [2] 가끔영화 2019.12.19 451
110753 선택의 피로도 [9] 어제부터익명 2019.12.19 491
110752 강남역에서 찾기 쉬운 맛집 추천 부탁드립니다 [6] 산호초2010 2019.12.19 541
110751 오늘의 둘리 카드(1) [2] 스누피커피 2019.12.19 278
110750 아아니, 둠 패트롤 얘기가 없다니요?!(영업글) [6] 노리 2019.12.19 533
110749 [바낭] 90년대 라디오 '영화음악실'의 단골 레퍼토리들 몇 곡 [32] 로이배티 2019.12.19 958
110748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나오네요 [4] 부기우기 2019.12.18 531
110747 샘 레이미의 기프트 [3] mindystclaire 2019.12.18 611
110746 사라진 밤 [8] 어제부터익명 2019.12.18 64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