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겠지만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언브레이커블'과 '23아이덴티티'의 스포일러가 된다는 건 다들 아시겠죠.



 - 그래서 제임스 맥어보이의 23번째 자아 '비스트'는 여전히 어린 여자애들을 잡아다가 망측한 일들을 해대고 있고 우리의 '미스터 언브레이커블'께서는 그걸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십니다. 그러다 결국 둘이 맞붙는 순간 희한한 타이밍에 경찰이 출동하고, 둘은 잡혀서 특수 정신병원에 감금되는데 거기엔 또 '미스터 글래스'가 계시죠. 이건 그냥 우연이 아니라 '자신이 수퍼 히어로라고 믿는 정신 질환 증상'을 해결해 보겠다는 사라 폴슨 의사님의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라 폴슨님의 '치료'가 진행되는 가운데 언브레이커블 할배의 장성한 아들과 아냐 테일러 조이는 각각 아버지와 비스트(...라기 보단 케빈이겠죠)를 구하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그 와중에 제목 그대로 이번 편의 주인공인 미스터 글래스가 무언가 행동을 개시하는데...



 - 개인적으로 '식스센스'는 물론 '언브레이커블'까지도 샤말란의 영화들 중 깔 곳이 거의 없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언브레이커블'은 '식스센스'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당시 분위기로는 지나치게 평가가 후려쳐지는 분위기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 거의 다 평가가 낮은 건 저도 공감해요. 대부분 시작은 매력적인데 막판에 김이 확 새어 버리는 마무리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납득 안 가는 무리수 설정을 배째라는 식으로 던져 놓거나 그랬죠. 물론 그냥 아예 통째로 별로인 영화들도 있었구요. 10여년을 넘게 그렇게 지지부진하다가 '더 비지트'와 '23아이덴티티'로 부활 조짐을 보이고 내놓은 게 이 영화였는데 음... 안타깝게도 '글래스'는 그 상승세에 좀 찬물로 작용하는 느낌입니다.



 - 그러니까 별로였던 샤말란 영화들의 특성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무리수 설정과 썰렁한 마무리요.


 시작부터 비스트와 언브레이커블이 맞붙어요. 그리고 미스터 글래스까지 한 자리에 모입니다. 흥미진진한 시작이죠? 그런데 그 무대인 정신병원의 모양새와 의사가 하는 행동들이 너무 억지스럽고 재미가 없어서 금방 김이 샙니다. 장안의 화제인 초인 연쇄 살인마와 신비의 자경 히어로가 붙잡혔다는데 언론은 관심도 없구요. 병원 시스템은 얼마나 허술한지 기가 막힐 지경이고 애초에 이들이 (특히 언브레이커블씨가 말이죠) 왜 감옥도 아니고 정신병원에 끌려와 있는지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와중에 의사란 사람은 저엉말 설득력 없는 뻘소리를 진지하게 늘어 놓으며 주인공과 관객들을 괴롭힙니다. 근데 이게 두 시간의 런닝타임 중 40분을 잡아 먹어요. 그동안 볼 거리라곤 제임스 맥어보이의 다중 인격 서커스 하나 뿐인데 그것도 이미 2절인 데다가 그 변신들이 특별히 무슨 드라마와 연결되는 게 아니어서 금방 식상해지더라구요.


 그러다 런닝 타임 절반쯤 지나면 이제 뭔가 좀 전개가 되고 재미도 붙어 가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데, 문제는 결말입니다. 일단 세 명의 싸움에 대한 결말이 나온 후 뒤에 에필로그격의 이야기가 조금 붙는 형태인데 싸움의 결말이... 그 순간 제 솔직한 기분을 그대로 옮기자면 


 "...뭐!!????"


 였네요. ㅋㅋㅋ 아니 정말 식스 센스 결말보다 몇 배로 의외였는데, 참 맘에 안 드는 방향으로 의외였고 엔드 크레딧까지 다 보고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까지도 납득이 안 돼요. 

 언제나의 샤말란답게 나름 건전하고 심플해서 반박하기 어려운 교훈 같은 게 있어요. 이 결말이 그 교훈을 위해 선택되었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따위로 재미 없는 결말을 보면서 관객들이 참도 그 교훈에 귀를 기울이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꼭 이렇게 안 해도 똑같은 교훈 내세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납득이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건 '언브레이커블'과 '23아이덴티티' 팬들 중 다수의 면상에 싸다구를 올려 붙이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니 감독님, 상업 영화 하시는 분이 이렇게 상도덕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ㅠㅜ



 - 샤말란의 히어로 코믹북 사랑은 '언브레이커블'부터 알고 있었고 이번 영화에도 그런 애정과 열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믿음' 운운하는 교훈도 그런 면에서 나름 애틋하고 감동적인 면이 있죠. 하지만 뭐랄까...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좀 혼자 독특한 포인트에 꽂혀서 홀로 열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적어도 이 영화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어차피 샤말란이 마블, DC 히어로물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런 스타일을 피해간 것 자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라는 느낌.



 - 당연한 얘기지만 액션 쪽으로는 기대를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언제 샤말란이 그런 거 멋들어지게 찍어낸 적 있었나요. ㅋㅋ 게다가 이 영화 액션의 포인트는 '절약 정신' 쪽에 있어요. 제작비가 얼마 안 되는 영화이다 보니 사소한 액션씬들조차도 최대한 특수 효과 안 넣고 돈 적게 쓰는 방향으로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처음엔 그럴싸하다가도 막판까지 가면 좀 웃음이 나오더군요. 

 허접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아마 절약 정신과 더불어 액션의 초라함 자체가 감독의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뭐랄까... 액션은 이렇게 일부러 초라하게 찍어 놓는데 정작 전체적인 이야기는 전형적 코믹북 히어로 스토리식으로 허황되고 스케일 크게 흘러가니 위화감이 들었고. 아무래도 그 위화감까지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 음. 여기까지 적고 보니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적었네요.

 망작 같은 건 아닙니다. 기본적인 연출은 충분히 좋고 특히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킬 같은 건 관록이 보이게 꽤 잘 해내주고요.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제임스 맥어보이처럼 믿음직한 배우들이 충실히 연기를 해 주니 좀 모자란 드라마도 극복이 되는 편입니다. 꽤 애틋한 기분이 드는 장면들도 몇몇 있었고... 초중반의 좀 허술하고 지루한 구간이 있긴 했어도 전체적으론 재밌게 봤어요. 결말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계속 투덜거리게 되는데 그 결말에 큰 거부감이 없으신 분이라면 저보다 훨씬 좋게 평할 수도 있겠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실제로 한국 비평가들 평은 대체로 호의적이네요.



 - 제 결론을 내자면 이렇습니다.

 평소처럼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고 진중한 드라마를 통해 교훈을 던져주고 싶어하는 샤말란식 스릴러입니다. 다만 그 '진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장르적 재미를 일부러 희생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게 좀 과해서 종종 지루해지기도 해요.

 그냥 코믹북 수퍼 히어로 이야기들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보이는 영화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만. '언브레이커블'과 '비스트'의 결판 같은 걸 기대하고 보신다면 저처럼 되십니다. <-

 사실 전 어지간한 샤말란 영화는 거의 재밌게 본 편인데, 이 영화는 결말 때문에 싫어하는 영화 목록에 올려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ㅋㅋㅋ

 그래도 뭐 넷플릭스에 올라온 거니까요. 전편격인 두 영화를 보시고 이건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언젠가는 보시게 되겠죠. 그때 저의 이 투덜투덜 감상이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뭐야, 로이배티는 그렇게 까더니만 이 정도면 괜찮은데? 라는 기분이 들면 다 제 덕인 걸로!!!




 - 사실 전 미스터 언브레이커블도 좋지만 아냐 테일러 조이가 더 좋습니다. 여전히 비현실적인 예쁨을 뽐내주시더군요. 캐릭터의 역할이 그냥 비스트 돌봄이 역할에 충실하고 전편에서 던져진 본인의 문제들은 대사 두 줄 정도로 요약 처리해버리는 게 아쉬웠지만... 뭐 영화 컨셉상 그 이상의 역할을 줘도 이상했겠죠. 2020년에만 영화, 드라마 합쳐서 여덟편의 작품이 대기 중이니 다른 작품에서 좀 더 좋은 모습 기대하는 걸로.

 혹시 이 분이 맘에 드신다면 '더 위치' 보세요. 두 번 보셔도 됩니다. ㅋㅋㅋ



 -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한물 갔다지만 왕년의 수퍼 스타)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제임스 맥어보이에 나름 떠오르는 배우 아냐 테일러 조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제작비 2000만 달러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죠. 다들 샤말란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요(...) 

 흥행 망한 줄 알았더니 워낙 싸게 만들었고 이야기 설정이 나름 화제가 되었던 때문인지 총 흥행 수익이 제작비의 10배를 훌쩍 넘겼더군요. ㅋㅋㅋ



 - 블룸하우스 프러덕션 이름이 뜨길래 좀 반가웠(?)는데. 내친김에 확인해보니 샤말란의 두 전작 '더 비지트'와 '23아이덴티티'도 블룸하우스 쪽과 손잡고 만들었더군요. 이 회사도 물론 망작을 종종 내긴 하지만 워낙 저예산 전문이라 흥행 가성비로는 헐리우드 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브루스 윌리스의 출연작 수가 imdb 기준 125편이라서 우와 이 할배 완전 다작왕일세... 했는데 내친김에 사무엘 L 잭슨도 클릭해보니 이 양반은 190편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인 출연작 중 상당수는 아마 기억도 못 할 듯;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는 좀 의외인 게 흥행 배우로서의 위상이 저문 후에도 매년 꾸준히 서너편씩을 계속 찍고 있어요. 물론 그 중 대부분이 한국에 극장 개봉도 못할 정도의 작은 영화 내지는 망작들이긴 합니다만. 음. 보니까 2018년엔 중국 영화도 찍었는데 함께 나온 배우가 애드리안 브로디에 송승헌... 음......;;



 - 미스터 언브레이커블의 아들 역 배우는 '언브레이커블'에서 아들로 나왔던 배우를 그대로 썼더라구요. 물론 미스터 글래스의 엄마 역할도 마찬가지구요. 언브레이커블 와이프였던 로빈 라이트는 이번엔 안 나와요. 몇 년 전 사별한 걸로 처리해버렸는데 뭐 제작비 절감 차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이렇게 해놓아야 세 명의 주인공들에게 공평하게 돌봄이 한 명씩이 배정되기도 하네요.



 - 위에서 이미 말 했지만 정신과 의사 역할 배우가 사라 폴슨이에요. 감독의 의도인진 모르겠지만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캐스팅 개그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 싶었네요. ㅋㅋ 사실 그래서 제가 영화 보는 내내 몰입을 못한 것도 있습니다. 



 - 샤말란도 당연히 단역으로 출연하는데 대사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떠드는 내용을 보면 '언브레이커블'에서 단역 출연했던 그 캐릭터를 이어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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