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너츠 The Aeronauts (2019)

2020.06.14 22:50

DJUNA 조회 수:2018


[에어로너츠]는 단 한 번의 기구 여행에 대한 영화입니다. 1862년, 기구 파일럿인 아멜리아 렌은 일기예보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과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함께 하늘로 오릅니다. 영화는 이들이 하늘로 오르면서 시작해서 다시 지상에 도착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 뒤에 에필로그가 있긴 한데, 영화 대부분은 이 기구 여행과 이들의 캐릭터와 사연을 보여주는 회상 장면들이 차지합니다.

영화 도입부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자막이 뜹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아주 융통성 있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에 그 '실화'가 무엇인지 확인해야지요. 오프닝 크레디트를 보면 원작이 있네요. [Falling Upwards: How We Took to the Air]라는 논픽션책입니다. 전기 같은 건 아니고 19세기 기구 탐험의 역사에 대한 책인가 봅니다.

일단 실화. 제임스 글레이셔라는 기상학자가 과학연구를 위해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기록을 세우고 내려왔습니다. 그게 1862년. 음... 이게 전부인 거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같이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오른 아멜리아 렌은? 소피 블랑샤르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은 허구의 인물입니다. 글레이셔의 비행 파트너는 헨리 트레이시 콕스웰이라는 남자였습니다. 당시엔 일기예보가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였나? 아뇨. 당시 일기예보는 첨단 과학의 산물이긴 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미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도 일기예보를 장래성 있는 최신 과학이라고 봤습니다. 글레이셔의 실험은 기상학 발전에 중요했나? 높은 곳의 기상조건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건 중요했겠죠? 하지만 새 과학의 문을 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글레이셔나 블랑샤르가 영화에 나오는 환상적인 일들을 모두 겪었나? 그럴 리가요.

이 정도면 그냥 두 주인공을 모두 허구의 인물로 만들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었다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실화는 대충 살짝 들어갔고 실존인물의 이름을 가진 주인공도 모델과 별로 닮은 구석이 없으니까요. 그랬다면 허구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가능성을 훨씬 잘 살려서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거 같아요. 지금은 이야기가 '실화'라는 이름에 끌려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그냥 하늘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그 사이에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요. 기상은 악화되고 기구는 고장납니다. 아멜리아는 기구를 고치기 위해 거의 서커스와 같은 곡예를 하고요. 그리고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기한 세계입니다. 이 액션들이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좀 스팀 펑크 SF를 보는 느낌이에요.

영화의 액션에서 재미있는 건 성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몸을 쓰는 액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노련한 파일럿인 에밀리아입니다. 글레이셔는 보호받는 쪽이죠. 그리고 두 주인공을 연기하는 펠리티시 존스와 에디 레드메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 배분은 자연스럽습니다. 이들이 같이 공연한 전작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도 존스는 레드메인의 보호자였잖아요. 하늘에서 온갖 액션을 펼치는 씩씩한 여자주인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단지 이런 건 있습니다. '백인남자가 아닌' 사람들이 주인공인 19세기 배경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건 좋은 일인데, 아주 주의하지 않으면 이런 은근슬쩍 빅토리아 조 영국이 실제 이상으로 관용적인 국가처럼 그려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 여자들에 대한 시대의 압력이 꾸준히 언급되는 에밀리아보다는 글레이셔의 인도인 친구인 존 트루의 묘사에서 그런 위험이 더 큰 거 같습니다. 19세기 중엽의 영국에서 인도인 과학자가 아무 편견에 부딪히지 않고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고민이 좀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20/06/14)

★★★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건 수소기구인데 자막엔 계속 열기구라고 나오는 게 신경쓰였습니다.


감독: Tom Harper, 배우: Eddie Redmayne, Felicity Jones, Himesh Patel, Tom Courtenay, Phoebe Fox, Rebecca Front, Robert Glenister, Vincent Perez, Anne Reid, Lewin Lloyd, Tim McInnerny, Thomas Arnold, Lisa Jackson, Elsa Alili, Bella

IMDb https://www.imdb.com/title/tt614124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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