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들과 호스티스, 에뮬게임

2020.12.25 05:25

여은성 조회 수:462


  1.전에 썼듯이 요즘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다시 연락을 트게 된 그들을 계속 주기적으로 만나곤 해요. 한데 어쩐지 그런 버릇이 다른 모든 것에도 적용되는 중이예요.



 2.게임도 그래요. 요즘엔 게임을 하면 요즘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에뮬 게임을 구해서 옛날에 재밌게 했던 게임을 다시 깨곤 해요. 매우 신기하게도, 요즘 새로 나오는 게임들은 1~2시간 하면 지겨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게시판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을 잡으면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시간씩 게임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을 구분할 때는 게임의 제목이나 장르로 분류하기보다는 게임의 발매일과, 내가 몇 살에 접했는지를 기준으로 분류하게 돼요. 1995년에 나온 게임, 1998년에 나온 게임...이런 식으로요. 게임을 통해 나의 버전을 투영하는 거죠. 1995년 버전의 나, 2000년 버전의 나...이런 식으로요.



 3.이건 호스티스도 그래요. 그야 친구나 게임과는 달리, 호스티스의 경우는 내가 아는 가장 오래된 호스티스도 2010년대에 만났어요. 호스티스를 통해 가장 어린 시절의 나를 투영하려고 해 봤자, 내가 가장 어렸을 때 만난 호스티스는 30살 정도에 만난 여자니까요. 30살이면 나는 이미 어른이었고요.


 하지만 어쨌든 요즘은 옛날에 헤어진 호스티스들도 수소문해서 다시 찾아가거나 만나보곤 해요. 그야 시간이 많이 흐른 여자도 있고 아닌 여자도 있기 때문에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호스티스, 얼굴이 많이 바뀐 호스티스도 있죠. 


 그런데 호스티스를 기억할 때는 이상하게도 그녀들을 만난 연도가 아니라 휴대폰으로 기억하곤 해요. 한데 이게 의외로 연도랑 잘 맞아요. 호스티스들은 대개 그 해에 나온 가장 최신폰을 쓰곤 하거든요. 그래서 갤럭시S4미니를 쓰던 호스티스를 다시 만나면, 그녀의 바뀐 휴대폰을 보고 나의 기록을 갱신해줘야 해요. 그녀가 세월이 훌쩍 지나서 갤럭시S11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의 흐름을 느껴서 우울해지곤 하죠.



 4.휴.



 5.하지만 친구들이든 호스티스든 다시 만나고 나니 앞으로는 새로운 친구나 새로운 호스티스들을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냥 그들을 계속 이고 끝까지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전에 썼듯이 이젠 술집에 가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도 별로예요. 그냥 이제는 조용히 술을 마시러 갈거라면 아는 호스티스들이 늙어가거나...은퇴하거나...오너를 할 나이가 되어서 새 가게를 차리고 사장이 되는 걸 보면서 그들의 매상을 책임져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새로운 호스티스나 어린 호스티스를 더이상 볼 수 없는 이유는 이거예요.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도 빠꿈이가 되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이젠 그녀들이 뭘 생각하는지 거의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새로운 호스티스를 만나면 속아주는 건 가능하지만 속는 건 불가능해요. 내가 빠꿈이가 아니었던 시절...그녀들에게 잘 속던 시절에 만난 여자들만을 인간적으로 계속 볼 수 있는 거죠. 그녀들이 조금 나이가 먹었거나 조금 외모가 덜 예뻐도 괜찮다...예요.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이고 가는 게 중요한 일인 거죠.


 

 6.게임도 그래요. 이제는 어렸을 때 재미있게 해봤던 게임이나 어렸을 때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안 돼서 못해봤던 게임들만을 구해서 하곤 해요. 그야 아주 흥미있는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발매되는 경우-물론 이 경우는 완전 신작이라고 할 수 없지만-를 빼면. 실제로 나는 롤이나 배그를 한판도 안해 봤거든요. 이미 거의 10년 전부터 새로운 게임은 손대지 않고 있어요.


 그야 롤이나 배그를 플레이하는 동영상을 보면, 정말 잘 만든 게임이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뭐랄까...나의 시간이랄까? 게임을 좋아하던 내가 존재하던 시기에 나온 게임이 아닌 것들은 별로 할 생각이 안 들어요. 


 기본적으로 게임을 한다는 건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거든요. 게임을 좋아하던 먼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제의 같은 거죠.  



 7.친구도 그래요. 그야 새로운 친구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인간의 경우엔 새 친구를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이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서열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상대가 원하니까 어쩔 수 없죠.


 그야 이해관계나 서열 없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있긴 해요. 작가나 작가 지망생처럼, 창작에 뜻을 둔 사람을 만나는 경우엔 가능하죠. 그 경우엔 내가 스스로를 한껏 낮추고 상대가 떠들고 싶어하는 걸 들어 주는 식으로 대화를 진행하면 괜찮게 만날 수 있죠.


 하지만 그런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는 힘든 일이예요. 나는 기본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싫어하거든요. 어른이 된 뒤에는요. 한데 문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성공한 사람이면 몰라도, 새로 만난 성공한 사람은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이해관계나 서열 나누기를 깔고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성공을 했든 못했든간에 오래 된 사람들만을 친구로 만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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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재수 없는 놈이긴 해요. 매우...재수없는 놈인 거예요. 그래서 그동안 다가와준 고마운 사람들이랑 연이 많이 끊겼죠.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 보니 도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어쨌든...그게 친구든 호스티스든 돕고 살아야죠. 그야 전에 썼듯이 남의 인생에 금칠을 해주는 건 어려워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바꿔줄 능력은 없거든요. 그런 능력이 있어도 그렇게는 하는 게 아니고요.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건 가능해요. '금칠'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운 상태를 어렵지는 않은' 상태로 바꾸도록 도와주는 건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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