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인권

2021.01.09 14:35

Sonny 조회 수:1041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글을 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 글귀를 저는 2021년의 문구로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전체의 고난을 앞에 두었을 때 그 글귀를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네요. 그 고난이 개인의 것일 때는 제 고난이 아닌 양, 이미 과거에서 끝난 고난인 것처럼 말하며 즐겁게 풀어놓을 수 있겠으나 다른 사람과 세계의 고난일 때는 그것이 오히려 제 일인 것처럼 몰입하게 됩니다. 고난이 많았기에 그 고난을 실어서 글을 쓸 수 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1. 박원순 수사가 종결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6457.html


민주당 지지자들과 박원순 지지자들이 바라는 최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알 수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되었기에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아예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박원순 지지자들은 편하게 "인간 박원순" 같은 단어로 자신들만의 추억과 박원순의 소탈함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도 이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김학의 무혐의 결과는 그토록 비판을 하고 썩어빠진 세상을 욕하면서도 박원순 수사종결에 대해서는 마음 편하게들 받아들일 것입니다. 누가 이야기하면 앞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경찰도 검찰도 모른대잖아. 새삼 김지영씨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영씨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이토록 어려운 일을 온 몸을 깎아내며 기어이 이뤄냈다는 점에 그저 안쓰럽습니다.


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1210000800640


박원순의 유족들을 생각합니다. 박원순의 핸드폰 포렌식 수사 요청을 중지시켜달라고 했었던 이들의 선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여성인권을 이야기하던 정치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배신한 혐의가 씌워졌을 때, 온 가족과 지지자들이 진실을 덮으려 하는 모습이 선명합니다. 이들의 판단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피해자 측이 알아서 대응할 일이라고 대꾸했던 사람도 생각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왜 엔번방 가해자가 변호사를 고용하고 반성문을 매일 내는 모습을 비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성정치인의 성폭력 의혹 앞에서 순식간에 정치는 가부장제와 결합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형님을 위해 진실을 어떻게든 덮으려는 그 일사분란한 모습은 피씨가 아무리 피곤해도 기존의 구조가 가하는 폭력과는 비할 바가 안됩니다.


정치의 궁극적인 진화는 침묵입니다. 그렇기에 또 다른 방향으로 정치가 진화하길 바랍니다. 정치는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고 진실을 캐내는 것입니다. 불문율의 정치야말로 가해자와 기득권이 가장 잘 하는 정치입니다. 자신을 약자이자 정의라고 포지셔닝하는 이들이라면 진영론을 펼치기 전에 진실을 있는 그대로 추구하고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이건 사회적 인간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기본적 자세니까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977583.html


남인순 의원의 이와 같은 2차 가해와 구조적 은폐가 크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남인순 의원과 진선미 의원같은 개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구요. (이런 일에서 항상 남성 가해자와 남성 2차가해자들은 여성의 도덕적 과오가 비판받을 때 스리슬쩍 사라집니다) 다만 여성인권, 혹은 다른 인권을 이야기할 때 늘 대표로 호출되던 이들이 이렇게 2차 가해에 동원되고 또 적극적으로 그 가해를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민주당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개혁이 너무나 어렵고 조직의 가해에 쉽게 동참하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남인순 의원 및 다른 의원들이 위선자라고 하거나 억울한 충신들이라고 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구조 안에서 개인은 무력해집니다. 민주당이라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변혁은 영영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여성인권을 외쳐도 결국은 "민주당 안에서의 인권"이며 우선시되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조직일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조직의 개인희생이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다만 민주당이 이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현실 정도는 다들 인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2,. 중대재해처벌법이 문제시 되는 조항을 가지고 그대로 통과되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77786.html


여기엔 정부의 타협적인 태도와 재계의 집요한 로비가 작용했다. 중대산업재해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기로 한 데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이 컸다. 지난 6일 법안심사소위에서도 강성천 중기부 차관은 “저희도 산업재해는 당연히 근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법이 그대로 적용되면 음식점 배달원 사망사고도 똑같이 중대재해로 간주된다”며 소상공인 전면 배제를 수차례 주장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소규모 업체에는) 산업재해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냐”는 질문에도 강 차관은 “(적용 대상을) 5인 이상 사업체로 하는 것이 산업 현실을 감안한 합리적인 법 적용”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아가 중기부는 ‘주 52시간 제도 도입’과 같이 300인 이상, 50∼299인, 50인 이하로 3단계 유예 조항을 넣어달라고 수차례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상공인 전격 배제가 결정되면서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7일 “원래 여야 발의안에도 없고 정부 의견서에도 없던 ‘5인 미만 사업장 제외’가 갑자기 들어왔다”며 “이게 박영선 중기부 장관 본인의 뜻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한 이유다.


제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찬성한 민주당 측의 논리가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이 법은 사람을 죽게 하지 말자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법에 반대하려면 딱 두가지 논리만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죽지도 않는데 괜히 과잉제약을 하지 말자, 또 하나는 사람이 죽더라도 기업의 이윤추구를 방해하지 말자 입니다. 어느 쪽이든 현실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말이 안되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이 법안을 적용할 수 조차 없다면서 그 조항을 빼버린 법을 밀어붙입니다. 이 법안의 찬반구도는 노동자의 생명을 지킬 것이냐, 기업의 이윤을 지킬 것이냐 두개뿐입니다. 그리고 민주당은 명백히 기업쪽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의미의 이 조항에 대해서는 자신들만의 명분이 없습니다. 이들의 유일한 논리는 "야당이 반대한다"입니다. 그런데 야당의 반대에 맞서 자신들의 찬성을 밀어붙이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조항들을 수정하거나 보탠 다음 국민의 힘과 똑같은 선택을 합니다. 최소한 엇비슷하게 싸워보는 걸 해야죠. 민주당 전체가 국민의힘과 같은 선택을 하고 기업 쪽에만 유리하게 수정한 법을 찬성을 하면서 야당의 반대를 말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783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법 제정 과정에서 정의당과 노동자의 요구가 잘려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며 “국민의힘이 쏘아 올린 공을 더불어민주당이 완성시킨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민주당의 국정철학은 사라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류 의원은 “모든 노동은 존엄한데 사업자 규모에 따라 노동자를 차별하는 법은 찬성할 수 없다”며 “국민 지지와 응원에도 원안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앞으로 입법에 목적 맞는 집행이 이뤄지도록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류호정 의원은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태도가 아니라, 민주당의 적극적인 실천입니다. 일찍이 노무현때부터 심상정이 내내 지적했습니다. 두 정당은 친기업이라는 면에서는 완벽한 공생 파트너라고. 그리고 민주당이 지금 실제로 이렇게 친기업적인 법안 통과를 시키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업에서 노동자를 죽여도 되는 법이죠.


이렇게 한번 제정된 법안은 수정되는 게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법안 자체가 몇명이 단식으로 하고 추운 길에 나와서 시위를 하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이 소중한 기회를 당사자들이 절대 안된다고 항의하는데도 기어이 통과를 시켜버렸습니다. 아마 지지자들은 억울해하면서 왜 더민주만 가지고 그러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집권여당은 더민주이고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것도 더민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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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트위터에 올린 이미지입니다. 여기서도 민주당의 정치관념은 다시 한번 적용됩니다.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입니다. 지금 죽어서 없는 노회찬을 소환해 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감사한다"고 하면서 사실상 자화자찬을 하고 있습니다. 조국에게 김용균 어머니와 다른 당사자들은 안보이는 것일까요? 이 사람들이 그렇게 항의하고 안된다고 하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망자를 데리고 와서 말 한적도 없는 감사를 자신들이 받는 것일까요? (노회찬이라면 감사한다고 말 할 게 아니라 이 법안을 비판하고, 설령 동의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산 사람들의 시위와 항의는 철저히 묵살한 채 가상의 이미지를 끌고와 감사를 받는 모습이 싸이코패스같습니다. 정작 정의당 그 누구도 이 법안의 이런 통과에 기뻐하지 않았어요.



3. 이낙연



https://imnews.imbc.com/news/2021/politics/article/6051785_34866.html


이명박근혜 사면 발의에 이어 이낙연은 이제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발언까지 하고 있습니다. 일단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폐점한다는 소식은 제껴두고라도, 주식이라는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해본다면 절대 전국민에게 주식을 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식은 싸게 사서 누군가에게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구조의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잉여가치가 남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 비싸게사는 덤터기를 씌우는, 폭탄돌리기입니다. 전국민이 어떻게 주식으로 부자가 됩니까. 주식은 애초에 소수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구조인데?


전국민이 주식을 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확실하게 이익을 보는 쪽이 있습니다. 바로 기업입니다. 주식을 상장한 기업들은 주식으로 회사에 돈을 투자받으니 좋겠죠. 기업만큼은 무조건 노가 납니다. 이낙연은 이런 식으로 계속 친기업적인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주식안전망이라든가 투기에 대한 경고같은 건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 코스피 상승도 언젠가는 꺼지고 비싸게 물고 들어간 사람들은 결혼자금으로 빅히트 주식을 샀다가 돈을 몽땅 날려서 환불여부를 묻는 그 예비신부처럼 독박을 쓰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낙연은 지금 주식으로 전국민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환상을 심고 있습니다. 주식에 물린 사람들은 다 저마다 책임을 질테고 이낙연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겁니다. 기업들은 아주 많은 이윤을 챙기겠죠.


이낙연을 미쳤다고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는 민주당이라는 여당의 당대표입니다. 그는 바보가 아닙니다. 자신의 당론을 확인하고 자기 발언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계산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발언들은 타겟이 명확하게 좁혀집니다. 주식으로 한몫 벌고 싶은 중산층, 이명박근혜를 크게 싫어하지 않거나 그래도 풀어줄만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코로나에 가장 책임이 큰 목사와 개신교도들을 상대로 계속 추켜세워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큰 관심없는 이른바 무당파 중도보수 계층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추상적이고 둔감한 이야기만 합니다. 주식으로 부자될 것이다, 목사님들에게 감사한다, 보수를 용서해서 국민통합을 이루자... 민주당은 계속 표장사를 위해 세력확장만 꾀합니다. 뭘 하거나 나라를 더 좋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민주당이라는 당이 계속 여당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더 많은 표를 얻을려고만 해요. 기존의 지지자들과 뭔가를 하려고 하는 대신 일단 지지자들을 확보해놨으니 민주당을 안찍었을 사람들이 찍었으면 하는 신규회원 모집만 하는 겁니다.


민주당의 정치철학은 일관됩니다. 우리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으니 일단 힘을 달라. 그리고는 아무 것도 안하면서 계속 우는 소리만 냅니다. 피해자와 당사자는 철저히 외면합니다. 민주당이 검찰과 싸우고 있다? 저는 민주당이 약자를 포함한 국민들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유일한 정치세일즈는 "우리가 거악과 싸운다"인데 싸우는 쪽이 힘이 센 악당이라고 반대쪽이 늘 선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 사람들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건 적폐세력이라거나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거악과 싸운다는 정의의 용사 포지션을 빼면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위험한 세계를 덜 위험하게 바꾸는데 가장 힘이 세면서도 아무 것도 바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책임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입니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국힘당이나 검찰에 맞서는 그 구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뭘 하고 뭘 해내는지 그 실천에 따라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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