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느와르 (2009)

2010.12.16 22:50

DJUNA 조회 수:17443


1. 

정성일이 영화 감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패러디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상상한 영화들은 대부분 비슷했어요. 배우들은 정성일 특유의 문어체로 서구 교양이 잔뜩 묻어난 대사를 읊을 것이고, 카메라는 그들을 5,6분은 가뿐히 넘길 롱 테이크로 담을 것입니다. 감독이 사랑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인용되고 모방될 것이며, 영화는 장황한 러닝타임의 거대한 영퀴일 것입니다. [카페 느와르]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사람들은 이미 영화를 여러 번 본 것 같았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화는 허공 속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세계의 관객들을 상대해야 하지요.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영화감독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독이 정성일 같은 위치의 평론가일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의 영화는 지금까지 독자였던 관객들과 이어서 하는 대화의 연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카페 느와르]는 사람들이 상상했던 영화와 얼마나 비슷할까요? 일단 도입부부터 볼까요? 영화는 카메라 앞에 서서 햄버거를 먹는 소녀의 모습을 고정된 카메라로 컷 없이 보여줍니다. 시사회에선 2시 7분부터 시작해서 11분에 끝났으니까 첫 테이크의 길이는 3,4분 정도 되는 거죠. 관객들이 미리 수를 읽고 기다리고 있는 걸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 저에겐 이게 거의 도전이나 선언처럼 보였습니다. (아, 참. 그 소녀가 왜 그러고 있었냐고요? 햄버거를 많이 먹어 자살할 생각이었답니다. 보도자료를 읽고 알았습니다. 감독의 설명없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관객들이 예상했던 나머지 것들도 하나씩 나옵니다. 러닝타임? 당연히 3시간을 넘어갑니다. 관념적인 문어체 대사? 있습니다. 서구 교양? 영화 자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각색물입니다. 영화 인용? 넘칩니다. 롱 테이크? 햄버거 장면 이후에도 죽어라 나옵니다. 그 중 2부 중간에 정유미가 긴 대사를 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10분 정도 걸립니다. 영화 배우에게는 끔찍한 중노동이죠.


단지 이 영화는 은근슬쩍 관객들의 기대를 넘어갑니다. 만약 정성일이 사람들이 상상했던 그대로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무리 진지하게 만들었어도 사람들은 웃었을 겁니다. 그의 비평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더욱 심하게 웃었겠죠. 그럼 [카페 느와르]는 용케 그 우스꽝스러움을 피한 영화일까요? 아뇨, 반대입니다. 제 옆에 앉아있던 여자분은 3시간 내내 "키들키들, 어~~뜨~~케~!"를 무한반복하시더군요. [카페 느와르]는 굉장히 웃긴 영화입니다. 단지 이 영화는 작정하고 만든 코미디입니다. 장르 코미디라는 게 아니라, 감독 자신이 이 영화가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진짜로 웃긴다는 걸 인식하고 그 방향성에 일부러 힘을 실어주었다는 거죠.


일단 각색과정부터 보겠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백야]는 모두 진지한 걸작들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무대가 되는 2008년 서울에 이 진지함을 충실하게 옮겨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서나 언어가 모두 과거의 서구문화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정성일은 그 장벽을 무시해버립니다. 그 결과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딱 삼중당 문고에 나올 법한 어색한 번역체 대사들을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진지하게 읊게 됩니다. 만드는 사람이, 이 과정 중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희극성을 무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과정 중 정성일 문어체는 익숙함을 넘어선 다른 어떤 것이 되어 버립니다. 물론 따로 떼어서 보면 진지한 두 작품을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극성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성일스럽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이런 식으로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현학성'은 대사의 어투만큼이나 삼중당 문고화되어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인용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과시성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유명해요. 영화가 자주 사용하는 삽입곡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베토벤의 [엘리자를 위하여]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작품들 대부분은 [디 워], [괴물], [올드보이]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들이고요. 물론 예민한 시네필들은 곳곳에 숨어있거나 보다 섬세한 인용과 오마주, 모방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드러나 있는 인용들이 자연스러운 거부감에 대한 면역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들 이런 식입니다. 모두가 갑옷을 입고 있거나 위장을 하고 있거나 완충제를 달고 있지요. 그리고 이런 전술은 타당한 것입니다.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 않는 위치에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이중삼중의 알리바이를 갖고 있으며, 그들이 내용 자체를 잠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페 느와르]를 단순하게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통 영화라면, 관객들은 신하균이나 정유미, 김혜나와 같은 배우들이 이상한 발대본을 갖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기 지도를 받아가며 발연기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어색함과 투박함은 모두 의도된 것이랍니다. 입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미장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장면들이 좌우대칭이거나, 좌우대칭에 종속되어 있거나, 좌우대칭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좌우대칭이거나 그렇습니다. 3시간 내내 그렇습니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전 그냥 감독이 도전과 추가작업을 피하고 안전하게 가기 위한 편리한 술수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거의 완벽한 좌우 대칭으로 쪼개진 이야기의 구조 안에서 보면 이 징그러울 정도로 일관된 반복에 대한 편리한 답변이 생깁니다. 그리고 아마 그 답변 뒤에는 그 뒤에 나올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수많은 추가답변들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이러다보니, 보는 동안 조금씩 숨이 막히게 됩니다. 재미는 있습니다. 별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신나게 깔깔거리다 나오는 관객들도 많을 겁니다. 아무런 변형없이 [개그 콘서트]처럼 즐길 수도 있는 영화니까요. 하지만 정성일을 알고 그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관객들에게 [카페 느와르]는 순수한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는 보여지는 그대로의 영화가 아니고, 나오는 사람, 사건, 사물 역시 무언가 다른 것이며, 그 뒤에는 촘촘한 답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감독 정성일을 깔 때가 됐다!"를 외치며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카페 느와르]는 결코 공정한 게임처럼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물론 영화는 그들의 불평에 대한 답변들 역시 숨겨놓고 있겠지요. 


3.

[카페 느와르]에서 가장 정직하고 순수해보이는 건 서울(그리고 그 주변공간)을 그리는 방식입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영화는 자신을 거의 완전히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서울의 공간들을 끊임없이 다듬고 과거를 파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그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은 청계천이라는 공간입니다. 감독이 선택한 두 편의 유럽 소설들의 내용과 이 공간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 시대를 사는 관객들이 그 의미를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2009년 1월 1일 보신각을 무대로 한 후반부의 특정 장면에서 영화는 자신의 정치성을 더이상 감추지 않습니다. 물론 심술궂게 이러한 배치 역시 계산된 전술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4.

기자간담회 때 진행자는 김혜나에게 연기한 캐릭터의 이상함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배우는 당황해서 잠시 말문을 잃었는데, 저 역시 그 질문이 지독한 무리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제 주머니 안에 든 5백원을 걸고, 영화 내내 김혜나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깊은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내기를 걸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있다면 이성민이 연기한 문정희 캐릭터의 남편 정도일까요.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 대신 책이나 그 책의 언어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어색하게 번역된 언어지요. 보통 영화 같았다면 배우들이 당연히 거쳐야 했을 감정이입 과정이 상당 부분 빠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영화를 볼 때 언제나 배우부터 먼저 찾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태도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습니다. 물론 정유미가 한밤중의 청계천을 백야의 페테르스부르크인 척 하며 나스첸카가 읊어야 할 대사를 가상의 번역자를 통해 어색한 한국어로 낭송하는 광경은 분명 희귀한 구경거리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유미 연기의 절정이 될 가능성은 없겠죠. 전 정유미가 주인공인 2부의 모든 장면들보다 그 배우가 1부 끝에 짧게 등장하는 지하철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몇 초 동안은 배우는 살아있는 진짜 사람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전 이 영화의 전문배우들보다는 가수 요조를 더 편하게 보았는데,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이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아마추어이고 캐릭터 자체도 두 편의 원작소설에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을 말하는 책으로 만들어버리는 감독의 마수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10/12/16)



기타등등

1. 2부에 나오는 디지털 흑백 화면은 별로 안 예뻐 보입니다.... 전 그냥 순진하게 기술적 한계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역시 여기엔 답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 저도 2009년 1월 1일에 보신각에 있었습니다. 중간에 [카페 느와르] 촬영팀을 만났었을 수도 있었을까요. 화면 어딘가에 제 뒤통수가 찍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정성일, 출연: 신하균, 정유미, 요조, 문정희, 김혜나, 이성민, 정인선, 박하연, 다른 제목: Café Noir


IMDb http://www.imdb.com/title/tt150068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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