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있으므로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얼마 전에 프랑스의 위대한 배우인 장 폴 벨몽도가 타계했다. 향년 88세. 추모가 좀 늦었지만 나에게 장 폴 벨몽도는 의미가 큰 배우이기 때문에 추모글을 올리고자 한다. 벨몽도는 장 뤽 고다르, 장 피에르 멜빌, 알랭 레네 등 많은 훌륭한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고다르의 영화들에서의 연기로 기억된다. 벨몽도가 참여한 고다르의 영화들 중에서도 역시 고다르의 혁명적인 장편 데뷔작인 <네 멋대로 해라>(1960)에서의 미셸 쁘와까르 역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영화의 마지막에 미셸 쁘와까르가 경찰의 총에 맞아서 거리를 뛰어가다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은 내가 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명장면인데 이 엔딩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의 엔딩 장면만큼이나 내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져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국내에서는 라이센스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시네마떼끄’ 시리즈로 프랑수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1939) 등이 비디오로 출시되어 유통되고 있었고 나는 동대문에서 그 시리즈로 출시된 비디오 테이프들을 잔뜩 구입했다. 그때 내가 구입했던 영화들 중에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도 있었다. 나는 97년부터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 당시까지 소문만 듣고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네 멋대로 해라>를 드디어 대학교 내 시청각실에서 보게 되었다. 

<네 멋대로 해라>를 처음 봤던 순간을 상기해보자면 다른 부분은 다 잊었어도 엔딩 장면만큼은 현재 그 순간 그대로 머리 속에서 재생이 될 정도로 생생하다. 당시 이 엔딩 장면에 대한 나의 인상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생경함’이었다.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이미지와 마주했었다고나 할까. 당시에 나는 재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미셸 쁘와까르(장 폴 벨몽도)가 파트리샤(진 세버그)에게 배신을 당한 뒤 경찰의 총에 맞은 이후 우측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거리를 뛰어갈 때 흐르던 재즈곡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후에 그 곡이 유럽의 유명한 재즈 뮤지션인 마르샬 솔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셸의 움직임과 마르샬의 음악은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 곡은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때 동반되는 음악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었다. 보통의 영화에서 흔히 이러한 순간을 떠올려볼 때 연상되는 비장미 따위는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에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관람 비율로 따져보았을 때 압도적으로 남들이 다 보는 상업영화를 주로 봐왔던 나에게 이 장면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셸이 거리를 뛰어가는데 미셸의 우측에서 버젓이 카메라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던 행인들의 모습도 매우 흥미로왔다. 그 행인들의 모습과 어우러진 거리의 생생한 풍경 때문에 나는 미셸이 총에 맞은 뒤 뛰어가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총에 맞은 사람을 카메라가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인 것처럼 그 당시에 느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미셸이 총에 맞은 것과 무관한 듯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는 행인들의 모습이 맥락상 맞지 않다고 느껴져 이 상황이 연출된 것이 맞다고 판단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픽션인지 다큐인지 모를 이미지들이 내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나는 그 엔딩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놀랍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이 엔딩 장면이 자아내는 생동감은 장 폴 벨몽도와 보조를 맞추며 그를 쫓아가는 라울 쿠타르의 핸드 헬드 촬영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후에 알게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 장면을 살펴본다면 그 장면에서는 이태리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영향이 느껴진다. 특히 고다르가 좋아하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된 프란체스코를 쫓아가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피나(안나 마냐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과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을 비교해보면 유사점이 있다. 

독일군에게 체포된 프란체스코가 탄 트럭이 출발한 가운데 프란체스코를 쫓아 거리를 질주하던 피나는 갑자기 들리는 총성과 함께 쓰러진다. 많은 전쟁영화들의 경우 이런 장면을 보여줄 때 쇼트를 정교하게 설계해서 프란체스코가 탄 트럭이 떠나는 모습과 트럭을 쫓아 질주하는 피나의 모습 그리고 뛰어가는 피나를 보고 그녀를 저격하는 독일군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쌓아가고 피나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클로즈업을 이용하여 드라마틱하게 연출할 때가 많다. 극적 효과를 자아내기 위한 형식을 동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무방비 도시>에서 로셀리니는 피나를 저격하는 독일군은 아예 보여주지를 않는다. 그는 이 장면을 카메라가 트럭의 위치에서 트럭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피나를 보여주는 가운데 갑자기 들리는 총성에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으로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연출 방식으로 인해 피나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극화된 것이 아니라 마치 현장에 입회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생동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날 것 그대로의 현장을 그대로 목격한 것 같은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고다르도 로셀리니와 유사하게 미셸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정교하게 쇼트들을 구축해가며 긴장감을 쌓아올리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무방비 도시>와 다르게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경찰이 미셸에게 총을 쏘는 쇼트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후에 미셸이 총에 맞는 순간은 생략되어 있다. 경찰이 총을 쏘고 난 이후에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미 총에 맞아 피를흘리며 거리를 뛰어가고 있는 미셸의 모습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순간처럼 미셸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방식은 <무방비 도시>에서 카메라가 피나를 보여주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은 영화의 제목을 닮은 것 같은 ‘네 멋대로’의 편집으로 인한 것도 있었다. 영화에 대해서 지금보다 잘 알지 못했던 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보던 당시에 구체적으로 편집에 대해서 잘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네 멋대로 해라>에서 쇼트들이 이어지는 방식은 당시까지 내가 즐겨보았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보였기 때문에 어렴풋이 기존 영화들과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편집의 차이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쇼트가 붙어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사실 자체에 흥분하고 그런 방식의 편집을 매우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의 시점에서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 시퀀스에서의 편집을 살펴보자면 고다르는 의도적으로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엉망으로 보일 수 있는 편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쇼트가 연결될 때마다 상황을생략해서 제시하는 점프 컷을 사용하거나 흔히 영화에서 통용되는 시선과 동선의 일치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쇼트의 연속성을 깨고 있다. 가령 이 엔딩 장면에서 미셸이나 자동차의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주고 다음 쇼트로 넘어가야 쇼트가 튀어 보이지 않는데 고다르는 일부러 쇼트의 지속 시간을 줄여서 그걸 파괴한다.

흥미롭게도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쇼트를 이어붙이는 방식은 마치 재즈에서의 즉흥 연주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마르샬 솔랄의 재즈곡들이 탁월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와 재즈와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한 편의 재즈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꽉 짜인 구조 안에서 음표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내면서 화음을 만들어간다면 재즈는 즉흥 연주를 바탕으로 음표들이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 화음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 멋대로 해라>의 편집 방식은 기존의 영화 문법에서라면 응당 있어야 할 위치에 어떤 쇼트가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쇼트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쇼트들을 이어 붙이면서 그러한 쇼트들의 만남으로 인해 생성될 수 있는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의 효과를 허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네 멋대로 해라>와 재즈에서의 즉흥 연주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 어렴풋이 감지가 되었던 <네 멋대로 해라>와 재즈와의 관련성은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가운데 점점 확실하게 굳혀져 갔다. 

장 폴 벨몽도에 대한 추모글을 쓴다고 하면서 정작 장 폴 벨몽도에 대한 나의 견해는 거의 없고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 시퀀스와 관련된 내용들만 길게 적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장 폴 벨몽도는 무엇보다도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 시퀀스와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장 폴 벨몽도가 총에 맞은 뒤 뛰어가거나 뛰는 중간에 휘청거리는 모습,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앞에서 결국 벌러덩 앞으로 고꾸라지는 모습, 그가 내뱉는 권태에 찌든 대사들, 파트리샤를 바라보면서 환멸에 찬 말을 내뱉고 그의 눈을 직접 감기며 죽는 모습 등 그의 인상적인 연기들과 함께 위에서 서술한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 장면이 나에게 주었던 충격들이 총체적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장 폴 벨몽도에 대한 인상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글의 내용을 상세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엔딩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영화에 대한 내생각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 중의 하나에 해당하므로 <네 멋대로 해라>를 처음 봤던 순간을 최대한 생생하게 글로 되살려내야만 나로서는 장 폴 벨몽도에 대한 온전한 추모도 가능했다. 

고다르의 또 다른 걸작인 <미치광이 삐에로>(1965)나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연상시키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숨겨진 걸작인 <미시시피의 인어>(1969)를 비롯한 많은 영화들에서 벨몽도의 연기도 무척 훌륭했고 인상적이었으나 이미 <네 멋대로 해라>에서 그의 연기가 너무 깊게 각인된 나로서는 이후에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사족이거나 후일담으로 보여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나는 장 폴 벨몽도를 무엇보다도 영원한 반항아인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미셸 쁘와까르’로 기억하고 싶다.나에게 늘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 인물이자 시네마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있었던 장 폴 벨몽도의 삶에 진심으로 경의를 바치고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P.S: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첨언을 하자면 <네 멋대로 해라>에서 파트리샤 역을 맡았던 진 세버그의 연기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장 폴 벨몽도에 관한 추모글이라서 그녀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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