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생명체 거주 가능 지역을 일컫는 골디락스 존이라는 단어는 드넓은 우주 사이의 항성과 행성 사이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을 발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일컬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사람 사이의 거리는 외로움도 구속도 잊게 하는 각자의 자유로운 쉼터를 마련해 주고 한 사람의 존재를 고양시켜주는 따사로운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 전 조금은 작고 차가운 행성이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먼 거리가 가장 적절한 골디락스 존이라고 칭할 수 있었던 외로움이 익숙한 사람이지만요.

 

 하지만 단순히 적당한 온도와 평온함만으로 생명이 탄생하지 않듯이 사람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격렬한 지질 활동이 이어지는 바다 내에서 지난한 혼돈의 예외적인 확률에서 최초의 생명이 태어나듯 사람에게 반한다는 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파도와 같은 마음의 일렁임 속에서 발생하는 예외적인 삶의 시작이니까요. 그러기에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거리란 기쁨과 환희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을 가져오는 불안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은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관계 속으로 귀속되어 집니다. 하지만 각자가 다른 크기의 존재이듯 각자가 원하는 적당한 거리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크고 뜨겁기에 가까운 거리로 다가올수록 불편함을 깨달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원심력이 강하여 인연의 줄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하는 순간 더 멀리 튀어나가 결국에는 완전한 타인으로 멀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차가운 삶의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들어가 보지만 따스함을 느끼기 이전에 서로간의 부딪힘이 생채기가 되어 아픔을 먼저 겪는 경우가 더 흔하게 발생하곤 합니다.

 

 각자의 다른 거리는 각자의 다른 기대를 만들어 냅니다. 사랑이라는 햇살 아래 내비치는 당신의 그림자를 먼저 보고 어떤 설렘을 전하려고 하지만 그 길어지는 그림자가 나에게 멀어지는 징조임을 알게 되는 쓸쓸함. 너무 강한 상대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뜨겁다 못해 나 자신이 말라버리는 듯한 갈증.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더 잘 보고자 혹은 더 잘 보이고자 하는 태도가 지나친 열망이 되어 족쇄처럼 관계를 무겁게 하는 것. 결국엔 회환으로 가벼워질 테지만 이 둘의 관계는 메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진 채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예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멀리서 그 사람을 바라만 보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요? 그 사람의 친절함이 나를 위한 다정함이 아닌 것을 깨달았을 때의 마음의 독. 그 사람의 웃음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는 가면임을 알게 될 때의 혼미함. 관계에 대한 기대와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텅빈 공간에 놓인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쓸쓸한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공허를 안겨다 줍니다. 사랑이라는 관계로 두 사람이 서로의 궤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좁고 위태로운 골디락스 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을 상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모든 관계의 대답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당신을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이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단 하나뿐인 자신에 대한 유별함과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자신을 맞닥뜨리는 것은 타인의 더 많은 것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조차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부분을 아는 것은 타인이기에 사랑할 수 없는 부분이 더욱 많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유별한 1%를 발견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유별한 1%를 발견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완전하지 않기에 사랑을 바라는 것처럼 완전하지 않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일 테지요.

 

 가을은 쓸쓸함과 초조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가듯 제 자신의 미욱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제 자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반했던 사람과 자신이 반했던 사람에 대한 허투른 태도들. 어느새 막막한 시간으로 흘려 보내 제 자신 조차 무디어져 버린 일상을 보낼 따름이지만 혼자 있을 때 겪게 되는 막연한 설렘과 외로움은 타인에 대한 갈망일 뿐만 아니라 타인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제 자신만의 공간이 남아 있음을 알게 합니다. 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온전히 제가 혼자임을 상기하게 됩니다. 결코 당신은 내가 될 수 없음을 내가 당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각자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궤도를 유지하기 위한 마음의 거리를 조율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그러기에 관계의 궤도는 끊임없이 조금씩 수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저의 외로움을 위로해 줄 수 있겠지만 외로움을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그건 온전한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기에 외로움에 잠식하지 않기 위해서 전 제 자신의 외로움과 직면합니다. 그러기에 전 사랑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에 찾기에 앞서 혼자임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자 합니다. 하지만 따스함을 갈급하는 저의 마음은 어느새 다른 사람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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