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2013)

2013.01.28 14:45

DJUNA 조회 수:17135


임순례의 [남쪽으로 튀어]의 원작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장편소설. 왕년의 운동권 투사였던 아나키스트 아빠 때문에 집안 식구들이 고생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절반은 도쿄에서 진행되지만 중반부터는 이리오모테라는 남쪽의 섬으로 무대가 바뀌지요. 이 작품은 이미 2007년에 모리타 요시미츠가 영화화한 적이 있습니다. 전 그 영화는 못 보았고 영화 시사회 직전에 원작소설만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모순되는 두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더군요. (1) 이 일본 소설을 도대체 어떻게 번안하려고 그래? (2) 왜 이걸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지 대충은 알겠네.

결국 두 나라 역사의 유사점과 차이의 문제입니다. [남쪽으로 튀어]의 주인공은 왕년의 운동권입니다. 우리나라 운동권 세대가 중년에 접어든지 오래이니 얼추 계산이 맞아요. 세상 어딜 가도 운동권 세대의 변화는 비슷하고요. 당연히 이 소재를 이용해 40대 관객들을 위한 힐링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산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일본 사람들에 대한, 일본 역사에 대한,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영화를 위한 큰 그림은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진짜 재미를 제공해주는 자잘한 디테일은 어떨까요. 이것들은 각색 과정 중 그대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는 있어도.

영화를 봤는데, 각색 방향은 무난하지만 아쉬웠습니다. 영화는 그냥 큰 그림을 남겨두고 디테일을 제거해버리는 방향을 택했어요. 대신 우리나라 역사와 사람들의 디테일로 빈 자리를 채우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걸 포기해버린 겁니다. 소설의 배경인 오키나와 근처 이리오모테 섬은 개성이 분명한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근방에 섬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를 무대로 삼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이를 그냥 경상남도의 작은 섬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아마 후반에 등장하는 악당 국회의원을 설정하기가 쉬워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원작에는 있었던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에너지가 팍 죽어버리죠.

캐릭터도 그렇게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원작에서 아빠 주인공은 전형적인 일본인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멀죠. 하지만 그게 함정입니다. 전형적인 일본인 남성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민족성과 역사가 다른 한국에서는 그 대칭성이 깨져버려요. 원작에서 하는 짓은 대충 다 하는데, 그게 한국사회 속에서는 원작만큼의 재미가 없습니다.

전체를 놓고 봐도 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소설 [남쪽으로 튀어]가 주었던 전복적 쾌락은 없습니다. 국정원 민간인 사찰 이야기는 그럭저럭 잘 섞여들어갔고, 주인공이 악당국회의원/개발업자들과 싸우는 후반부의 이야기에서 강정이나 용산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 자체는 무개성적이고 얌전한 편이이에요. 이렇게 주저 앉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겐 그냥 지나치게 몸을 사린 것처럼 보입니다.

연기에 대해 말하라면, 이 영화의 '연기' 대부분은 김윤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잘합니다. 캐릭터와도 맞고요. 단지 이전 영화와는 달리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에요. 김윤석과 함께 화면에 뜨면 다른 배우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일 정도. 캐스팅이 상당히 좋은 영화이고 이들의 연기도 다른 부분에서는 좋은 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저렇게 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3/01/28)

★★☆

기타등등
찍는 동안 소문이 요란했던 영화죠.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시 일어난 일들이 영화의 완성도나 성격에 반영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짐작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 수는 없지요.

감독: 임순례, 배우: 김윤석, 오연수, 김성균, 한예리, 백승환, 박사랑, 김태훈, 주진모, 송삼동, 다른 제목: Run to the South, South Boun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Run_to_the_South.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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