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낙관주의자 / 매트 리들리 / 김영사 / 2010


 그의 전작 '이타적 유전자'의 끝부분이 강력한 자유시장의 옹호로 끝나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의 사고궤적을 따라가보면 그것도 자연스러운 결말인 것 같다. 이번 책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그의 전문부야인 진화생물학이 아닌 이 인류의 번영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굉장히 강력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책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애초에 광범위한 교환을 통해 개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도약을 이루었으며 그게 인간과 다른 동물의 길을 갈랐다. 물물교환은 전문화를 이끈다. 리카르도와 아담 스미스의 통찰처럼 광범위한 교환 시스템은 전문화를 낳고 모두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인간 본성 깊은 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교환을 위한 장치들이 내장되어 있다. (신뢰감, 교환하는 욕구, 공폄함에 대한 감각, 배신자를 가려내는 인지 능력 등등). 인류의 발전은 자유 교환으로 인한 시장의 확대로 인한 전문화 심화로 인한 혁신의 지속으로 이루어졌으며, 일시적이지만 인구압박 등의 이유로 교환을 중지하고 각자도생과 자급자족이 대세가 됐을 때 대대적인 퇴보가 뒤따랐다. 자유로운 교환 속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있고 미래 역시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래에 대한 우려는 계속 있었다. 인구 증가와 식량문제, 오존층 파괴, 자본주의의 붕괴, 환경오염, 치명적 전염병, 자원 고갈 등등. 그러나 이러한 비관은 인류의 혁신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 시간이 지나 과장으로 밝혀졌다. 아프리카 저개발과 기후변화 역시 같은 이유로 결국 극복될 것이다. 지식인은 비관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사기에 속지 말고, 강력한 권력으로 통제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짓에 속지 않는다면 인류는 계속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끝.

 당연히 굉장한 우파 관점인데, 이게 그렇다고 꼴보수와 같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국가 주도의 경제 통제를 혐오하지만 (생물학자 답게 스케일이 대단해서 좌파 정부 뿐 아니라 명나라도 까더라 ㅎㅎ) 마찬가지로 금융자본도 (아마 2008년 이후에는 ㅎㅎ)불신하고 대기업 역시 혁신의 적으로 상정한다. 당연히 성, 성적 취향, 민족, 인종 기타 어떠한 차별도 반대한다. 환경운동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지만 설득력도 분명 있다.

 그가 '비판적 지성'을 까는 데 대해 방어를 좀 해보고 싶다. 우리는 현재를 당연히 여기고, 지금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며 산다. 그래서 노력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지금'이 어떤 맥락을 통해 형성된 것이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기가 어렵다. 그 과정이 지적으로 즐겁고 지금을 온전히 누리며 자신의 생각이 주도하는 내일을 꾸리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오늘을 보는 시선은 분명히 가치있다. 그러나 또 매트 리들리의 주장처럼 인류가 지금까지 취해온 성공에 대한 자신감 위에서 비판적 시각을 조화시키는 것 역시 필요해 보인다. 그저 자본과 시장이 이끄는데로 가자는 게 아니라, 리스크의 평가와 적절한 통제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계량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공공의 장에서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옳고 그름에 대해 내가 까볼 능력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유전자 식품의 위험성 같은 전문적인 논쟁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겠는가. 그러나 그런 한계 속에서도 맥락만 따져도 그의 주장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전자 식품은 그 자체의 안전성도 당연히 중요한 문제지만, 그게 현실세계에 적용되는 방식도 큰 문제이다. 농약에 강한 종자가 얼마나 생물학적으로 위험한지 검토가 끝나고 나면, 그게 경제적으로 종자기업에 의한 노예계약 강요로 이어지는 지도 판단해봐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얼마나 강력한 혁신의 적인지 그 역시 잘 알지 않나.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할 거라는 그의 믿음에 동의하고 싶다. 그러나 그게 70년대 이후 미국 노동자 절반의 실질임금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참아야 하는 이유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가 많다. 이 책을 읽고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중간결론은 인류가 협력하고 전문화하고 혁신하는 능력에 신뢰를 보내되, 또한 사람들은 툭하면 자기 유리하게 그 구조를 파괴하고 지대를 얻고 싶어한다는 걸 '광범위하게' 인식하는 것, 즉, 단순히 큰 정부나 환경단체만 견제할 게 아니라 우리가 내딛는 걸음에 어떤 권력이 개입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물질적 풍요가 진짜 행복으로 효율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역시 중요해보인다.

덧. 나는 세계 인구 증가가 이미 증가율 추세에서 무뎌지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지금 찾아보니 매트 리들리보다 훨씬 더 빡빡한 시나리오에서도 세계 인구 100억 도달은 21세기가 거의 끝날 때이고, 110억은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인구폭발로 달을 식민화하고 고래목장을 짓고 하는 세계는 오지 않을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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